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질병 딛고 일어선 ‘정통 경제관료’의 영욕… 추경호, ‘내란 방조’ 징역 20년 구형받기까지

가난했던 유년기와 폐결핵이라는 건강상의 고비를 딛고 정통 경제 관료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권당 원내대표까지 올랐던 추경호 대구시장이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로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특검팀이 징역 20년을 구형하면서다.
1960년 경북 달성군 다사면에서 태어난 추 시장의 유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해 대구수창초, 평리중, 대구 명문 계성고를 거치며 지역의 대표적인 ‘수재’로 기대를 모았다.

1979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 시절 폐결핵을 앓으며 또 한 번 신체적 고초를 겪었다. 건강 문제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1981년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입신양명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앓았던 폐결핵은 이후 병역 검사에서 소집면제(무종) 판정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83년 공직에 입문한 추 시장은 경제기획원(EPB) 경제기획국, 물가정책국 등을 거치며 핵심 경제 관료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한 뒤 세계은행(WB)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표부 공사참사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치밀한 기획력과 거시경제 감각을 인정받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올랐다.
이후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21대와 22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되며 대구의 거물급 3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국가 경제 컨트롤타워를 이끌었다.
공직 복귀 후 2024년 5월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되며 원내 사령탑에 오른 그는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생의 결정적 변곡점을 맞았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추 시장은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여당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당사→국회→당사’로 3차례에 걸쳐 반복 변경하며 시간을 끌었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내란의 성패가 계엄 해제 의결 정족수인 151명 확보에 달려 있던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이 군·경을 동원했다면 추 시장은 국민의힘 의원 108명의 표를 묶는 역할을 자처해 계엄군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판사 한성진)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특검팀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해 추 시장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팀은 “국회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거꾸로 사용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기소 이후 대구시장에 당선된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되어서는 안 된다”고 구형 사유를 밝혔다.
반면 추 시장은 최후진술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지침이나 표결 불참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당의 중의를 모으기 위한 판단이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폐결핵을 앓던 가난한 시골 수재에서 정부 부총리와 집권당 원내대표까지 올랐던 인물이 내란 가담 혐의로 징역 20년이라는 중형을 구형받으면서, 오는 11월로 예정된 1심 선고 결과에 법조계와 정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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