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복도를 걸으며 손에 든 과일 바구니를 내려다본다. 무엇을 들고 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막상 문 앞에 서니 이것이 정말 필요한 선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병실 안에는 이미 비슷한 과일 바구니가 몇 개나 놓여 있고, 환자는 그것들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평생 소유를 덜어내는 삶을 실천한 승려이자 수필가인 그는, 진정한 나눔이 물질의 전달이 아니라 존재의 공유임을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병문안에서 나누어야 할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4위 – 건강 조언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건강 정보를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어느 병원이 좋다더라, 무슨 음식이 효과가 있다더라, 누구는 이렇게 해서 나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다. 말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지만, 듣는 환자는 이미 의료진과 상의하며 자신의 치료 방향을 정한 상태다.
조언은 대개 환자가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병상에 누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시선이다.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침묵 속의 이해다.
3위 – 위로의 말
“힘내세요”, “곧 나을 거예요” 같은 말을 건네는 순간, 환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선의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말은 때로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들린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로는 말의 형태를 빌리지만, 정작 그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침묵이 어색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서 꺼내는 말들이다.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은 말로 포장한 위안이 아니라 말없이 함께 머무는 용기다.
2위 – 긍정 에너지
병문안을 온 사람이 지나치게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병실 분위기를 띄워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그 밝음에 맞춰 웃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아픈 몸으로 상대의 기대에 반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긍정은 강요될 수 없다. 병든 사람에게는 슬퍼할 권리, 두려워할 권리, 약해질 권리가 있다. 문병객이 가져온 밝음이 오히려 환자의 어두운 감정을 부정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은 억지로 만든 긍정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든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다.
1위 – 시간
병문안의 본질은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환자 곁에 앉아 그의 호흡 리듬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는 것, 말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 서두르지 않고 그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말한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간의 공유를 뜻한다.
병든 사람은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자신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고립감이다. 그때 누군가 자기 시간을 내어 곁에 앉아 있어 준다면, 그것은 어떤 선물보다 귀하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다시 만들 수도 없으며, 오직 나눔으로써만 의미를 갖는다.
다음 병문안 때는 빈손으로 가도 좋다. 대신 서두르지 말고, 스마트폰을 꺼두고, 환자의 손을 잡거나 그저 곁에 앉아 함께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시간이 진정으로 나눈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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