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안을 정리하다 보면 미뤄 둔 일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실버타운이나 요양시설로 옮긴 가족의 옷과 서류를 추리면서 그동안 돌봄에 매달려 지낸 시간도 돌아보게 된다.
보호자는 자신의 진료 예약을 취소하고 몸이 아파도 참으면서 상대의 병원 일정부터 챙겨 왔다. 돌봄의 형태가 달라진 뒤에도 정작 자신의 건강은 계속 뒷전이다.
자신의 진료부터 미루는 사람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렵다. 진료일이 겹치면 자신의 예약부터 미루고, 복용하던 약이 떨어져도 다음 주까지 기다린다.
한두 번 일정을 늦추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증상은 계속 신경 쓰이고 받아야 할 검사는 쌓이는 데다, 치료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다.
모든 결정을 혼자 감당하는 사람
가족이 시설에 입소하면 직접 돌보는 일은 줄지만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많아진다.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남은 살림은 어떻게 정리할지,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쉽게 의논할 사람도 없다.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손에는 처리할 서류가 가득하고, 머릿속으로는 다음 일정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또다시 미뤄진다.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사람
오랫동안 누군가를 돌봐 온 사람은 잠시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한창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욕이 없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 지친 것입니다. 당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의지가 부족하다고 탓하기 전에 잠을 충분히 자고 쉬면서 지친 몸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하루 10분씩 햇볕을 쬐거나 천천히 걷는 것부터 시작하면 다시 움직일 힘을 얻을 수 있다.
우울한 기분이 오래 지속된다면 부끄럽다고 감추지 말고 치료가 필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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