
올해 예순다섯인 나는 아내와 결혼한 지 37년이 됐다. 젊을 때부터 많이 싸웠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잠은 같은 방에서 잤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래된 친구 부부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온 날, 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불을 들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들 앞에서 아내가 무심코 꺼낸 몇 마디가 생각보다 깊게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두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 부부 네 쌍이 모였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남편 흉, 아내 흉을 보며 웃는 분위기가 됐다. 한 친구 아내가 우리 아내에게 물었다.
“그래도 네 남편은 퇴직하고 집에서 잘 도와주지?”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뭘 도와줘. 하루 종일 소파 지키는 게 일이지.”
다들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 정도는 부부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내가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내는 내가 퇴직한 뒤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회사 그만두니까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 집에만 있으면서 괜히 짜증이나 내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퇴직하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었고 연락하던 사람도 빠르게 줄었다.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아내에게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친구들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웃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요즘은 내가 남편을 모시고 사는 건지 큰아들을 하나 더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친구들이 다시 웃었다. 나는 이번에는 웃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미 마음이 굳어 있었다.

화가 난 이유는 흉을 봐서가 아니라 내 약한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물었다.
“당신 왜 그래?”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결국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불만 있는 건 알아.”
아내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냥 농담한 거 가지고 왜 그래?”
그 말에 더 서운해졌다.
“내가 퇴직하고 힘들어했던 게 당신한테는 친구들 웃기는 농담거리였어?”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다른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화가 나서 아내를 벌주려는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침대에 누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먼저 방문을 두드렸다.
“미안해.”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했던 걸 제일 가까이에서 봤으면서, 어제는 그걸 그냥 웃기는 이야기처럼 말했네.”
그 말을 듣고서야 내 마음도 조금 풀렸다. 부부는 서로의 가장 초라했던 순간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밖에서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사이에서 싸운 이야기나 서로의 약점을 다른 사람 앞에서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불만이 있다면 집에서 직접 말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부부 사이에서 있었던 여러 갈등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오래된 부부는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실패했던 순간도 알고, 약해졌던 모습도 알고,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지켜줘야 하는 것이 있다.
좋은 배우자는 내 장점만 칭찬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약했던 순간을 알고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 모습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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