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치매를 소재로만 사용하는 건 절대 싫었다” ‘가족여행’ 이휘향 배우, 김정태 감독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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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여행〉 이휘향 배우, 김정태 감독과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가족영화’라는 점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계속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반대로 손녀는 멀쩡한데도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죠. 그런 두 사람이 “할머니, 인간은 언제까지 고달픈 거야?”라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도 인상적이고요.
이휘향 저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런 가족 사이에 잘 모르는 각자의 사연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참 좋았어요. 손녀 뿐만 아니라 며느리(서영희)도 말 못할 고민 같은게 있거든요. 잠깐 등장하지만 영화 속 트럭 운전사 캐릭터도 좋았어요. 작은 역할을 맡은 배우들까지 너무 앙상블이 좋아서, 무엇보다 팀워크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나만 부각되는 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주연 같은데 ‘이휘향의 44년 만의 첫 주연’이라고 하니까 창피한 거죠. (웃음)
연출자로서 가장 고민했던 장면이 있다면요?
김정태 제가 연기하는 아들 ‘창욱’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 장면이 가장 고민됐어요.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말 많이 생각했죠. 저는 연기라는 게 화살촉처럼 정확하게 관객에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 감정을 흩뿌리는 게 아니라, 그 신과 플롯에 맞는 감정을 일침처럼 정확하게 한 방 넣어야 하는 거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표현할까 고민한 거죠. 그리고 그 장면을 실내에서 할지 바닷가로 나갈지를 두고도 이견이 컸어요. 해는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앞에 선 인간의 감정은 조금 더 열린 공간에서 보여주는 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했죠. 결국 모두가 동의해줘서 지금의 장면이 나왔어요. 주변을 설득해야 하는 연출자이자 감정을 고조시켜 그 장면을 직접 연기해야 하는 배우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장면 중 하나였어요.
영화가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이다 보니, 개인의 가족사가 한국 현대사의 기억과 겹쳐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한 기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식도 인상적인데요.
김정태 가족의 부재라는 건 저도 실제로 겪었지만, 정말 단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어요. 잠깐 만나다 헤어진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죠. 함께 살던 가족의 부재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고통이고 그리움이죠. 그 그리움이 가족 각자에게 모두 남아 있는 거예요.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만의 그리움이 있고, 엄마에게는 엄마의 그리움이 있고, 아들에게는 또 아들만의 그리움이 있죠. 그런데 그 색깔과 농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치매에 걸린 엄마와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영화’ 그 이상이라 생각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별, 그 두려운 이별을 앞둔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감정을 표현한 영화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휘향 그런 감정이 ‘엄마’에게는 오죽하겠어요. 영화에서 순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상태라 그런 부재를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많지 않아요. 그냥 계속 “집에 가야 한다”고 해요. 왜 집에 가야 하는지 자신도 정확히 모르고, 가족들은 부담스러워 하죠. 희미한 의식 속에 그 가족의 부재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죠. 그렇게 예전에 살던 집에 가서 그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들을 보며 우는 장면이 있죠. 그 장면 하나로 엄마의 감정을 다 표현해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슬프지만 슬픔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내내 생각했죠.
김정태 저도 그 장면을 좋아해요. 감정을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지 않고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이휘향 선생님의 디테일이나 호흡도 굉장히 좋았고요. 슬픔이면서 그리움이고, 어떻게 보면 아름답기도 하죠. 정말 좋았어요.
오늘 이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렇지만, 김정태 감독이자 배우는 촬영 현장에서 이휘향 배우를 계속 ‘엄마’라고 부른 것으로 압니다. 오래전부터 팬이셨을 것 같은데, 함께 작업하며 새삼 놀라고 감탄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정태 우리 세대 중 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의 그 파격적인 캐릭터 젤소미나(이휘향)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웃음) 사실 그래서 캐스팅되고 함께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무엇보다 대사를 완벽하게 외는 것 이상으로, 캐릭터 분석이 어마어마하세요. 완전히 그 인물과 동화돼요. 실제로 치매 환자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분에게 머리도 맡기셨고, 의상도 그렇게 준비하셨죠. 캐릭터 빌딩을 내면부터 외형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놀랐죠. 그야말로 ‘배우의 정석’이라 생각합니다.
이휘향 배우는 실제로 엄청난 영화광이라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시나요.
이휘향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 〈과거가 없는 남자〉(2002), 〈성냥공장 소녀〉(1989) 등을 만든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굉장히 좋아해요. 웃음을 전혀 강요하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절제하고 절제하다가 결국 크게 웃게 만드는 그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좋아해요. 정말 고수죠 고수.
김정태 감독이자 배우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영화광이고 음악광이세요. 우리 영화가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 중에 줄리언 무어 주연의 〈스틸 앨리스〉(2014)가 있는데, 은근히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보셨더라고요. 줄리언 무어와 순임이 살아온 삶이 다르고 증상도 다르다며 한참 얘기하시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레퍼런스는 어디까지나 레퍼런스일 뿐이죠. 아무튼 따로 영화 유튜브 채널 하나 만드셔도 될 정도로 엄청난 영화광이세요.
끝으로 〈가족여행〉을 보신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길 바라시나요.
이휘향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하면서 두 감독님에게 얘기했던 게 있어요. “절대로 치매를 소재적으로만 사용하는 건 싫다”고요. 워낙 많은 기존의 치매 소재 영화들에서 흔히 예상 가능한 장면들을 비켜갔으면 했고, 우리가 치매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생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원래 저는 작품 홍보를 위해 TV 프로그램이나 예능에 나가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조금 신비스러워야 한다는 걸 신념처럼 갖고 있었거든요. 배우가 여기저기 나와서 자기 모습을 다 보여주고 나면 어떤 작품에 나와도 선입견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신비주의’가 전략이었어요. 그동안 그게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번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해요. 이게 정말 내 제 마지막 영화여도 좋다는 생각으로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게 하고 싶어요.
김정태 이휘향 선생님이 현장에서도 “〈가족여행〉이 내 마지막 영화”라는 말씀을 너무 많이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 절대 안 된다고 했죠. 아직 보여줄 게 더 많고, 계속 더 하셔야 한다고 지금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절대 마지막 영화 아닙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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