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나는 새벽마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직업을 친구들에게 단 한 번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건물 청소와 야간 경비를 도맡으셨던 아버지는 늘 손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옷에서는 특유의 흙냄새가 풍겼다.
어린 마음에 초라한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나는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대기업에 다니시는 일반 회사원이라며 거짓말을 일삼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는 거칠고 검게 그을린 손으로 내게 작은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셨다.
혹시나 친구들이 내 아버지를 알아보면 어쩌나 두려웠던 나는 꽃다발만 훔치듯 빼앗아 들고 아버지를 멀리 떼어놓았다.
당시 아버지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는 대신 그저 멀찍이 서서 나를 향해 묵묵히 미소만 지어 보이셨다.

세월이 흘러 내가 한 가정을 이루고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은 지 3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지나갔다.
치매를 앓기 시작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정리를 하던 중 오래된 장롱 깊숙한 곳에서 빛바랜 가계부를 발견했다.
누런 가계부에는 나의 등록금과 교복비는 물론 친구들과 밖에서 사 먹을 몫까지 푼돈 하나까지 일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남몰래 야간 일거리까지 뛰며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나를 뒷바라지했던 아버지의 헌신을 비로소 그날 마주했다.
자식의 거짓말을 전부 알고 계셨으면서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날 위해 평생을 바치신 그 마음이 가슴을 후려쳤다.
이제는 내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고 나는 끝없는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날의 유치했던 허영심 때문에 아버지의 거친 손을 부끄러워했던 순간이 내 인생 가장 큰 한탄으로 남았다.
나를 위해 온몸을 던지며 한평생을 바쳐온 아버지를 온전히 존경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나는 그제야 세월이 굳어버린 아버지의 검은 손을 내 가슴에 꼭 껴안으며 뒤늦은 죄송함을 나지막이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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