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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4년 만의 첫 영화 주연작이라는 얘기, 너무 민망해” ‘가족여행’ 이휘향 배우, 김정태 감독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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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휘향 (사진=스튜디오 킬러웨일)

배우 이휘향 (사진=스튜디오 킬러웨일)

“할머니, 인간은 언제까지 고달픈 거야?” 이제 곧 생을 마감하게 될 할머니에게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손녀가 그렇게 묻는다. 그렇게 가족 모두 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 생전 처음 깊은 대화를 나눈다. 무늬만 영화감독이자 사실상 백수인 남편 창욱(김정태), 자신이 뱀파이어라 믿으며 코스프레에 진심인 딸 윤진(홍정민), 베트남 참전용사 시아버지 만철(남경읍), 그리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순임(이휘향)까지, 이 문제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모두를 돌보던 며느리 영주(서영희)는 보호센터로부터 더 이상 시어머니 순임을 맡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렇게 가족은 마침 순임의 생일을 기념하고자 부산으로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급하게 빌린 낡은 승합차가 위태롭게 고속도로를 달릴수록 감춰졌던 여행의 진짜 목적과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족여행〉
〈가족여행〉

〈가족여행〉은 ‘서구적이고 세련된’이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따라붙던, 이른바 ‘안방극장’의 여왕 이휘향 배우의 연기 인생 44년 만의 첫 번째 영화 주연작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혹은 날카로운 악역 연기로 각인돼 있던 그가 치매에 걸린 노인을 연기한다. 정종섭 감독과 더불어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감독 겸 배우 김정태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도통 되는 일 없는 백수이자 철없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쓰라린 기억을 보듬으며 가족여행을 끌어간다. 그처럼 영화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치매라는 질환 자체를 강조하거나 슬픔을 강요하는 대신, 서로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한 가족을 바라보려 한다. 그동안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치매 환자 역할에 도전하며 ‘다시 연기의 즐거움을 찾았다’는 배우 이휘향과, 치매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의 컨벤션을 피해가며 신선함을 주고 싶었다는 김정태 감독을 만났다.

감독 겸 배우 김정태(위), 배우 이휘향 (사진=스튜디오 킬러웨일)
감독 겸 배우 김정태(위), 배우 이휘향 (사진=스튜디오 킬러웨일)

이휘향 배우에게는 44년 만의 첫 영화 주연작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해오셨던 역할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이휘향 44년 만의 첫 주연작이라는 얘기, 들을 때마다 너무 민망해서. (웃음) 그동안 연기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역할을 해봤어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 악역만 하게 됐죠. 하나가 잘되니까 계속 악역을 요구받았어요. 방송이라는 게 작품만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있으니까 거절하지 못하고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죠. 그렇게 계속 악역의 에너지로 캐릭터를 만들어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 ‘세상에서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물으면 저는 언제나 ‘연기할 때!’라고 말해온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에너지가 다 소진되고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이제 연기를 그만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이런 연기를 계속 보여주는 게 과연 시청자들에게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 거죠. 그러던 중 〈가족여행〉이라는 영화의 ‘엄마’ 역할이 들어왔어요. 배우로서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였고, 무엇보다 치매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라는 점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켰죠. 별로 고민할 것 없이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그때부터 치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정말 행복하게 촬영을 마쳤어요.

김정태 캐스팅에 대해서는 거의 만장일치였어요. 이휘향 선생님에게 한번 부탁드려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오랫동안 도회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하려고 할까, 고민했지만 한편으로 어떨까 너무 궁금했죠. 그런데 흔쾌하 하시겠다고 하니 모두 환호성을 질렀죠.

〈가족여행〉
〈가족여행〉

치매 환자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정태 치매 증상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라는 걸 생각하기 이전에 순임(이휘향)이라는 사람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보자, 라는 게 더 중요했어요. 치매라는 것은 누군가의 엄마이고, 할머니이고, 아내인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죠. 그런 삶을 따라가다 보면 치매로 인한 모습들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치매 환자 역할에도 일종의 클리셰가 있을 수 있는데, 이휘향 선생님이 연기하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휘향 배우는 실제로 치매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공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휘향 정말 엄청나게 연구했어요. 대부분의 촬영이 진행될 부산의 요양원도 찾아가고, 치매 환자들이 다니는 노래교실 같은 곳에도 갔어요. 공부해보니 치매라는 질환이 뇌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증상이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영화에서 한 가지 증상만 계속 보여주면 너무 단편적인 치매 환자가 될 것 같았어요. 관객들이 치매라는 질환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증상을 적절하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두 감독님과 일일이 상의하지 않고 제가 장면마다 다른 증상들을 적용했어요. 이 장면에서는 이런 모습, 저 장면에서는 저런 모습으로요. 중증으로 넘어가면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장면에 맞춰 가장 적절한 증상을 찾아가려고 했죠. 그리고 언어 문제도 중요해서 부산 영도에서 아주머니들과 거의 한 달 정도 함께 생활하며 부산 사투리도 배웠고요.

〈가족여행〉
〈가족여행〉

김정태 배우는 이번에 정종섭 감독과 함께 공동연출자로도 참여했습니다. ‘연출에 도전했다’고 표현해도 될까요?

김정태 사실 ‘도전’이라고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현장에서 기존의 배우가 아닌 조금 다른 역할도 해야겠다는 정도였죠.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에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거였죠. 설거지할 그릇이 열 개라면 한두 개를 더 닦는 정도랄까요. 후배 배우들의 연기를 찍을 때는 제가 조금 더 나서서 디렉팅하기도 했고, 장소를 빌린 시간이 촉박하면 성격이 급하니까 직접 나서서 빨리 진행하기도 했죠. 경력 많은 감독처럼 현장을 지휘했다기보다는 현장에서 필요한 일을 조금 더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치매 환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 한가운데 멈춰선 엄마에게 운전자가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상태를 알고는 “왜 그러세요?”라고 걱정하죠.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도 그렇고요. 전체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따뜻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그게 이 영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라 생각됩니다.

김정태 맞아요, 그런 부분이 중요했어요. 의도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 치매 소재 영화의 클리셰들을 비켜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다른 영화에서 치매 환자가 등장하면 보통 “뭐야?”, “싫어” 하는 식으로 화를 내거나 꺼려하는 장면들이 꼭 있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가본 거죠. 그런 장면들을 재밌고 괜찮게 봐주셨다면 기분 좋죠.

이휘향 저 역시 그런 장면들이 좋아요. 지금은 AI 시대라고 하고, 서로가 서로를 봐도 못 본 척하고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우리 영화의 그런 따뜻함이 관객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치매라는 질환은 가족의 사랑이 없으면 발견하기도 어렵고 함께 극복해나가기도 어려운 병이에요. 그래서 가족, 더 나아가 주변의 따뜻한 시선을 영화에 담고 싶었죠.

▶ 〈가족여행〉 이휘향 배우, 김정태 감독과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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