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1호 전화 불통’에 뒤바뀐 운명… 2019 하노이 ‘노딜’ 부른 북한 권력 내부의 막전막후

2019년 2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이른바 ‘하노이 노딜’의 결정적 배후에는 북한 외무성과 통일전선부(통전부) 간의 권력 암투,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직통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한 기막힌 해프닝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생생한 증언이 나왔다.
유튜브 채널 ‘주성하TV’가 공개한 특별 대담 영상에서, 2023년 한국으로 망명한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출신 이일규 전 참사는 최근 발간한 저서 『내가 본 김정은』을 바탕으로 하노이 회담 당시 대미 외교 사령탑이 베테랑 외무성이 아닌 대남 공작 부서인 통전부로 넘어간 충격적인 내막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 전 참사에 따르면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되던 2018년 초, 북한 외무성은 이미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쌓아온 30년 협상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 기획안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리용호 외무상에게 “젊은 사람이 배심을 가지고 한번 잘해보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이 신뢰는 한밤중 발생한 우연한 사건 하나로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북한 핵심 권력기관에는 김정은과 직접 연결되는 붉은색 표시등의 직통 유선 전화(이른바 ‘용도 전화’ 또는 ‘1호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안을 지시하려던 김정은은 밤 11시가 넘은 시각, 대미 외교의 산증인이자 외무성 1부상이었던 김계관의 집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술을 마신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데다 다리 통증이 심했던 김계관은 신호음을 듣고도 제때 걸어 나오지 못해 전화를 놓쳤다.
김정은은 즉시 리용호 외무상 방으로 전화를 돌렸으나, 리 외무상은 공교롭게도 그 순간 불과 1분 거리도 안 되는 집무실 화장실에 가 있었다. 리 외무상이 황급히 뛰어나왔지만 신호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쌍방향 통화가 불가능한 용도 전화 특성상 아래에서 위로 다시 전화를 걸 수도 없는 구조였다.
이에 격노한 김정은은 곧바로 노동당 국제부장 리수용에게 전화를 걸어 “외무성이 규율이 없어서 어떻게 미국과 싸우겠느냐. 대미 협상 주도권을 국제부로 넘겨라”고 즉흥적인 지시를 내렸다.
당시 외무성 11호실(대미 특별협상팀)은 외신기자 참관 규모와 시설 사찰 등 정교한 핵실험장 폐기 계획안을 완성해 둔 상태였다. 국제부는 외무성이 밤낮으로 작성한 이 문건을 그대로 넘겨받아 당에 보고했고, 내막을 모르는 김정은은 “하루 만에 이런 훌륭한 문건을 올렸다”며 국제부를 극찬했다.
하지만 주스위스 대사 출신으로 외교 생리를 꿰뚫고 있던 리수용 국제부장은 미국과의 실전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알고 있었다. 국제부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리수용은 ‘대외 정보망’을 핑계 삼아 대남 공작을 전담하던 김영철의 통전부를 끌어들여 협상 책임을 넘겼다.
공명심에 사로잡혀 협상 전면에 나선 통전부장 김영철은 대미 협상 경험이 전무한 탓에 담화문 작성 전문가였던 김혁철(전 스위스 대사)과 김성혜 통전부 통일책략실장을 주축으로 급조된 협상단을 꾸렸다.
외무성은 미국의 계산법과 협상 집요함을 전혀 모르는 통전부를 향해 “미국은 결코 만만하게 상대할 집단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경고했다. 당시 외무성은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 NPT(핵확산방지조약) 복귀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까지 염두에 두고 그 반대급부로 확실한 대가를 얻어내는 정밀한 수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전부는 단순한 ‘정상 간 담판’만 성사시키면 미국이 원하는 선물을 안겨줄 것이라는 치명적인 오판에 빠져 외무성의 조언을 철저히 무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김영철은 “제가 가면 무조건 성공합니다”라며 김정은을 부추겼다.
결과는 참담한 ‘노딜’이었다. 미국의 ‘빅딜’ 요구에 통전부의 얕은 전략은 완전히 밑천을 드러냈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수천 킬로미터의 전용 열차 안에서 김정은은 “저자가 된다고 해서 내가 수천 킬로를 기차 타고 개고생하며 왔다”며 김영철을 향해 삿대질과 폭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김영철과 김혁철 등 통전부 대미 라인은 숙청과 좌천의 칼바람을 맞으며 몰락했다. 반면 회담 당시 김정은의 돌발 질문에 막힘없이 정세를 분석해 유일하게 지도자의 신임을 지켜낸 최선희(현 외무상)를 중심으로 외무성이 다시 대외 정책의 전면에 복귀하게 됐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최고위급 비핵화 외교가 사소한 우연과 비전문가 집단의 공명심으로 인해 어떻게 파국을 맞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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