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큰 자식이 밥상 앞에서 수저를 내려놓고 한참 손등만 문지르면 부모는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단번에 안다. 사업이 기울었든 생활비가 모자라든, 결국 돈 얘기라는 걸 얼굴만 봐도 알아챈다. 그래서 자식이 어렵게 입을 떼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나서서 다 해결해주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아낌없이 내준 뒤로 이상하게 자식의 발길이 뜸해지는 경우가 많다. 돈이 모자랐던 것도, 말투가 차가웠던 것도 아닌데 자식은 점점 부모 앞에서 작아진다. 사랑해서 다 해준 일이 왜 자식을 멀어지게 만드는 걸까.

3위. 사정도 듣기 전에 돈부터 내준다
자식이 망설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얼마 필요하니”라고 먼저 묻는 부모가 많다. 어렵게 꺼낼 말을 대신 꺼내준 것이니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액수부터 묻는 순간 밥상 앞의 아들딸은 은행 창구 앞에 선 신청자가 되어버린다.
사정을 다 듣지 않고 숫자부터 정하면 자식은 미안한 마음에 줄여 부르거나, 다시는 이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부풀려 부른다. 어느 쪽이든 돈으로 해결될 일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자는지부터 묻고 천천히 얘기해보라고 시간을 내주는 것이 액수를 묻는 것보다 먼저다.

2위. 지키지 못할 ‘이번이 마지막’을 약속한다
돈을 건네면서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고 못 박는 부모가 많다. 앞으로 끝이 없을까 봐, 노후 자금까지 다 들어갈까 봐 생기는 두려움이 그런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말을 정말로 지킬 수 있는 부모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법정스님은 입밖으로 나온 말을 빚이라고 했다. 일 년 뒤 자식이 더 상한 얼굴로 찾아오면 결국 또 내주고, 또 마지막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게 지키지 못한 선언이 쌓일수록 부모의 말은 무게를 잃고, 자식은 부모의 말을 흘려듣는 법을 배운다. 다짐 대신 언제부터 얼마씩 갚을지 날짜와 금액을 자식 입으로 정하게 하는 편이 훨씬 오래 지켜진다.

1위. 빌려준 돈을 안 갚아도 된다고 해준다
부모가 “그 돈은 없던 걸로 하자”고 말할 때 마음은 진심이다. 자식이 그 돈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명절마다 눈치 볼까 봐 미리 지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통장에서 지워진 빚은 사라지지 않고 자식의 마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돈으로 진 빚은 다 갚으면 끝나지만, 마음으로 진 빚은 얼마를 해야 다 갚는 건지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기에 평생 모자란 채로 남는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은 결국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명절에 한 시간도 못 앉아 있다가 일어서고, 용건 없는 안부 전화는 점점 걸기 어려워진다. 형편이 정말 어렵다면 한 달에 몇만 원이라도 갚게 하는 것이 낫다. 다달이 무언가를 붙이는 자식은 부모 앞에서 허리를 펴고 들어오고, 그렇게 받은 돈을 따로 모아 손주 이름으로 돌려주면 그 집안에는 부끄러운 돈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엄마가 다 해주겠다는 말은 자식을 품는 말 같지만, 실은 자식이 스스로 일어설 자리를 빼앗는 말이 되기 쉽다. 사정을 끝까지 듣고,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받은 것은 갚게 하는 부모 곁에 자식은 떳떳한 얼굴로 자주 찾아온다. 아무것도 걸지 않고 기다려준 그 빈자리에 자식이 와서 앉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