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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돈 받을 생각 없다” 명절 용돈에 손사래 치던 시어머니,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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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 아침, 나는 은행 현금인출기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잔액을 확인하고 오만 원짜리 열 장을 뽑았다. 이번 달 관리비가 밀려 있었지만 명절 봉투만큼은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하던 치킨집을 접은 건 지난가을이었다.

그 뒤로 남편은 새벽마다 택배 물류센터에 나갔고, 나는 동네 마트 계산대에 섰다.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괜히 걱정만 하셔.”

남편은 몇 번이나 그렇게 당부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께 짐을 얹어드리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도 봉투 두께는 똑같이 맞췄다

시어머니는 대전 외곽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현관문을 열자 떡국 냄새와 함께 어머니가 아이들부터 끌어안았다.

식탁에는 남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동그랑땡과 잡채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연신 아이들 밥 위에 고기를 얹어주셨다.

점심상을 물리고 남편이 봉투를 꺼냈다. 결혼하고 매년 명절마다 드리던 그 흰 봉투였다.

“엄마, 얼마 안 돼요.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어머니는 봉투를 받아 들더니 열어보지도 않고 남편 앞으로 다시 밀어놓았다.

어머니는 봉투를 다시 밀어냈다

“엄마는 이 돈 받을 생각 없다.”

거실이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만 크게 울렸다.

남편이 멋쩍게 웃으며 봉투를 다시 내밀었다.

“왜 그래, 엄마. 적어서 그래?”

어머니는 대답 대신 손을 내저으며 귤 껍질만 천천히 벗겼다.

남편은 머쓱하게 봉투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손끝이 떨렸다. 접시 하나를 놓쳐 싱크대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쥐여주는 소리가 들렸다. 예년보다 봉투가 훨씬 두툼해 보였다.

주차장까지 따라 나온 어머니

해가 질 무렵 짐을 챙겨 나왔다. 어머니는 슬리퍼를 신은 채 주차장까지 따라 나오셨다.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문을 닫자 어머니가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꽃무늬 손가방에서 낡은 통장 하나를 꺼내 남편 손에 쥐여주었다.

“가게 접은 거, 엄마 다 안다.”

남편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지난달에 둘째가 전화로 그러더라. 아빠가 요즘 밤마다 상자 나르러 간다고.”

남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손등을 두어 번 토닥였다.

“엄마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았니. 이거 원래 너희 돈이다. 가져가.”

어머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마디를 더 보탰다.

“에미야, 그동안 애썼다.”

나는 대답 대신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 손은 따뜻했다.

통장 맨 첫 줄에 찍힌 날짜

고속도로에 올라서도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남편이 통장을 펼쳤다. 나도 옆에서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첫 줄에는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맞은 추석 날짜가 찍혀 있었다.

그 아래로 설, 추석, 설, 추석. 십 년 넘게 우리가 드린 명절 봉투가 한 번도 빠짐없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으셨다.

입금 내역마다 옆 여백에 연필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아들 며느리 설], [아들 며느리 추석] …

남편은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뒷좌석에서는 아이들이 잠든 숨소리만 들렸다.

집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나서야 남편이 처음 입을 열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던 거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남편 등을 쓸어주었다.

그 통장은 아직 한 번도 꺼내 쓰지 못한 채 우리 집 서랍 안에 있다.

다음 명절에는 어머니 손에 무엇을 쥐여드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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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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