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세린의 주성분인 페트롤라툼은 피부 표면에 막을 만들어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줄이는 성질이 있다. 그런데 특유의 반고체 질감과 미끄러운 성질을 활용하면 보습제를 넘어 고체향수의 베이스, 입술 보호제, 지퍼 윤활제처럼 전혀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향수 몇 방울 섞으면 휴대하기 편한 ‘고체향수’가 된다
액체 향수병을 매번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다면 바세린을 베이스로 간단한 고체향수를 만들어볼 수 있다. 방법은 작은 화장품 공병에 바세린 1큰술 정도를 덜어놓고 평소 사용하는 향수를 소량씩 넣어가며 충분히 섞는 것이다. 처음부터 향수를 많이 넣으면 질감이 묽어질 수 있으므로 3~5회 정도 분사해 섞어보고 향의 강도에 따라 추가하는 편이 좋다. 향수를 직접 섞는 대신 손목에 바세린을 아주 얇게 바른 다음 그 위에 향수를 뿌리는 방법도 훨씬 간단하다.
바세린은 휘발성이 낮은 기름과 왁스로 이뤄진 반고체이기 때문에 피부에 얇은 막을 남긴다. 이 위에 향수를 사용하면 향료가 마른 피부에 바로 닿았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머물면서 향을 즐길 수 있다. 다만 향수의 지속시간이 반드시 몇 배 늘어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향을 바르는 베이스로 활용하는 생활 팁에 가깝다.

향료를 섞을 때는 아무 오일이나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집에서 만드는 고체향수라면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있다. 향을 강하게 만들겠다고 에센셜오일이나 향료 원액을 임의로 많이 넣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향료 성분은 사람에 따라 접촉성 피부염이나 자극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피부과학회도 새로운 피부 제품을 사용할 때 작은 부위에서 먼저 시험해 반응을 확인하도록 안내한다. 특히 향료에 민감했던 사람이라면 바세린 자체보다 섞어 넣는 향료가 문제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평소 피부에 문제없이 사용하던 완제품 향수를 소량 활용하고, 팔 안쪽 등에 먼저 시험한 뒤 사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립밤은 오히려 아무것도 섞지 않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두 번째 활용법은 바세린 립밤이다. 이 경우에는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하지 않다. 깨끗한 작은 공병에 화장품용으로 사용하는 정제 페트롤라툼 제품을 덜어놓고 면봉이나 깨끗한 손가락으로 입술에 얇게 바르면 된다. 실제 바세린의 립 전용 제품에도 페트롤라툼이 사용되며, 오리지널 제품은 건조한 입술에 직접 사용할 수 있다고 제조사가 안내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다. 바세린이 입술에 수분을 직접 공급하는 것보다는 입술 표면에 밀폐막을 형성해 이미 가지고 있는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세안이나 샤워 직후처럼 입술이 살짝 촉촉할 때 얇게 바르거나 기존 보습 립 제품 위에 마지막 단계로 바르면 수분을 붙잡아두는 데 활용하기 좋다. 특히 입술을 자주 핥는 습관은 침이 증발하면서 오히려 건조함을 악화시킬 수 있어 바세린을 얇게 덧바르는 편이 낫다.

‘수제 립밤’이라고 꿀이나 식재료까지 섞는 것은 피한다
바세린에 꿀이나 과일즙, 식용 색소 등을 섞으면 더 좋은 립밤이 될 것 같지만 보관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리지널 바세린은 물이 거의 없는 제품이라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지만 다른 수분성 재료를 섞는 순간 원래 제품과 조건이 달라진다.
따라서 집에서 간단하게 사용할 목적이라면 여러 재료를 넣은 ‘수제 화장품’을 만드는 것보다 바세린 자체를 작은 깨끗한 용기에 덜어 사용하는 방식이 간단하다. 입술에 색이나 향을 더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입술 사용을 목적으로 제조된 립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 관리하기도 편하다.

뻑뻑한 지퍼에는 면봉으로 ‘쌀알만큼’ 바른다
세 번째는 피부와 전혀 관계없는 활용법이다. 가방이나 파우치, 부츠 등의 지퍼가 뻑뻑하게 움직일 때 바세린의 미끄러운 성질을 간이 윤활제로 활용할 수 있다. 먼저 지퍼 사이에 실밥이나 천 조각이 끼어 있지 않은지 확인한다.
이물질이 없다면 면봉 끝에 바세린을 쌀알만큼 아주 조금 묻힌 뒤 지퍼의 금속 또는 플라스틱 이가 맞물리는 부분에 얇게 바른다. 이후 지퍼를 천천히 위아래로 몇 차례 움직여 바세린이 고르게 퍼지도록 하고, 겉에 남은 것은 휴지나 마른 천으로 닦아낸다.
바세린은 정제된 미네랄 오일과 왁스로 구성된 반고체 형태로 표면에 미끄러운 막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서로 맞물리는 지퍼 이와 슬라이더 사이의 마찰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생활용 윤활제로 활용할 수 있다. 단, 지퍼 자체가 휘어졌거나 슬라이더가 벌어진 경우라면 윤활 문제가 아니므로 바세린을 발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퍼에 많이 바르면 오히려 먼지가 붙을 수 있다
지퍼 윤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이다. 바세린을 듬뿍 바르면 처음에는 부드럽게 움직여도 끈적한 잔여물에 먼지나 섬유 조각이 달라붙을 수 있다. 특히 밝은색 천, 스웨이드, 가죽처럼 기름 얼룩에 민감한 소재는 바세린이 원단에 묻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에 먼저 시험하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바세린의 세 가지 활용법은 각각 다른 특성을 이용한다. 고체향수에서는 반고체의 유분 베이스, 립밤에서는 수분 증발을 줄이는 밀폐막, 지퍼에서는 마찰을 줄이는 미끄러운 막이 핵심이다. 건조한 피부에 바르는 작은 통 하나가 의외로 화장대와 옷장 모두에서 쓰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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