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집이 있다..” 나태주 시인이 말한 늙어서 삶을 지탱하는 작은 행복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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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행복이라는 말이 조금씩 낯설어진다. 젊을 때는 행복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목표였고, 그곳에 닿기 위해 부지런히 달렸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면 달려온 길은 길고 손에 쥔 것은 생각보다 적다. 자식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일터는 멀어지고, 하루는 길어진다. 그때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이제 무엇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아야 하는가.
시인 나태주는 시 「행복」에서 이렇게 썼다. “저녁 때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시는 행복을 무언가를 이루는 일로 그리지 않는다. 이미 곁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로 그린다. 돌아갈 곳과 떠올릴 사람. 너무 평범해서 셈에 넣지 않던 것들이 실은 삶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시에 비추어, 나이 들어 삶을 지탱해 주는 작은 행복을 거꾸로 하나씩 짚어본다.
4위 – 저녁이라는 시간
시는 행복의 시간을 ‘저녁 때’로 정해 두었다. 하루가 끝나고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젊어서는 저녁도 또 다른 일의 연장이었다. 회식이 있었고 야근이 있었고 미처 끝내지 못한 걱정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저녁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해가 기우는 것을 보고, 밥 짓는 냄새를 맡고,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것을 확인한다. 별일 없이 저녁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작은 행복이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을 허전함이 아니라 쉼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저녁마다 조금씩 회복한다.
3위 – 돌아가는 길
시인은 ‘집이 있다’고 쓰지 않고 ‘돌아갈 집이 있다’고 썼다. 행복은 집 그 자체보다 돌아가는 움직임 속에 있다.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 바깥을 겪고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나갈 일이 줄어든다. 그러면 돌아가는 기쁨도 함께 줄어든다. 하루 종일 집 안에만 머무는 사람은 집이 고마운 줄 모른다. 동네 한 바퀴든 시장 나들이든 잠깐이라도 문밖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사람에게 집은 다시 반가운 곳이 된다. 돌아갈 곳을 소중히 여기려면 먼저 한 번은 나서야 한다.
2위 – 머물 수 있는 자리
돌아갈 집이란 넓고 좋은 집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나여도 괜찮은 자리, 꾸미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말한다. 낡은 소파 한쪽, 늘 앉는 식탁 의자, 손에 익은 찻잔 하나가 그런 자리를 만든다.
중장년에 이르면 집의 크기를 두고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줄여서 이사를 가거나 혼자 남은 집이 너무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을 지탱하는 것은 평수가 아니라 그 안에 내 몸이 편히 놓이는 자리 하나다. 그 자리를 잘 가꾸는 사람은 어디로 옮겨 가도 다시 돌아갈 집을 만든다.
1위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시의 두 번째 행복은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다. 꼭 옆에 있지 않아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힘들 때 떠올리기만 해도 버틸 힘이 생기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곁에 있는 사람은 하나둘 줄어든다. 먼저 떠나보낸 사람도 있고, 멀리 사는 자식도 있고, 소식이 끊긴 오랜 친구도 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사람은 혼자가 아니게 된다. 시인의 말에 비추어 보면, 힘든 날 떠올릴 이름 하나를 품고 사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행복이다.
그러니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힘들 때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짧은 문자 한 줄을 보내 보면 좋겠다. “오늘 문득 생각나더라” 정도면 충분하다. 답이 오든 오지 않든 상관없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사람에게 그 마음을 한 번 건네는 일, 그것으로 오늘의 저녁은 조금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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