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잔치비 1000만원 자식들이 나눠 냈는데..” 계산서 앞에서 드러난 삼남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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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늙어 칠순을 맞이하면 자식들은 저마다 효도를 하겠다며 잔칫상을 차립니다. 일흔 해를 버텨 온 부모에게 그날 하루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해 드리고 싶은 마음, 그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화려한 잔칫상 뒤에서 오가는 계산서 한 장이 그동안 감춰져 있던 자식들의 속마음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날도 있습니다.
올해로 꼭 일흔이 된 박만수 씨는 경북 영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생 고추 농사와 한우 몇 마리를 키우며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새벽이면 이슬 젖은 밭고랑에 쪼그려 앉아 고추 모종을 심었고, 해가 지면 외양간에 소 여물을 쑤어 주느라 허리를 펼 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내 순례 씨와 둘이서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해 삼남매를 키워 냈습니다. 큰아들 정호는 대구에서 건설회사 부장으로 일했고, 둘째 딸 미경이는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했으며, 막내아들 정민이는 고향 근처 읍내에서 작은 철물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삼남매를 키우는 동안 만수 씨 내외는 자신들을 위해 돈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큰아들이 대학에 붙던 해에는 애지중지 키우던 암소를 팔아 등록금을 댔고, 둘째 딸이 서울에서 학원을 차릴 때는 논 한 마지기를 정리해 보증금을 보탰습니다. 막내아들이 철물점을 열 때도 창고에 쌓아 둔 고춧값을 몽땅 털어 주었습니다. 정작 두 노인은 30년 넘게 같은 점퍼를 입고, 이가 시려도 치과 한 번 제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만수 씨는 한 번도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박 씨네는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굽은 허리를 슬며시 펴며 웃었습니다. 자식이 잘되는 것, 그것이 늙은 농부가 평생 바라 온 유일한 수확이었습니다.
만수 씨의 칠순을 석 달 앞둔 어느 날, 큰아들 정호가 가족 단체 대화방에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아버지 칠순인데 이번엔 제대로 해 드리자. 대구 시내 한정식집 독채 룸 예약하고, 친척 어른들도 다 모시자. 비용은 대략 100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은데, 우리 삼남매가 공평하게 나눠서 내자.]

둘째 미경이는 곧바로 “좋아요, 오빠. 아버지 평생 고생하셨는데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라고 답을 달았고, 막내 정민이도 “형, 저도 보탤게요”라고 짧게 적었습니다.
대화방을 들여다보던 만수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됐다. 그 큰돈을 왜 쓰냐. 그냥 집에서 국수나 삶아 먹자.” 하지만 아내 순례 씨는 눈가가 촉촉해진 채 남편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여보, 애들이 마음먹었다는데 한 번쯤은 못 이기는 척 받아 봐요. 우리 평생 남 잔치만 다녔잖아요.”
만수 씨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평생 동네 잔치에 축의금 봉투만 들고 다녔던 늙은 농부에게, 자식들이 차려 주는 칠순 잔치는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잔치 날이 다가오자 만수 씨는 읍내 양복점에 가서 30년 만에 새 양복을 한 벌 맞췄습니다. 아내는 미용실에 가서 곱게 머리를 했습니다. 두 노인은 그날 밤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우리가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하고 웃었습니다.
잔치 전날에는 막내 정민이가 시골집에 들러 마당을 쓸고, 어머니가 신을 굽 낮은 구두를 사 왔습니다. “어머니, 내일 많이 걸으실 텐데 발 편한 걸로 골랐어요.” 순례 씨는 신발 상자를 품에 안고 한참을 쓰다듬었습니다. 평생 장화와 고무신만 신어 온 발에 처음으로 반짝이는 구두가 신겨졌습니다.

칠순 당일, 대구 시내의 한정식집 독채는 화려했습니다. 대문 앞에는 ‘박만수 님 칠순 축하연’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방 안에는 떡 케이크와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친척 어른들과 마을 이웃들까지 서른 명 가까운 손님이 모였습니다.
큰아들 정호는 마이크를 잡고 “저희 아버지는 평생 흙만 만지며 저희 삼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저희가 드리는 작은 보답입니다”라며 큰절을 올렸습니다. 손님들은 박수를 쳤고, 만수 씨는 연신 눈가를 훔쳤습니다.
둘째 미경이는 금일봉이라며 봉투를 내밀었고, 막내 정민이는 손수 만든 감사패를 건넸습니다. 감사패에는 서툰 글씨로 ‘평생 흙으로 저희를 키우신 아버지께’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코스 요리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갈비찜과 전복, 생선회까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이 나왔습니다. 만수 씨는 평생 이렇게 많은 음식을 한 상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아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척 어른들은 “만수가 자식 복은 타고났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칠순을 챙기는 자식들이 어디 있나” 하며 연신 술잔을 건넸습니다. 만수 씨는 평소 입에도 대지 않던 소주를 석 잔이나 받아 마셨습니다.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그는 아내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여보, 우리 고생한 게 오늘 다 보상받는 것 같소.”

