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집에 반찬을 가져갔는데..” 현관 앞에서 들은 며느리의 한마디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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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고 제 가정을 꾸려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스러운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평생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밥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곤 합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평생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워온 저 역시 그랬습니다. 새벽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뜨거운 기름 앞에 서서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면서도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만큼은 늘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마흔 해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일흔한 살이 되던 어느 토요일 아침, 아들 집에 반찬을 가져갔다가 현관문 너머로 들려온 며느리의 한마디는 제가 평생 당연하게 여겼던 모성애의 의미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제 이름은 박정순,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은 8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부천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인천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 모두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가까운 인천에 사는 큰아들 민석이네가 아무래도 제 마음에 더 쓰였습니다.
큰아들 민석이는 어릴 때부터 유독 입이 짧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때도 밥상 앞에서 한참을 꾸물거렸고, 조금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소고기장조림과 멸치볶음, 깻잎김치를 자주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그 반찬들만 있으면 밥 두 공기도 거뜬히 먹었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제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주말마다 반찬을 싸서 보내주었고, 결혼한 뒤에도 틈틈이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주었습니다. 며느리 수연이가 처음에는 고맙다며 잘 먹겠다고 인사했기에, 저는 그것이 젊은 부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아들이 결혼한 지 올해로 12년째입니다. 손주는 초등학교 5학년인 지우와 2학년인 하린이, 둘입니다. 며느리 수연이는 작은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며 집안 살림과 아이들 양육을 함께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맞벌이로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습니다. 퇴근해서 아이들 밥까지 챙기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아들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보통 금요일 저녁부터 재료를 손질해 토요일 아침 일찍 음식을 완성했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장조림은 물론이고 손주들이 잘 먹는 계란말이와 잡채, 며느리가 좋아한다고 했던 오이소박이까지 넉넉하게 만들었습니다. 반찬통을 하나씩 채울 때마다 며느리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물론 아들 집에 갈 때마다 반가운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가끔 냉장고에 반찬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이렇게 자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먹고 부부도 밖에서 식사하는 일이 많아 음식을 다 먹기 어렵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그저 저를 걱정하는 며느리의 배려로 받아들였습니다.
“수연아, 음식이야 남으면 냉동실에 넣어두면 되지. 너희 맞벌이하느라 얼마나 바쁘니. 어미가 해줄 수 있을 때 해줘야지.”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미소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큰 위안이었습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집에서 음식 만드는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달 둘째 주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아들 민석이의 마흔네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아들은 생일에 가족끼리 조용히 외식을 하기로 했다며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장조림만큼은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생일이면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올리던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날 저녁 동네 정육점에서 한우 사태를 넉넉하게 사 왔습니다. 평소라면 가격 때문에 망설였겠지만 아들 생일이니 좋은 고기를 먹이고 싶었습니다. 밤늦도록 고기를 삶고 간장 양념을 졸였으며, 새벽에는 며느리와 손주들이 좋아하는 반찬까지 몇 가지 더 만들었습니다. 장조림이 맛있게 완성되자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아들 생일상을 함께 차리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열 시쯤, 반찬통 여섯 개를 보냉 가방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기가 힘들었지만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까웠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인천에 있는 아들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가방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버스에서 내릴 때는 무릎이 욱신거렸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좋아할 모습을 떠올리니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아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예전에 아들이 알려준 번호 그대로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올라가 익숙한 현관문 앞에 섰습니다. 평소처럼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 문 안쪽에서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 안에서는 아들과 며느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이 들리는 순간, 초인종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여보, 오늘도 어머니 오시는 거 아니지? 나 정말 이제 반찬 받는 거 너무 스트레스야.”
며느리의 목소리에는 평소 제가 듣던 부드러운 말투와는 전혀 다른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순간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어지는 아들의 대답은 더욱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엄마가 우리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잖아. 그냥 고맙게 받아두면 되지.”
그러자 며느리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당신은 받기만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냉장고는 늘 꽉 차 있고, 애들은 잘 먹지도 않는데 버리자니 죄책감 들고, 안 먹으면 어머니가 서운해하시잖아. 지난번에도 반찬통 비우느라 며칠이나 같은 반찬 먹었는지 알아?”
저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양손에 들고 있던 보냉 가방이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 가슴을 찢어놓은 것은 그다음에 들려온 한마디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 반찬은 이제 음식이 아니라 숙제 같아. 받으면 무조건 먹어야 하고, 맛있다고 해야 하고, 빈 통까지 씻어서 돌려드려야 하잖아. 나는 주말만큼은 우리 가족끼리 편하게 쉬고 싶어.”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만든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숙제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고기를 삶고 반찬을 만들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며느리가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담아온 오이소박이까지 떠올랐습니다.
