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알고 지내던 지인과 마주 앉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허전함이 남을 때가 있다. 분명 두 시간 넘게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상대는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고, 헤어질 때의 표정도 전보다 어색해 보인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가 독립한 뒤에는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자체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도 연락이 점차 뜸해지니 한 번의 만남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오히려 상대와의 거리가 멀어진다면, 만나는 사람의 수보다 자신이 그동안 건넨 말들을 가만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앞설수록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거나 충고를 건네고, 그동안 쌓인 걱정을 한꺼번에 털어놓기 쉽기 때문이다.

경험이 대화를 덮을 때
상대가 고민을 꺼냈을 때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라며 슬그머니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꺼낸 경험이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대화의 주인공이 바뀐다.
정작 상대는 어설픈 해결책보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반응을 기다렸을 수 있다. 이럴 때는 내 경험을 말하기 전에 “그때 마음이 정말 많이 무거웠겠네”라고 먼저 받아주는 편이 낫다.
이어서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나”라고 물으면 상대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마칠 여유가 생긴다. 내 경험은 상대가 궁금해할 때 짧게 보태도 결코 늦지 않다.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보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을 다시 찾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대를 가르는 한마디
“요즘 젊은 사람들은”이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도 관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이러한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순간 대화는 따뜻한 교류가 아니라 일방적인 평가가 되고 만다. 듣는 사람은 마치 자기 세대 전체가 꾸중을 듣는 듯해 마음의 문을 닫는다.
내 안에서 선입견이나 판단이 올라올 때는 “나는 익숙하지 않아서 궁금하다”라고 바꾸어 말하는 방법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나”라고 물어보면 차이는 다툼의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나이를 앞세워 답을 정하기보다 모르는 것을 묻는 태도가 세대가 다른 사람도 편히 머물게 한다.
걱정만 남는 만남
몸의 불편함과 돈 걱정, 자녀에 대한 서운함은 누구에게나 털어놓고 싶은 솔직한 이야기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는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매번 같은 불평으로 대화를 채우면 듣는 사람도 어찌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하소연이나 걱정을 하나 말했다면 최근에 고마웠던 일이나 소소하게 웃었던 일도 하나 덧붙이는 편이 좋다.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내 하소연은 짧게 정리하는 습관도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지낸 시간이 길수록 대화의 감각이 무뎌질 수 있지만, 말투는 오늘 만나는 한 사람 앞에서 다시 다듬어 나갈 수 있다. 외롭다는 마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자신을 심하게 탓할 필요도 없다. 한 번 더 듣고 덜 판단하며 작은 기쁨을 나누는 태도가 곁에 오래 머물고 싶은 관계를 천천히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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