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자신에게서 찾아라..” 공자가 말한 늙어서 이혼 전 배우자가 오래 참아 온 내 잘못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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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이 수십 년을 넘기면 다툼의 이유는 오히려 흐릿해진다. 무엇 때문에 서운했는지는 잊혀도 서운했다는 감정만은 오래 남는다. 그러다 어느 날 ‘이혼’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상대가 잘못한 일이 줄을 지어 떠오른다. 내 몫의 잘못은 그 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사상가 공자의 언행은 제자들의 손을 거쳐 『논어』로 전해진다. 위령공편에는 “군자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는 구절이 실려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관계가 어긋날 때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을 정확히 짚는다. 이 말은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으라는 뜻이 아니다. 시선을 바깥으로만 돌리지 말고 한 번은 안쪽으로도 돌려 보라는 뜻이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돌아볼 만한 내 몫의 잘못이 몇 가지 보인다.
4위 – 당연하게 여긴 수고
오래 함께 산 부부일수록 상대의 수고는 배경처럼 흐려진다. 차려진 밥상과 정리된 서류, 챙겨진 경조사는 누군가 손을 써야 그 자리에 놓인다. 그런데도 그 손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지쳤다고 말할 때 “다들 그렇게 산다”고 답한 적이 있다면 이 항목을 지나치기 어렵다. 고맙다는 말을 아낀 세월은 상대 쪽에서 보면 혼자 버틴 세월이 된다. 그 세월이 쌓이면 이혼 서류를 내미는 쪽은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오래 참아 온 것이다.
3위 – 혼자 정한 노후 계획
은퇴를 앞두면 많은 사람이 앞으로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귀촌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모아 둔 돈을 어디에 쓸지 정한다. 문제는 그 그림 안에 배우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되, 정작 배우자의 의견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상의 없이 정한 계획은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통보가 된다. 상대가 반대하면 서운함이 앞서고, 반대하지 않으면 그 계획이 함께 정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남은 삶을 함께 걸을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았다면, 그 길에서 혼자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위 –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은 순간
부부 사이의 금은 큰 사건보다 작은 장면에서 생긴다. 양가 어른들 앞에서, 친척 모임에서, 자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배우자가 홀로 서 있던 장면이 있다. 그때 나는 중재한다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 있었을 수 있다.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저 조용히 있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는 오래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이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결정적인 이유로 바로 이런 장면을 꺼낸다. 상대가 그때 이야기를 왜 아직도 하느냐고 묻기 전에, 그때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부터 떠올려 볼 일이다.
1위 – 상대를 고치려 했던 마음
공자의 말에 가장 정면으로 닿는 것은 이 항목이다. 결혼 생활이 힘들 때 사람은 대개 상대만 바뀌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말투만 고치면, 그 습관만 버리면, 생각만 바꾸면 된다고 여긴다. 이 믿음 속에서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바깥에 있다.
이것이 바로 잘못을 남에게서 찾는 태도다. 수십 년 동안 상대를 바꾸려 애썼는데도 바뀌지 않았다면, 그 노력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평가받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고치려는 사람 곁에서 사람은 자신을 지키려고 더 단단해진다. 관계를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곧 나 자신뿐이다.
물론 모든 이혼이 한쪽의 반성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끝을 내든 다시 시작하든, 내 몫을 들여다본 사람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남 탓으로 끝낸 관계는 다음 관계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기 쉽다.
오늘 저녁 종이 한 장을 꺼내 보면 좋다. 배우자에게 서운했던 일 대신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배우자에게 서운하게 했을 법한 일을 딱 한 줄만 적는다. 거창한 반성문일 필요는 없고, 날짜와 장면 하나면 충분하다. 그 한 줄이 공자가 말한 ‘자신에게서 찾는’ 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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