저는 더 이상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은 채 조용히 몸을 돌렸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떨렸고, 문이 열리자마자 얼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혹시라도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와 저를 발견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눈물이 자꾸만 흘렀습니다. 반찬 가방을 든 팔은 저려왔고 무릎에서는 통증이 올라왔지만, 어디에 내려놓고 쉬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눈물이 보일까 봐 고개를 숙인 채 걸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식탁 위에 반찬 가방을 올려놓았습니다. 새벽부터 정성껏 만들었던 음식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아들과 손주들이 맛있게 먹을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을 반찬들이었지만, 그날은 차마 뚜껑조차 열어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식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며느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숙제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며느리가 냉장고에 반찬이 많다고 했던 일,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며 양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 모든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라 식성이 다르겠거니, 그래도 집에서 만든 반찬이 몸에 좋으니 먹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는 몇 달 전부터 반찬을 가져오기 전에 연락을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었습니다. 주말에는 아이들 학원이나 가족 일정이 있으니 미리 시간을 맞추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끼리 무슨 약속을 그렇게 따지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아들 집에 가는 것이 남의 집을 방문하는 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운한 마음이 가라앉자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음식이 언제나 자식들에게 반가운 선물이었던 것은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분명 여러 차례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했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니 당연히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의 말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제 정성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사실만큼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무거운 반찬 가방을 들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찾아간 시간이 떠오를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 저녁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생일을 앞두고 안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건강은 괜찮은지,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가족끼리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어머니도 함께 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몸이 좋지 않아 이번에는 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저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들에게 현관 앞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괜한 말 한마디로 부부 사이에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들이 며느리와 저 사이에서 곤란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냉장고에 반찬통을 하나씩 넣었습니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장조림은 작은 용기에 나누어 냉동실에 보관했고, 잡채는 이웃집에 조금 나누어주었습니다. 남은 반찬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평생 처음 느껴보는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장을 보고 토요일 아침이면 반찬을 만들던 일상이 제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 저는 처음으로 반찬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새벽부터 시장에 나갔을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혼자 따뜻한 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손이 허전했고, 오후가 되자 괜히 아들 집 냉장고가 걱정되었습니다. 손주들은 밥을 잘 먹고 있을까, 며느리는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가족도 자기들만의 생활이 있고, 이제는 제가 모든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3주가 지났을 무렵, 뜻밖에도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는 아들을 통해 안부를 전하는 일이 많았기에 직접 걸려온 전화가 조금 의아했습니다. 며느리는 조심스럽게 잘 지내고 계시느냐고 물었고, 요즘 통 반찬을 가져오지 않으셔서 어디 편찮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수연아, 나 지난번에 너희 집에 반찬 가져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이 있어. 현관 앞에서 네가 민석이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
전화기 너머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며느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들었던 말을 하나하나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 음식이 며느리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미리 묻지 않고 반찬을 가져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전했습니다.
잠시 후 며느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니, 그날 제가 했던 말을 들으셨어요?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가 얼마나 정성껏 만드시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어요.”
며느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동안의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 학교와 학원 일까지 챙기다 보니 늘 시간에 쫓겼고, 주말만큼은 가족끼리 간단히 외식을 하거나 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주 많은 양의 반찬을 가져오면서 냉장고가 가득 찼고, 다 먹지 못한 음식이 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음식을 남기면 제가 서운해할까 봐 억지로 먹기도 했고, 냉장고에 오래된 반찬을 버리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몇 번이나 양을 줄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제가 그 말을 가볍게 넘기자 답답한 마음이 쌓였고, 결국 남편에게 짜증 섞인 말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습니다. 그동안 제가 건넨 음식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받는 사람의 형편과 마음을 살피지 않은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며느리가 여러 차례 조심스럽게 거절했는데도, 저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당연히 반가울 것이라는 제 생각만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며느리에게도 제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음식의 양이 부담스러웠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제가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했습니다. 그 반찬들에는 단순히 고기와 채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어릴 때부터 쌓아온 수십 년의 기억과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는 제 말을 끝까지 듣더니 조용히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필요한 반찬이 있을 때 먼저 부탁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음식을 만들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방문할 때는 반드시 미리 연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반찬에 대한 서로의 진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의 서운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가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사실은 고마웠지만, 현관 앞에서 들었던 말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며느리 역시 그동안 제가 자신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던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상대방의 마음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일요일 오후, 아들 가족이 저희 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손주들을 데리고 작은 과일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평소처럼 반찬을 얻어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제가 좋아하는 불고기와 나물 몇 가지를 직접 준비해 왔고, 아들은 식탁을 차리며 손주들에게 할머니를 도와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날 식탁은 예전과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모든 음식을 혼자 준비하는 대신 며느리가 가져온 반찬과 제가 끓인 된장국이 함께 올라왔습니다. 손주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했고, 아들은 오랜만에 편안한 표정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며느리도 평소보다 한결 밝아 보였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큰손녀 지우가 제게 다가와 작은 부탁을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만들어주던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엄마가 만들어주는 계란말이도 맛있지만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것은 안에 당근과 치즈가 들어 있어 더 맛있다고 했습니다. 손녀의 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습니다.