손님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방 안에는 삼남매와 노부부만 남았습니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계산서를 큰아들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총 1,120만 원 나왔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웃음꽃이 피던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습니다. 큰아들 정호가 계산서를 들여다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자, 그럼 정산하자. 1,120만 원이니까 셋이 나누면 한 사람당 373만 원쯤이네. 그런데 미경아, 너는 오늘 친척들 축의금 봉투 받은 거 있지? 그거 먼저 까서 보태자.”
둘째 미경이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오빠, 그 축의금은 아버지 드린 거잖아. 그리고 오빠, 솔직히 말해서 예약은 오빠가 마음대로 비싼 데로 잡은 거잖아. 나는 처음에 600만 원 선이라고 들었는데 1000만 원이 넘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러자 큰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야, 너는 서울에서 학원 하면서 돈 잘 벌잖아. 아버지 칠순에 그 정도도 못 내냐? 그리고 장남인 내가 이 자리 다 준비하느라 회사에 휴가까지 냈어. 내 수고비는 생각 안 하냐?”
막내 정민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습니다. “형, 누나, 싸우지 마. 나는 가게 사정이 어려워서 솔직히 373만 원은 좀 힘들어. 내가 150만 원만 낼게. 대신 앞으로 아버지 어머니 병원 모시고 다니는 건 내가 다 할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아들이 손바닥으로 상을 탁 내리쳤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시골 살면서 아버지 집에 맨날 드나들고 농사일 핑계로 쌀이며 고추며 다 얻어 가잖아. 그동안 받아 간 게 얼만데 칠순 잔치비도 제대로 안 내겠다는 거야?”
둘째 미경이도 질세라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는 오빠는? 오빠 아파트 살 때 아버지가 소 두 마리 팔아서 3000만 원 보태 주신 거 우리 다 알아. 그거 생각하면 오늘 잔치비는 오빠가 다 내도 모자라.”

만수 씨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평생 흙만 만지며 저희를 키우셨다”며 큰절을 올리던 큰아들, 금일봉을 내밀던 둘째 딸, 감사패를 건네던 막내아들이 계산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순례 씨는 남편의 옷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떨군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만수 씨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갔습니다. 잔치를 해 주겠다고 앞다투어 나섰던 자식들의 진심은 결국 ‘누가 덜 내느냐’의 셈법이었단 말인가. 저 계산서 한 장 앞에서 평생 키운 자식들의 민낯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때 큰아들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차피 오늘 들어온 축의금도 있으시잖아요. 그거 한 오백 정도 되지 않아요? 그걸로 일부 내시고, 나머지는 저희가 나눌게요. 그게 제일 깔끔하겠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만수 씨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오늘 들어온 축의금은 친척과 이웃들이 늙은 부부의 칠순을 축하하며 건넨 정성이었습니다. 그 돈마저 잔치비 정산에 끌어다 쓰자는 큰아들의 말은, 결국 이 잔치가 부모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자식들의 체면을 위한 자리였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000만 원짜리 잔칫상은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삼남매가 서로에게 내민 청구서였던 것입니다.

만수 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농협 통장 하나와 도장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직원을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이 계산은 내가 하겠소. 카드는 없고 내일 아침 은행 문 열자마자 이 통장에서 이체해 드리겠소.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두시오.”
삼남매가 동시에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큰아들이 당황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저희가 낸다니까요.”
만수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방 안을 얼어붙게 만들 만큼 단호했습니다.
“너희가 낸다고 한 돈은 효도가 아니라 빚이더구나. 누가 얼마를 더 받아 갔는지 장부를 펼쳐 놓고 따지는 자리였다면, 나는 애초에 이 잔치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내 칠순 밥값은 내가 낸다. 평생 흙 파서 번 돈이지만, 내 생일상 값 정도는 아직 내 손으로 치를 수 있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큰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고, 둘째 딸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막내아들 정민이만 “아버지…” 하며 울먹였습니다.
만수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하마. 앞으로 우리 늙은이 병원비며 생활비는 너희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 대신 너희도 우리 집 재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셈을 하지 마라. 남은 땅과 소는 우리 두 사람이 살다 가는 데 쓰고, 남는 것이 있으면 우리를 끝까지 돌본 사람에게 주겠다. 그건 오늘 이 자리에서 너희가 보여 준 모습으로 이미 정해졌다.”
큰아들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만수 씨는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오늘은 더 듣지 않겠다. 정민아, 네 차로 우리를 집까지 태워다 다오.”
그렇게 노부부는 화려한 한정식집을 나섰습니다. 등 뒤에서 큰아들과 둘째 딸이 “아버지!” 하고 불렀지만, 만수 씨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영천으로 돌아오는 길, 막내아들의 낡은 트럭 안에서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정민이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배고프시죠. 아까 제대로 드시지도 못했잖아요.” 정민이는 휴게소 식당에서 따끈한 우동 세 그릇을 시켜 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넣는 순간, 순례 씨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여보. 아까 그 비싼 전복보다 이 우동이 훨씬 맛있네요.” 만수 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한 그릇에 사천 원짜리가 오늘 먹은 것 중에 제일 배부르구먼.”
다음 날 아침, 만수 씨는 약속대로 은행에 가서 1,120만 원을 이체했습니다. 평생 모아 둔 노후 자금의 일부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홀가분했습니다. 돈으로 산 것은 화려한 잔칫상이었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자식들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된 값진 깨달음이었습니다.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 제목 『늙어갈 용기』처럼, 나이 든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자식의 눈치를 보며 기대는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서서 선을 그을 줄 아는 용기입니다. 자식에게 대접받는 노후보다, 자식 앞에서 당당한 노후가 훨씬 귀합니다.

잔칫상의 크기가 효도의 크기를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계산서 앞에서 서로를 탓하는 자식들의 말 한마디가 화려한 상차림보다 훨씬 오래 부모의 가슴에 남는 법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마지막까지 내 밥값은 내 손으로 낼 수 있는 힘을 지켜야 합니다.
그날 밤 영천 시골집 마당에는 가을 달빛이 환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일흔 살 만수 씨는 아내와 나란히 툇마루에 앉아 막내아들이 깎아 준 사과를 한 조각씩 나누어 먹었습니다. 화려한 잔치는 끝났지만, 두 노인의 마음에는 오히려 처음으로 진짜 평온이 찾아와 있었습니다.
출처 : ‘늙어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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