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지브리가 외면한 호소다 마모루와 원작자 츠츠이 야스타카의 운명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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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고백한 사람을, 1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 만난다면 역시 같은 마음일까? 1주일 전의 그 사람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자칫 잔인하게까지 다가오는 그러한 ‘시간 여행’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하이틴 애니메이션의 풋풋함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마코토는 아침마다 밥 먹듯이 지각을 하고, 학교에서는 실수 연발인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에게는 코스케와 치아키라는, 남들이 보기에는 당장 애인으로 삼고 싶을 만큼 부러운 단짝 ‘킹카’ 남자친구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코토는 우연히 있는 힘껏 달리면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타임리프’(time leap) 능력을 갖게 된다.
처음엔 놀라웠지만 곧 이 능력에 적응해버린 마코토는 시간을 되돌려 지각을 면하거나, 어제 본 쪽지시험을 다시 보고, 노래방의 시간을 한없이 연장하는 등 온갖 소소한 일상의 스릴을 만끽한다. 하지만 평소처럼 무심히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치아키가 “나랑 사귈래?”라고 고백한다. 또 다른 친구 코스케는 이미 후배 여학생들의 고백을 받은 뒤였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코토는 고백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자꾸 되돌리다가 마코토는 꼬여버린 시간 속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는다. 게다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회수도 제한돼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원작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보다 더 된 1965년에 세상의 빛을 봤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는 시간여행 이야기의 고전으로 이후 드라마, 영화, 만화책 등으로 수차례 리메이크된 바 있다.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는 SF 동인지 ‘NULL’에서 활동한, 일본을 대표하는 SF 작가로 〈일본침몰〉로 유명한 코마츠 사쿄, 일본 SF계의 원로라 불리는 고(故) 호시 신이치와 함께 일본 SF의 3대 대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다다노 교수의 반란」 외 「섬을 삼킨 돌고래」라는 SF 단편집이 출간된 적 있고(이것은 이후 「인간 동물원」으로 재출간됐으나 현재 절판됐다),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로 「나나세」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출간됐다.
1934년생인 츠츠이 야스타카는 1990년대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쌍생아〉(1999)에서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로 출연했고, 이누도 잇신 감독의 〈금발의 초원〉(2000)에서는 노인 닛포리의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일본침몰〉(2006)의 반대편에서 기괴한 관심을 모은 〈일본이외 전부침몰〉(2006)에 원작자이자 배우로도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973년 코마츠 사쿄의 소설 「일본침몰」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이를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호시 신이치가 술김에 ‘일본이외 전부침몰’이라 말했고, 옆에 있던 츠츠이 야스타카가 이 말에 영감을 얻어 호시 신이치와 코마츠 사쿄의 양해를 구해 「일본이외 전부침몰」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썼다. 일본 SF 소설의 3대 거목이 하나로 엮이는 진기한 일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기도 하여 큰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문제의 SNS 게시물을 바로 내리긴 하였으나 당시 국내 대부분의 서점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포함해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한 판매중지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사실 그는 역사의식이 부재한 일본의 우익을 비판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으나, 이로 인해 ‘혐한’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한편, 츠츠이 야스타카를 SF 작가로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건 그가 SF 장르를 포함, 초월해 일본 현대문학의 중요한 화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기괴한 독설이 넘치는 자유분방한 화술로 유명하다. 「섬을 삼킨 돌고래」에 실려 있는 여러 단편들은 그의 후반기 작품 성향을 읽을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교통사고 후 개의 심장과 돼지의 위장을 이식받고 자신을 ‘인간동물원’이라 한탄하는 한 작가의 이야기 「조건반사」, 상냥하고 우아한 여자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안드로이드인 만큼 아무리 거칠게 다뤄도 괜찮고 부숴버릴 수도 있는 괴팍한 여자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사디즘」, ‘남성은 오히려 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고 강변하는 「욕구불만」 등 그는 여느 작가와 달리 후반기로 갈수록 독설이 더욱 짙어졌다.
이처럼 그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그의 전반적인 작품 성향에서는 상당히 비껴나 있는, 독설을 좀체 찾아보기 힘든 우아하고 말랑말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아마도 국내 출간된 그의 여러 작품들을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작품의 소재인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그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그의 과거의 상상력이 어떻게 현재화하는지를 지켜보라는 점에서다. 그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미디어 비판, 장기이식 문제, 심심찮게 다뤄지는 성과 욕망에 대한 묘사는 무척 기발하고 선구적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선구적이어서 지금의 시선으로는 다소 낡아 보이는 구석이 많기도 하다. 바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일본 내에서 원작 자체가 애니메이션인 최근의 SF 애니메이션들 외에, 일본의 SF소설 전통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와 어떻게 조우하는지에 대한 모범 사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식의 하드보일드 유머를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만들어진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원작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각색됐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이전 〈디지몬 어드벤처〉(2000)과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2005)의 연출을 맡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의 경우 다른 시리즈의 극장판과는 달리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일이 적었고, 시리즈 중에서 가장 감성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식 변형에 대한 이해가 보다 빠를 것이다. 감독 자신이 제작 당시 마흔 살에 가까웠고 과거의 원작을 추억하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심지어 원작의 주인공은 35세의 여성이자 미술품 복원가로 일하는, 마코토의 이모로 등장한다. 원작의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있는 팬들이라면 가장 흐뭇할 순간이다.
또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자연스레 여자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여러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성장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가장 비슷해 보이는 콘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1995)을 비롯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005년 도에이 애니메이션을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제작을 맡았으나, 지브리 측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다시 불러들이면서 아쉽게 도중하차해야했던 호소다 마모루로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통해 너무나 멋진 재기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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