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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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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 이 글은 영화의 후반부 전개와 에필로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허진호의 〈암살자(들)〉에는 여섯 발의 총성이 울린다. 영화가 끝까지 추적하는 것은 총알이 아닌, 총성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의문이다. 누가 쏘았는가. 몇 발이 발사되었는가. 왜 증거는 사라졌는가. 무엇보다, 왜 어떤 질문들은 제기되어서는 안 되는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국립극장에서 대통령을 겨냥한 총탄이 영부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범인은 곧 체포된다. 정부는 신속하게 사건을 설명한다. 범인이 있고, 동기가 있고, 사건은 종결된다.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간단하다. 그러나 그 간단한 사실들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는 바로 그 간단함을 의심한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 한쪽에서 총성이 울리고 피가 흐르던 그날, 다른 한쪽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이 첫 운행을 시작했다. 영화는 이 우연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일본에 두 배의 값을 치르고 들여온 지하철, 그 개통에 한몫한 극동그룹은 한일 경제협력이 흘려보낸 이익으로 몸집을 키운 기업이다. 그리고 그 기업 회장의 막내동생이 이 사건의 진실을 좇는 기자가 된다. 〈암살자(들)〉의 아이러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질문한다는 것

〈암살자(들)〉의 목표는 역사적 사건 위에 또 하나의 음모론적 가설을 덧씌우는 데 있지 않다. 영화는 누가 배후였는지를 성급하게 단정하는 대신 더 근원적인 것을 묻는다. 정부가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설명을 끝냈다고 선언했을 때, 그 설명에 의문을 품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영화 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총성이 있고, 끝내 발견되지 않는 탄환이 있다. 목격자의 기억과 수사 발표가 어긋나고, 있어야 할 증거가 사라지며, 불가해한 확신이 너무 빨리 퍼진다. 잠시 사실을 진술했던 이들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부정하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은 질문하는 일이 된다.

영화는 질문한 사람이 옳은 답을 가지고 있었는지 판정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합리적 의심을 품었다면 마땅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살자(들)〉이 옹호하는 것은 특정한 답이 아니라, 묻는 사람의 자리 그 자체다. 그 자리에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서로 다른 값을 치르는 세 사람이 선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끝까지 써내는 사람, 재환

박해일이 연기하는 동성일보 사회부장 김재환은 이 영화의 윤리적 중심이다. 그는 젊은 영웅이 아니다. 삶에서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모른 채 혈기에 취할 나이도 지났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위험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인지 보여준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그는 동료 기자들과 군용 트럭에 실려 간다. 군홧발에 걷어차이고, 달리는 트럭에서 흙비탈로 내던져진다.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회의실에는 중앙정보부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빨간 펜으로 헤드라인에 가위표를 치고, 단어를 긍정적으로 바꾸라고 강요한다.

어떤 폭력은 몸에만 가해지지 않는다. 독재 권력은 기자들을 비탈에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문장과 행간으로 파고들어 단어를 골라낸다. 무엇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허용되는 표현인가를 결정하고, 그 지침 안에서만 쓰라고 명령한다. 언어를 빼앗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이다. 재환은 기자로서 굽히지 않는다. 위험을 모르는 사람의 용기보다, 위험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같은 장소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용기가 더 무겁다.

영화 내내 재환의 사생활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적당히 구겨진 스트라이프 셔츠를 자주 입고, 서랍에는 양말과 속옷이 가득하다. 흙 묻은 양말을 새것으로 갈아 신으며 그는 다시 취재를 이어간다. 그에게 어떤 집이 있는지, 누가 기다리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어쩌면 그에게 가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존재하는 곳은 사회부 책상과 종이, 타자기와 펜, 취재 현장과 간혹 동료들과 어울리는 자리뿐이다. 이 절제는 인물을 빈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웃포커싱처럼 사적 배경을 흐린 자리에서 재환의 언론인으로서의 기품이 또렷해진다. 공적 자아만이 남겨졌기에, 그에게는 ‘애국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 그 진실이 모욕당하는 순간 그가 왜 전 생애를 부정당한 사람처럼 격하게 반응하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40대로 추정되는 재환의 나이와 시대를 포개면,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어가 ‘국어’였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을 법하다. 해방과 미군정, 한국전쟁을 지나며 국가의 이름과 국어가 바뀌고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이 되는 광경을 거듭 보았을 세대다. 그런 사람이 한국어 신문의 기자가 되어 사실을 가려 기록하고, 중년에 이르러 다시 그 기록할 권리를 지키려 한다. 그에게 중정의 빨간 펜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한 번, 권력이 한 사람의 언어를 통째로 바꿔 끼우던 시대를 지나왔다.

