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일찍 딸의 집으로 향하며 손주를 보살피는 일상은 나에게 큰 기쁨이자 동시에 무거운 짐이었다.
퇴직 후 여유로운 삶을 꿈꿨던 나는 딸의 직장 복귀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황혼 육아를 선뜻 맡아 시작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무릎 통증과 극심한 피로가 겹쳐 한숨을 내쉬는 날이 점차 늘어났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고맙다며 과일 상자를 들고 오던 딸이 시간이 흐르자 나의 노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퇴근 후 늦게 들어오면서도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밥상이 차려져 있지 않다며 은근히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날에도 손주 밥은 챙겨주었냐고 먼저 묻는 딸의 무심한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결국 며칠 동안 심한 몸살을 앓고 난 뒤 나는 내 건강과 삶을 더 이상 희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딸이 찾아와 평소처럼 아이를 맡기려 할 때 나는 손주는 예쁜데 더는 못 봐주겠다며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거절을 건넸다.
갑작스러운 나의 거절에 딸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거실에는 한동안 차가운 침묵과 서먹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내가 당당하게 거절의 이유를 설명하자 딸은 그제야 자신의 이기적이었던 태도를 돌아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전문 보육 시설을 알아보고 주말에만 가볍게 만나기로 합리적인 타협안을 찾았다.
자식에게 묶여 있던 무거운 의무감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내 마음속에 잊고 지냈던 평온함과 가벼운 자유가 다시 찾아왔다.

딸에게 단호한 거절의 뜻을 전한 그날 이후 나는 손주 육아에서 벗어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문화센터 강좌를 신청했다.
내 삶의 중심을 자식이 아닌 나 자신으로 돌려놓자 찌푸려졌던 딸과의 관계도 한결 부드럽고 건강한 거리감을 회복하게 됐다.
나는 이제 아침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따뜻한 찻잔을 들고 나만의 행복한 노후를 향해 활기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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