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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몰래 아들 빚 5000만원 갚아줬는데..” 남편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비밀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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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어미는 앞뒤를 재지 않습니다. 내 뼈를 깎아서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배우자에게 감춰야 하는 비밀이 되는 순간, 어미의 가슴에는 평생 내려놓지 못할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얹히게 됩니다.

올해 예순일곱이 된 이정숙 씨는 부산 영도의 오래된 주택가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남편 최용길 씨는 조선소에서 35년 동안 용접 일을 하다 은퇴한 사람으로, 말수가 적고 고집이 센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였습니다.

용길 씨에게는 평생 지켜 온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내는 제 앞가림은 제가 해야 한다. 자식이라도 다 큰 놈 빚까지 부모가 대신 갚아 주면 그놈은 평생 사람 구실 못 한다.” 외아들 준혁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 온 말이었습니다.

용길 씨는 그 원칙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게 적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소에서 손가락 두 마디를 잃었을 때도 산재 보상금을 받자마자 “이건 내 손가락 값이니 허투루 못 쓴다”며 은행에 넣어 두었고, 30년 넘게 담배 한 갑 사 피우는 것 말고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최 씨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안 건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정숙 씨는 그런 남편이 든든하면서도 때로는 서운했습니다. 아들이 사춘기 시절 방황할 때도, 대학 등록금이 모자랄 때도 남편은 “제 힘으로 해 봐야 안다”며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을 몰래 감싸 준 것은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아들 준혁이가 3년 전 겨울, 어둑한 저녁에 어머니를 동네 시장 국밥집으로 불러냈습니다. 서른일곱의 아들은 국밥 한 숟가락도 뜨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결국 식탁 밑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엄마… 가게 접었어. 은행 대출이랑 카드론, 급하게 쓴 사채까지 합치면 5천만 원이야. 이번 달 안에 사채부터 못 막으면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대. 아버지한테는 절대 말 못 하겠어. 아버지 알면 나 진짜 죽어.”

아들은 2년 전 부산 서면에 작은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손님이 제법 들었지만,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연달아 들어서면서 매출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월세와 인건비를 막느라 대출을 돌려 막다 보니 어느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습니다.

정숙 씨는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5천만 원. 남편이 35년 동안 쇳물 튀는 조선소에서 손등이 데어 가며 모은 노후 자금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무릎을 꿇은 아들의 퀭한 눈을 보는 순간, 어미의 계산은 멈춰 버렸습니다.

“일어나라, 준혁아. 엄마가 어떻게든 해 볼게. 대신 아버지한테는 죽어도 비밀이다.”

그날 밤부터 정숙 씨는 남편 몰래 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들어 두었던 적금 두 개를 깨고, 오랫동안 부어 온 보험에서 약관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란 돈은 친정 언니에게 사정해 빌렸습니다. 일주일 만에 5천만 원을 만들어 아들의 빚을 모두 정리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사채를 갚던 날, 정숙 씨는 아들과 함께 허름한 사무실 계단을 내려오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부축하며 “엄마, 이 돈 내가 꼭 갚을게. 평생 걸려도 갚을게”라며 울었습니다. 정숙 씨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갚을 생각 말고 다시는 이런 일 만들지 마라. 그거면 된다.”

그 뒤로 정숙 씨의 하루는 달라졌습니다. 언니에게 빌린 돈과 보험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동네 반찬가게에 나가 새벽부터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쳤습니다. 남편에게는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소일거리 삼아 나간다”고 둘러댔습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파스를 붙이고 버텼습니다. 저녁마다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 원칙을 지켜 온 남편 몰래 그 원칙을 깨뜨렸다는 죄책감이 밥알처럼 목에 걸렸습니다.

이상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은퇴 후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던 용길 씨가 어느 날부터 “심심해서 안 되겠다”며 동네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밤샘 근무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정숙 씨가 말려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런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비추던 아들이, 그 무렵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정숙 씨가 차려 준 저녁을 먹고 나면 꼭 동네 포장마차로 나가 한참을 이야기하다 돌아왔습니다. 정숙 씨는 ‘그래도 부자간에 정이 생겼나 보다’ 하고 고맙게만 여겼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올여름, 용길 씨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용접 연기를 평생 마신 탓이라고 의사는 말했습니다. 진단을 받은 지 넉 달 만에, 용길 씨는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투병하는 넉 달 동안 정숙 씨는 몇 번이고 남편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산소 호흡기를 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남편 앞에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이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용길 씨는 숨을 거두기 전날 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고생 많았소”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영도의 한 병원 지하에 마련되었습니다. 정숙 씨는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편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사과 한마디 못 하고 보낸 남편의 영정 사진이 원망스러울 만큼 무뚝뚝해 보였습니다.

