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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간병비 매달 100만원 혼자 냈는데..” 유산 정리하는 날 벌어진 일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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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늙고 병들면 형제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산이 시작됩니다. 누가 모실 것인가, 누가 병원비를 낼 것인가, 누가 주말마다 찾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계산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유산을 나누는 자리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과 멀찍이 서 있던 사람이 같은 몫을 요구할 때, 가족이라는 이름은 무겁게 흔들립니다.

올해 예순셋이 된 오미숙 씨는 경남 진주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남편 김동현 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4남매의 장남이었습니다. 아래로 여동생 둘과 막내 남동생이 있었는데,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았습니다.

6년 전, 시골 사천에 홀로 사시던 시어머니 정말순 여사가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깜빡깜빡하시는 정도였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가스 불을 켜 놓고 잊어버리시거나 밤중에 집을 나가 동네를 헤매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형제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큰시누이는 “우리 애가 고3이라 지금은 정신이 없어”라고 했고, 작은시누이는 “남편 사업이 어려워서 돈은 못 보태”라고 했습니다. 막내 시동생은 “저는 형편이 안 돼서 돈은 못 내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내려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남편 동현 씨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웠습니다. 결국 형제들의 시선이 모두 장남에게 쏠렸습니다. “오빠가 장남이니까 알아서 해 줘.” 큰시누이의 그 한마디로 회의는 끝났습니다. 미숙 씨는 그날 밤 남편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앞으로 이 집안의 짐이 고스란히 자신들 부부에게 올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진주의 한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요양원비와 약값, 기저귀값까지 합치면 매달 10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돈은 고스란히 장남인 동현 씨와 미숙 씨의 몫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택시 운전 시간을 하루 두 시간씩 늘렸습니다. 미숙 씨는 동네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요양원비를 냈습니다. 미숙 씨는 이체할 때마다 작은 수첩에 날짜와 금액을 꼬박꼬박 적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릇처럼 적었습니다.

주말이면 미숙 씨는 요양원에 가서 시어머니의 손발톱을 깎아 드리고 머리를 감겨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아줌마는 누구요?” 하고 물으셨고, 어떤 날은 며느리의 손을 붙잡고 “우리 큰애 왔나” 하며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는 1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잠깐 얼굴을 비쳤습니다. 올 때마다 “언니 고생이 많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과일 바구니 하나를 놓고 갔습니다. 막내 시동생만이 약속대로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어머니 곁에 하루를 머물다 갔습니다.

한번은 미숙 씨가 큰시누이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가씨, 요양원비가 올라서요. 한 달에 20만 원만이라도 보태 주실 수 있을까요?” 큰시누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도 애들 학원비 때문에 죽겠어요. 오빠네는 애들 다 키웠잖아요.” 그 뒤로 미숙 씨는 다시는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올여름, 시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49재를 마친 뒤, 4남매가 시골 사천 집에 모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남기신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천의 낡은 시골집과 그 뒤의 논밭을 합치면 시세로 3억 원 정도 되었습니다.

큰시누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자, 깔끔하게 하자. 법대로 넷이서 똑같이 나누면 되잖아. 한 사람당 7천5백씩.” 작은시누이도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래, 그게 제일 공평하지. 요즘 세상에 장남이라고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미숙 씨는 그 말을 들으며 손이 떨렸습니다. 5년 동안 매달 100만 원씩, 6천만 원이 넘는 돈을 부부가 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큰시누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언니, 간병비 얘기는 하지 마세요. 장남 집에서 어머니 모시는 건 당연한 도리잖아요. 우리도 마음은 늘 같이했어요. 형편이 안 돼서 못 낸 거지, 안 낸 게 아니에요.”

작은시누이는 한술 더 떴습니다. “솔직히 오빠네가 요양원 가까이 살았으니까 자주 간 거지, 우리는 멀어서 못 간 거고. 그리고 언니, 나중에 이 집 팔면 오빠네가 제일 가까우니까 관리하기도 편하잖아요. 그 정도면 이미 혜택 받은 거죠.”

