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소는 생으로 먹어야 영양소를 온전히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파프리카와 당근, 케일은 짧게 가열하거나 소량의 기름을 곁들였을 때 일부 유익한 성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리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파프리카의 카로티노이드, 기름에 살짝 볶으면 흡수에 유리한 이유
파프리카는 빨간색과 노란색, 주황색 등 색깔에 따라 다양한 카로티노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빨간 파프리카에는 캡산틴과 캡소루빈 같은 붉은색 카로티노이드가 들어 있으며, 베타카로틴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성분은 식물의 색을 만드는 동시에 산화 스트레스와 관련된 세포 반응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파프리카를 살짝 볶으면 열에 의해 세포벽과 세포막 구조가 부드러워지면서 카로티노이드가 식품 조직에서 빠져나오기 쉬워질 수 있다.
또한 카로티노이드는 지방과 함께 섭취할 때 소화 과정에서 미셀이라는 미세한 입자에 포함돼 장에서 흡수되기 유리하다. 따라서 파프리카에 올리브유를 소량 넣어 볶으면 생으로 먹을 때보다 일부 카로티노이드의 체내 이용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사람의 암 발생 위험을 직접 낮춘다는 사실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파프리카의 비타민 C와 베타카로틴, 오래 볶으면 오히려 손해인 이유
파프리카는 카로티노이드뿐 아니라 비타민 C가 풍부한 채소다. 특히 빨간 파프리카 100g에는 약 128mg의 비타민 C가 들어 있으며, 품종과 재배 조건에 따라 함량이 달라진다. 비타민 C는 정상적인 항산화 방어와 콜라겐 합성에 관여하고,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필요에 따라 비타민 A로 전환돼 면역 기능과 세포 분화에 사용된다. 그러나 비타민 C는 열과 산소에 민감해 오래 가열하면 일부가 손실될 수 있다.
카로티노이드 역시 지나치게 높은 온도에서 장시간 조리하면 산화되거나 분해될 수 있다. 따라서 파프리카를 볶을 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뒤 기름을 소량 두르고 짧게 조리하는 것이 좋다. 표면이 검게 탈 정도로 익히기보다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을 때 불을 끄는 편이 영양소 손실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파프리카는 생으로 먹으면 비타민 C 섭취에 좋고, 살짝 볶으면 카로티노이드 이용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근의 베타카로틴, 살짝 볶았을 때 체내 이용률이 높아지는 이유
당근은 베타카로틴과 알파카로틴이 풍부한 대표적인 주황색 채소다. 특히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프로비타민 A 성분으로, 정상적인 세포 분화와 면역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근을 생으로 먹으면 카로티노이드의 일부가 단단한 식물 세포벽 안에 남아 소화 과정에서 충분히 방출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당근을 잘게 썰어 가열하면 세포 조직이 부드러워지면서 베타카로틴이 소화액과 접촉하기 쉬워진다. 여기에 소량의 기름을 더하면 지용성인 베타카로틴의 흡수에도 유리하다.
2012년 국제학술지 ‘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발표된 소규모 인체 연구에서는 생당근과 볶은 당근을 비교한 결과, 볶은 당근에서 베타카로틴의 체내 이용률이 크게 높아졌다. 다만 이는 특정 조리 조건에서 영양소 흡수를 측정한 연구이며, 볶은 당근을 먹으면 암 예방 효과가 몇 배 증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근의 알파카로틴과 식이섬유, 항산화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는 방법
당근에는 베타카로틴 외에도 알파카로틴과 루테인, 식이섬유, 칼륨 등이 들어 있다. 생당근 100g에는 베타카로틴이 약 8,300μg, 식이섬유가 약 2.8g, 칼륨이 약 320mg 포함돼 있다. 알파카로틴과 베타카로틴은 모두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식물성 성분으로, 산화 스트레스와 관련된 연구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 관찰연구에서는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채소를 충분히 먹는 식습관이 특정 암의 낮은 발생 위험과 관련된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련성이 당근 하나의 항암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당근을 볶을 때는 얇게 썰거나 채를 친 뒤 올리브유 또는 들기름을 소량 사용하면 좋다. 지나치게 오래 볶기보다는 부드럽게 씹힐 정도로 익히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카로티노이드의 흡수율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기름을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당근은 기름을 소량 곁들인 볶음이나 찜 요리로 먹고, 다른 채소와 함께 섭취해 다양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이 좋다.

케일의 글루코시놀레이트, 살짝 가열하면 항암 관련 성분이 달라지는 이유
케일은 브로콜리와 양배추처럼 십자화과에 속하는 채소로, 글루코시놀레이트라는 황 함유 식물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케일을 자르거나 씹으면 식물 조직에 있던 글루코시놀레이트가 미로시나아제라는 효소와 만나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계열의 화합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성분은 세포의 해독 관련 효소와 염증 반응, 세포 증식 조절에 미치는 영향이 연구되고 있다. 특히 케일에는 이베린이라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성분이 존재하며, 일부 실험실 연구에서 세포 보호와 관련된 작용이 관찰됐다.
2020년 국제학술지 ‘Food Chemistr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케일을 포함한 십자화과 채소를 가볍게 볶거나 찌는 등의 조리법이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생성량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열 온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조리 시간이 길어지면 미로시나아제 효소가 비활성화돼 유익한 성분의 생성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케일은 강한 불에 오래 볶기보다 짧게 가열하는 것이 유리하다.

케일의 루테인과 비타민 K, 살짝 볶아 먹으면 좋은 이유
케일은 글루코시놀레이트 외에도 루테인과 베타카로틴, 비타민 K, 비타민 C, 칼슘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한 채소다. 특히 루테인과 베타카로틴은 지용성 카로티노이드로, 소량의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체내 흡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케일을 살짝 볶으면 질긴 잎 조직이 부드러워져 먹기 편해지고, 일부 카로티노이드가 소화 과정에서 방출되기 쉬워질 수 있다. 반면 비타민 C와 엽산처럼 열에 민감한 영양소는 조리 과정에서 손실될 수 있다.
케일의 글루코시놀레이트 역시 오래 삶으면 조리수로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물을 많이 사용하는 조리법보다 짧은 볶음이나 찜이 유리한 경우가 있다. 케일을 조리할 때는 잎을 깨끗하게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잠시 두었다가 소량의 기름으로 짧게 볶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조직을 자르는 과정에서 미로시나아제가 작용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다만 케일의 특정 성분이 실제로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직접적인 인체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파프리카: 살짝 볶으면 캡산틴과 베타카로틴 등 지용성 카로티노이드의 체내 이용에 유리할 수 있다.
당근: 가열로 세포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기름이 더해지면서 베타카로틴 흡수율이 높아질 수 있다.
케일: 짧은 가열은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생성과 카로티노이드 이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가열은 오히려 불리하다.
추천 조리법: 소량의 기름으로 짧게 볶고, 채소가 검게 타거나 지나치게 무르지 않도록 조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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