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녀가 아니야” 남편에게 생일상을 받은 아내가 미역국을 엎어버리고 나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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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쉰아홉, 학교 급식실 조리원이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출근해 천 명분 밥을 짓고, 오후엔 집에 와서 중풍으로 쓰러진 시아버지 수발을 든다.

남편은 이십 년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은 뒤 아파트 경비 일을 한다. 우리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전세 빌라에 산다.
월급 210만 원 가운데 매달 40만 원씩, 4년을 따로 모았다. 무릎 수술비 하고, 남은 돈으로 남편이랑 제주도에서 한 달만 살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모인 돈이 천구백만 원이 넘었다.
통장은 남편 이름이었다. 내 명의 통장은 결혼하고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결혼 삼십 년 만에 처음 받은 생일상
토요일 아침, 방문을 열자 미역국 냄새가 났다.
식탁에 미역국이랑 불고기, 동그랑땡이 차려져 있었다.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었다.
“생일 축하해. 새벽부터 끓였어.”
결혼하고 삼십 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이었다. 아들까지 나와서 박수를 쳤다. 급식실에서 굳은 손목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국을 두 숟가락쯤 떴을 때, 남편이 헛기침을 했다.

“당신한테 말하면 반대할 게 뻔해서”
“여보, 사실 할 말이 있어서 차린 거야. 그 적금, 동생한테 줬어.”
숟가락이 국그릇에 부딪혔다.
시동생이 차린 치킨집이 문을 닫으면서 밀린 가게 임대료를 막아줬다고 했다. 다음 달까지 못 내면 보증인으로 선 남편한테까지 넘어온다고 했다.
“당신한테 물어보면 반대할 게 뻔해서 말 못 했어.”
아들이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작은아빠네 진짜 급했대. 가족인데 그 정도는 도와야지.”
새벽엔 남의 집 아이들 밥을 짓고, 오후엔 시아버지 기저귀를 갈며 모은 돈이었다. 그 돈을 쓰기 전에 아무도 나한테 묻지 않았다.
남편이 국그릇을 내 쪽으로 밀었다.
“생일상까지 차렸잖아. 식는다, 얼른 먹어.”
그 말에 손이 먼저 나갔다. 국그릇이 식탁 위로 엎어졌다. 미역이 식탁보에 흘러내렸다.
“나는 이 집 시녀가 아니야.”
그 말만 하고 신발을 신었다. 아무도 따라 나오지 못했다.

공원 벤치에서 아들이 내민 것
동네 공원 벤치에 한 시간쯤 앉아 있었다. 지갑도 없이 나와서 커피 한 잔 사 먹을 수도 없었다.
누가 옆에 앉았다. 아들이었다.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에서 컵에 담긴 즉석 미역국이 나왔다. 아들이 뚜껑을 열어 내 손에 쥐여줬다.
“엄마, 아까 내가 잘못 말했어. 엄마 돈인 줄 몰랐어. 아빠 돈인 줄만 알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들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줬다. 은행 앱이었다.
“엄마 이름으로 통장 하나 만들자. 매달 나도 조금씩 넣을게. 이번엔 엄마 통장이야.”
공원 벤치에서 편의점 미역국을 먹었다. 생일상 미역국보다 덜 짰다.

월요일 아침, 은행 창구 앞에서
월요일 아침, 급식실 일을 마치고 은행에 갔다.
창구 직원이 신분증을 받아 들고 물었다.
“고객님 명의 통장, 처음 만드시는 거 맞으세요?”
“네. 처음이에요.”
남편 통장으로 들어가던 자동이체를 끊고, 새 통장으로 돌렸다. 그날 오후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동생한테 갚으라고 말해놨다고. 답장은 아직 하지 않았다.
저녁에 통장을 펴 봤다. 아들이 넣어둔 십만 원이 찍혀 있었다. 맨 첫 줄, 내 이름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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