남편 동현 씨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너희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5년 동안 매달 100만 원씩…” 그러자 큰시누이가 남편의 말을 잘랐습니다. “오빠, 그 돈은 오빠가 엄마한테 한 효도잖아. 그걸 이제 와서 돈으로 따지면 엄마가 하늘에서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미숙 씨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식당 설거지통 앞에서 고무장갑 속 손이 퉁퉁 붓도록 일한 날들, 남편이 새벽 두 시까지 택시를 몰고 들어와 쓰러지듯 잠들던 밤들, 시어머니의 기저귀를 갈며 눈물을 삼켰던 주말들이 한순간에 ‘당연한 도리’라는 말로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막내 시동생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누나들, 그건 아니야. 형이랑 형수가 아니었으면 어머니 그렇게 편하게 못 가셨어. 나는 내 몫 안 받아도 돼. 형님네가 다 가지세요.” 그러자 큰시누이가 눈을 흘겼습니다. “너는 빠져. 너야 형편이 안 되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지.”

미숙 씨는 천천히 가방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낡은 수첩 한 권과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아가씨들. 간병비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당연한 도리라고 하시니, 이것부터 보세요.” 수첩에는 5년 동안의 요양원비 이체 내역이 한 줄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 장에는 합계가 적혀 있었습니다. ‘총 6,240만 원’.

그리고 미숙 씨는 서류 봉투를 열었습니다. “이건 어머님이 치매 초기, 아직 정신이 맑으실 때 시내 공증 사무소에 가서 직접 만드신 유언 공정증서예요. 그때 저를 데리고 가셨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공정증서에는 시어머니의 이름과 도장, 그리고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천 집과 논밭은 내가 아플 때 나를 끝까지 돌볼 큰아들 내외에게 준다. 다른 자식들은 서운해하지 마라. 엄마가 아파 보니 누가 곁에 있을지 미리 알 것 같아 이렇게 해 둔다.’

방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큰시누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습니다. “이… 이게 말이 돼? 치매 걸린 엄마가 쓴 걸 어떻게 믿어? 우리도 법적으로 받을 몫이 있어. 소송하면 다 받을 수 있다고!”

미숙 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했습니다.

“그러세요, 아가씨. 법대로 하세요. 다만 법대로 하시려면 이것도 법대로 나눠야지요. 5년 동안 들어간 간병비 6,240만 원, 4남매가 똑같이 나누면 한 사람당 1,560만 원이에요. 그걸 먼저 우리 통장으로 보내 주세요. 그러고 나서 받을 몫을 이야기해요. 그게 아가씨들이 말한 공평이잖아요.”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5년 동안 과일 바구니 몇 개로 버텨 온 ‘마음’이 숫자 앞에서 초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미숙 씨는 막내 시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 도련님은 5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어머님 뵈러 오셨어요. 어머님이 정신이 드실 때마다 ‘막내 왔나’ 하고 찾으셨어요. 그러니 이 집 정리되면 도련님 몫은 제가 따로 챙길게요. 그건 어머님 뜻이기도 할 거예요.”

막내 시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남편 동현 씨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평생 동생들 앞에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던 장남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두 시누이는 결국 아무 말 없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대문을 나서며 큰시누이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미숙 씨는 더 이상 듣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두 시누이는 소송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습니다.

시골집 마당에 남은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생전에 아끼시던 감나무에는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미숙 씨 부부와 막내 시동생은 사천 읍내의 오래된 순댓국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생전에 장날이면 꼭 들러 순댓국 한 그릇을 드시던 집이었습니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뜨자, 막내 시동생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여기 오시면 꼭 형수님 그릇에 고기를 더 덜어 주셨잖아요.”

미숙 씨는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조기현의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아픈 아버지를 홀로 돌본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돌봄은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을 만큼 무거운 일입니다. 그 무게를 짊어진 사람의 수고를 ‘당연한 도리’라는 말 한마디로 지워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돌보는 일에는 정답이 없지만, 돌본 사람의 몫을 존중하는 일에는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함께 짐을 지지 못했다면 적어도 그 짐을 진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형제가 형제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도리입니다.

진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습니다. “여보, 5년 동안 정말 고마웠소. 당신 아니었으면 어머니도 나도 못 버텼을 거요.” 미숙 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습니다.

가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습니다. 미숙 씨는 가방 속 낡은 수첩을 가만히 쓰다듬었습니다. 5년 동안 적어 온 숫자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픈 기억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의 도리를 지켜 낸 한 며느리의 떳떳한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 ‘아빠의 아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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