장례 둘째 날 밤, 조문객이 끊기고 빈소에 적막이 내려앉았을 때였습니다. 아들 준혁이가 낡은 갈색 수첩 하나와 통장을 들고 어머니 곁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엄마, 이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나한테 주신 거야. 장례 끝나면 엄마한테 드리라고 하셨어.”

정숙 씨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엄마…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어. 3년 전에 엄마가 나 빚 갚아 준 거, 처음부터 다 아셨대.”

정숙 씨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손이 떨려 수첩을 제대로 쥘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3년 전, 정숙 씨가 보험 대출을 받던 날 집으로 날아온 안내 우편물을 아버지가 먼저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용길 씨는 그 길로 아들을 조용히 불러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때리지도 않고, 소주 한 병 시켜 놓고 한참을 말없이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어. ‘네 엄마가 너 살리려고 평생 모은 걸 다 털었다. 네 엄마 자존심 상하게 내가 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대신 너는 사내답게 그 돈을 갚아라. 엄마한테 말고 내 통장으로 매달 넣어라. 그 돈은 나중에 엄마 노후 자금이다.'”

그날 이후 아들은 배달 일과 공장 야간 일을 하며 매달 아버지 통장에 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 넣는 돈에 자신의 경비 월급을 고스란히 보태었습니다. 심심해서 시작했다던 경비 일은, 사실 아내의 빈 통장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정숙 씨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펼쳤습니다. 3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두 줄씩 입금 내역이 찍혀 있었습니다.

[최준혁 700,000원] [최용길 1,200,000원] [최준혁 700,000원] [최용길 1,200,000원]…

그리고 마지막 장에 찍힌 잔액은 6,800만 원이 넘어 있었습니다. 정숙 씨가 아들에게 갚아 준 5천만 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습니다. 통장 표지 안쪽에는 남편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숙이 몫’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수첩을 펼치자 맨 마지막 장에 남편이 병상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짧은 글이 있었습니다. 펜을 쥔 손에 힘이 없었는지 글씨가 여기저기 흔들려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아들 살린 거 다 알고 있었소. 모른 척한 건 당신이 그 일로 내 앞에서 고개 숙이는 게 싫어서였소. 당신은 죄지은 게 아니라 어미 노릇을 한 거요. 반찬가게 그만 나가고, 이 돈으로 무릎 수술부터 하시오. 평생 고맙고 미안했소.]

정숙 씨는 수첩을 가슴에 끌어안고 빈소 바닥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3년 동안 남편 앞에서 죄인처럼 숨죽였던 날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밤샘 경비를 마치고 새벽에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잠들던 남편의 굽은 등이, 이제야 보이지 않던 사랑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이 양반아… 왜 말을 안 했소… 왜 혼자서 다 짊어졌소… 내가 당신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보냈는데…”

아들도 어머니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무뚝뚝하고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사실 아들에게는 사내로 일어설 기회를 주고 아내에게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 준 사람이었습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가족을 버리지 않는 법을, 아버지는 말이 아니라 3년 동안의 밤샘 근무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영정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이 그제야 다르게 보였습니다.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그 표정이, 모든 것을 알고도 묵묵히 견뎌 낸 사람의 얼굴로 보였습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 날 새벽, 정숙 씨와 아들은 영도 바닷가 근처의 오래된 돼지국밥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남편이 조선소 다니던 시절 야간 근무를 마치면 늘 들르던 집이었습니다.

뽀얀 국물에 부추를 듬뿍 얹은 국밥 두 그릇이 나왔습니다. 아들이 어머니 그릇에 깍두기 국물을 조금 부어 주며 말했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이렇게 드셨잖아. 나도 이제 아버지처럼 엄마 지킬게. 남은 돈도 다 갚을 거야.”

정숙 씨는 국밥 한 숟가락을 떠 넣고 눈물을 훔쳤습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3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가슴을 천천히 녹여 주었습니다.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 속 아비 가시고기는 새끼들이 다 자랄 때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고 지키다 조용히 생을 마칩니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묵묵히 일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가족의 자존심까지 지켜 낸 뒤 말없이 떠나갑니다.

부부 사이의 비밀은 때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침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침묵이 평생의 짐이 되지 않도록, 살아 있을 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떠난 뒤에 발견한 사랑은 눈물겹지만, 함께 있을 때 나눈 사랑은 남은 날을 따뜻하게 채워 줍니다.

그날 아침 영도 앞바다에는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정숙 씨는 남편이 남긴 통장을 가방 깊숙이 넣고 아들의 팔짱을 꼈습니다. 남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묵묵한 사랑은 남은 가족의 발걸음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고 있었습니다.

출처 : ‘가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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