“어머니, 다음에 시간 괜찮으실 때 지우 계란말이 만드는 법 좀 알려주세요. 저도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습니다. 이제는 며느리가 제 음식을 무조건 받아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음에 함께 만들어보자고 대답했고, 손녀는 신이 나서 손뼉을 쳤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매주 반찬을 만들어 아들 집으로 가져가지 않습니다. 대신 한 달에 한두 번쯤 아들 부부에게 필요한 음식이 있는지 먼저 물어봅니다. 며느리는 가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조림이나 계란말이를 부탁하고, 저는 그때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보냅니다.
처음에는 그런 변화가 조금 서운했습니다. 예전처럼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반찬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졌고, 남는 시간에는 제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동네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서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지만 철물점 일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치여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처음 붓을 잡았을 때는 손이 떨려 글씨가 삐뚤어졌지만,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평생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내로 살아왔던 제가 비로소 제 이름으로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들 집에 가져갈 반찬 재료를 사느라 시장을 돌아다녔을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제 몸과 마음을 돌봅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과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일은 결코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 민석이에게서 뜻밖의 문자가 왔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자주 만들어주던 소고기장조림이 문득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무조건 만들어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다음 주말에 자신이 고기를 사 갈 테니 함께 만들어볼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문자를 읽고 한참 동안 웃었습니다.
그다음 주말, 아들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들고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나란히 부엌에 서서 장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 제가 고기를 찢어 밥 위에 올려주던 기억을 떠올렸고, 저는 장조림 국물에 밥을 비벼 먹던 어린 아들의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음식을 만드는 동안 오래전 남편이 살아 있을 때의 따뜻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날 아들은 음식을 완성한 뒤 작은 용기에 장조림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갈 만큼만 챙긴 뒤 나머지는 제가 먹으라며 냉장고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제가 모든 것을 해주지 않아도, 아들이 제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날 밤 아들 가족이 돌아간 뒤, 저는 조용한 거실에 앉아 지난 일을 떠올렸습니다. 아들 집 현관 앞에서 며느리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던 날, 저는 제 평생의 사랑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며느리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 사랑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언제나 상대방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부담스럽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제게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보다, 받는 사람이 얼마나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것보다 필요한 만큼의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주는 것이 더 따뜻한 배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물론 며느리의 말이 처음부터 상처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서운함은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기억에만 매달려 며느리를 원망했다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진심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행동을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같은 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흔한 해를 살아오면서 저는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식이 배부르게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제 몸이 조금 고단하더라도 가족이 편안하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사랑은 많이 주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대신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 역시 부모의 정성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경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충분히 듣고 존중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제 제 냉장고에는 예전처럼 반찬통이 가득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먹을 만큼의 음식이 정갈하게 담겨 있고, 가끔 아들과 손주들이 찾아와 함께 만든 반찬이 한두 통씩 놓여 있습니다. 집 안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예전처럼 그 고요함이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지난주에는 손녀 지우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학교에서 가족을 소개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할머니의 계란말이를 적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녀는 다음에 놀러 가면 함께 계란말이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저는 이제 손녀가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미리 계란을 사두지 않습니다. 손녀가 오면 함께 장을 보고, 같이 재료를 손질하고, 나란히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어쩌면 반찬통 가득 담아 보냈던 음식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현관 앞에서 들었던 며느리의 한마디는 제게 큰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가 평생 당연하게 여겼던 사랑의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는 무거운 반찬 가방을 들고 아들 집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 가족을 만납니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제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이제야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며 웃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남편 사진을 바라보며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혼자 책임지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자식이 어른이 된 뒤에는 부모도 조금씩 그 손을 놓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할 때 언제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남겨두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일흔한 살의 저는 이제야 그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자식들의 밥상을 챙기는 일만큼이나 제 자신의 하루도 소중히 돌보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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