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남은 사람들이 그 친구의 흉을 보기 시작한다. 모두가 맞장구치는 사이 한 사람만 조용히 입을 열고, 공자는 이런 태도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불렀다.
휩쓸리지 않는 용기: 흉보는 자리에서 입을 연 한 사람
‘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굳은 의지와 뜻을 지키는 용기를 말한다. 부드럽게 어울리면서도 옳지 않은 일에는 휩쓸리지 않고, 감정과 욕심에서 스스로를 절제하며, 세상의 많은 소리에도 자기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조화와 관용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공자가 수양을 위해 일상에서 반드시 지킨 신념은 4가지였다. 그중 ‘사사로운 뜻을 품지 않는다’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아집이 없다’는 모든 일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집이 강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 용기가 지나치면 만용이 되고 예의가 지나치면 아부가 되듯, 신념과 원칙도 지나치면 고집이 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야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다.
그릇이 드러나는 순간: 커피를 쏟은 직원, 오지 못한 친구, 칭찬받은 동료
사람의 진짜 그릇은 별것 아닌 순간에 드러난다. 식당 직원이 실수로 옷에 커피를 쏟으면 화를 내기보다 당황한 직원을 먼저 안심시키는 사람이 있다. 친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혼식에 오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서운함보다 친구의 사정을 먼저 살핀다. 동료의 아이디어가 칭찬받으면 자기 공을 보태지 않고 동료의 몫을 온전히 인정한다.

이런 작은 선택이 쌓여 한 사람의 성품이 되고 마음 그릇의 크기를 정한다. 마음도 그릇처럼 넘치는 감정은 덜어내고 부족한 마음은 채우며 수시로 닦아주어야 한다.
맹자가 본 네 가지 선한 마음: 측은지심에서 인의예지까지
횡단보도에서 한 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면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달려가 아이를 붙잡는다. 눈앞의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 가지 마음을 타고난다고 보았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은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이 되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은 옳음을 지키는 의(義)가 된다.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사양지심은 상대를 존중하는 예(禮)가 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은 세상을 바르게 판단하는 지(智)가 된다. 이 마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서 인의예지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순간의 자존심을 지키려다 소중한 관계를 잃는 사람들
맹자가 말하는 진정한 어른은 크고 작은 것의 중요성을 가려 선택하는 사람이다. 순간의 자존심을 지키려다 소중한 관계를 잃고, 눈앞의 이익을 좇다 오래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작은 것을 무조건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성공을 추구하되 옳지 않은 길을 택하지 않고, 물질을 얻더라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된다. 어른은 잠깐의 감정보다 오래 지켜야 할 관계를, 눈앞의 이익보다 자신의 신뢰를 택한다.
삶이 흔들릴 때 드러나는 마음의 크기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누구나 너그럽고 의연해 보인다.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혼자 견뎌야 할 시간이 오면 그 사람이 지닌 마음의 크기가 드러난다. 《맹자》에는 “화와 복은 스스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뜻하지 않은 불행이 모두 자기 탓이라는 뜻은 아니고, 그 이후의 삶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회남자》는 작은 개미구멍 때문에 둑이 무너지고 작은 불씨가 거대한 건물을 태울 수 있다고 했다. 사소한 거짓말과 작은 욕심을 가볍게 여기면 오랫동안 쌓은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오랜 귀양 생활에서도 고난에 순응하며 평안을 찾으려 했다. 글을 가까이하고 음악을 즐기고 시를 읽고 쓰며 작은 즐거움으로 지친 마음을 쉬게 했다.
《대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한다.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큰일도 자기 자신을 닦고 가까운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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