권력은 그가 진실에 가까워질 때마다 모욕하고 겁박한다. 신문을 칼처럼 말아 턱과 배를 찌르고, 해고와 폐업으로 위협하며, 끝내 모래주머니를 타자기에 쏟아부어 기록의 도구를 망가뜨린다. 대신 재환은 펜을 집어 든다. 모래주머니를 찌른 바로 그 뾰족한 펜촉에 잉크를 묻혀, 텅 빈 종이 위에 한 글자씩 호흡을 실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써 내려간다.

이어지는 선언문의 낭독은 이 영화의 백미다. 위협의 도구였던 펜이 다시 기록의 도구로 돌아온다. 타자기를 빼앗긴 재환은 더 오래되고 느린 방식으로 돌아간다. 한 획을 쓸 때마다 잉크를 다시 찍어야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는 글자와 문장이 계속 흘러나온다. 권력이 망가뜨린 것은 기계의 물성일 뿐, 쓰려는 인간의 의지까지는 아니다. 종이와 대결하듯 써 내려간 그 문장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낮게 시작해, 가장 멀리 울리는 목소리로 남는다. 결기 어린 목소리를 통해 영웅적 웅변이 아닌, 내면의 진심이 마침내 발화가 되는 순간이다. 망설임과 두려움도 묻어나는 와중에 셈여림과 높낮이를 달리는 음표처럼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생활을 짊어진 사람, 철구

유해진이 연기하는 중부서 경감 철구는 재환과 다른 자리에 있다. 재환의 삶이 기자라는 정체성으로 수렴한다면, 철구의 삶에는 일과 가족과 생활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상부의 지시, 아내와 딸과 아들,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경찰서 후배와 그의 임신한 아내까지, 영화는 그의 집과 골목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표창장을 받을 만큼 충실한 형사였던 그는 사건의 흔적을 끝까지 따라간 대가로 가족에 대한 위협을 받고, 마침내 책임을 뒤집어쓴 채 파면된다. 아내는 곧바로 야쿠르트 수레를 끌고 생활 전선에 나선다. 진실을 요구하는 대가는 한 사람의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활과 가족이 딸린 사람에게 그 대가는 가족 전체로 번진다. 더 이상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철구는 멈추지 않는다. 문태광의 재판일, 그는 경찰 정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이게 맞는 거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내가 끝내 반듯하게 다려 준 정복이다. 국가는 그의 직업을 앗아갔지만, 그는 문태광에게 끝까지 진실을 묻는다. 한국어를 끝까지 배우지 않은 재일교포에게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언어, 일본어로 절실하게 진실을 말하라고 외친다.

여기서 영화는 한 번 더 묻는다. 진실은 그것을 좇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만의 것인가. 직업을 박탈당한 뒤에도 철구는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로서 마땅히 물었어야 할 것을 끝까지 묻는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가진 것이 많은 사람, 영일

그리고 이민호가 연기하는 신입 기자 한영일이 있다. 1948년 혹은 1949년생, 이십 대 중후반. 사람들은 낙하산이라 하지만 그는 언론고시를 거쳐 정문으로 들어왔다고 받아친다. 재벌가의 막내이면서 자신의 선택으로 기자가 된 만큼, 그는 늘 여유롭고 패기와 열정으로 눈이 빛난다.

광복절 아침 국립극장 앞. 흘린 비표를 주워 건네며 합창단 기사도 써달라고 조르는 여고생에게, 영일은 사진을 찍어주고 기사를 약속한다. 목에 걸린 올림푸스 펜 카메라는 신문사 장비가 아니라 개인 소장품으로 보인다. 작고 가볍고 조작이 쉬운 카메라. 그 가벼움은 영일의 걸음걸이를 닮았다.

김나희 평론가의 '암살자(들)', “펜으로, 몸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①

이 영화에는 두 개의 펜이 있다. 재환이 선언문을 써 내려가는 펜, 그리고 아수라장의 저격 현장을 끝까지 기록한 영일의 PEN. 그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여고생은 빗나간 총탄에 쓰러져 끝내 숨을 거둔다. 모두가 영부인의 소식에 매달린 서울대병원에서, 영일은 끝까지 그 소녀의 생사를 확인했다.

엄혹한 유신의 시대, 취재가 막힐 때마다 문을 열어주는 것은 영일의 배경이다. 동성방송 오디오실은 그가 가져온 양주 한 병에 열리고, 수사 담당 검사는 큰형의 이름 앞에서 반가운 얼굴로 멈춘다.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출입국 기록, 좀처럼 나오지 않던 복수 여권, 도쿄에서 기다리는 지사 직원까지 모두 극동그룹의 막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모두에게 있지만, 큰형의 말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진실에 닿는 길은 모두에게 같은 너비로 열려 있지 않다. 재환과 철구가 일찍부터 위협에 부딪히는 동안 영일은 비교적 산뜻하게 장애물을 넘는다. 그 산뜻함을 떠받친 자본은, 그가 파헤치려는 사건이 놓인 바로 그 체제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 〈암살자(들)〉 리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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