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앞에서 아내 혼자 고민하게 두지 마세요” 100일 가사 실험 연구진이 밝힌 기획노동 나누기 꿀팁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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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맡았으니 집안일은 충분히 나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이 냉장고에 뭐가 떨어졌는지, 아이 준비물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챙기는 일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쌓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려는 가정은 늘었지만, 일을 ‘하는 것’과 ‘챙기는 것’ 사이에는 아직 간격이 남아 있다. 전남여성가족재단 일·생활균형지원센터가 최근 발표한 논문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시화는 공정성과 젠더 분업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가 이 간격을 짚었다. 이 논문은 학술지 ‘여성연구’ 2026년 제3호에 실렸다.
연구의 바탕은 ‘슬기로운 가정생활, 페어패밀리’라는 생활실험이다. 가사와 돌봄을 100개의 세부 역할로 나눠 카드로 만들고, 가족이 100일 동안 카드를 나눠 맡아 책임지고 수행하는 방식이다. 카드에는 청소나 요리 같은 실행 업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일을 미리 알아채고, 일정을 맞추고, 생활용품 재고를 관리하는 ‘기획노동’도 함께 들어 있다.
연구진은 전남 16개 가족센터와 함께 진행한 1기 100가정 가운데, 100일을 모두 마치고 심층면담에 응한 13가정을 분석했다. 외벌이가 7가정, 맞벌이가 6가정이다. 남편과 아내를 따로 나눠 모두 4개 집단을 만들고, 표적집단면접(FGI) 방식으로 참여 전후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살폈다.
◇ 카드로 나눠도 ‘머릿속 업무’는 아내에게 돌아갔다
성과는 분명했다. 남은 식재료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을 미리 사 두고, 아이의 학사 일정을 챙기는 일도 가정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이 참여 가족 사이에 자리 잡았다. 공정함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무조건 절반씩 나누기보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그 수고를 인정하며 가족 형편에 맞게 함께 책임지는 것이 공정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했다. 청소나 설거지처럼 눈에 보이는 일은 나눠졌지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파악하고 계획하는 일은 여전히 아내에게 몰렸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유가 가구 형태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외벌이 가정에서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논리가, 맞벌이 가정에서는 ‘익숙하고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빠르다’는 논리가 작동했다.
두 논리는 출발점이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외벌이 가정에서는 유급 노동 시간이 가사 책임을 면제받는 근거가 되고, 맞벌이 가정에서는 그동안 쌓인 숙련도가 다시 같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이유가 된다. 익숙한 사람이 계속 맡을수록 더 익숙해지는 순환이 생기는 셈이다. 연구진이 단순히 일손을 돕는 수준을 넘어, 가족생활을 계획하고 돌보는 책임 자체를 나누는 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고 진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연구 결과로 본 ‘챙기는 일’ 나누기 꿀팁 3가지
첫째, 보이지 않는 일부터 목록으로 꺼내야 한다. 이번 실험에서 역할카드가 한 가장 큰 일은 그동안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던 일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장보기 목록 작성, 공과금 납부일 확인, 병원 예약처럼 머릿속에서만 처리되던 업무를 종이나 공유 메모로 꺼내 놓아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
둘째, ‘도와주기’가 아니라 ‘책임’ 단위로 넘겨야 한다. 장보기를 대신 다녀오는 것만으로는 기획노동이 옮겨 가지 않는다. 무엇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언제 무엇을 살지 정하고, 다 쓰기 전에 다시 채우는 과정 전체를 한 사람이 맡아야 실질적인 분담이 된다. 연구가 실행노동과 기획노동을 구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반반 계산보다 서로의 수고를 확인하는 시간을 정례화해야 한다. 참여 가족이 도달한 공정의 기준은 기계적 균등이 아니라 상호 인정이었다. 정기적으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함께 점검하면, 익숙함을 이유로 일이 한쪽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을 일찍 알아챌 수 있다.
◇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
연구진은 해법을 가정 안에만 맡겨 두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일을 물리적으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과 돌봄의 책임까지 공유하도록 돕는 ‘가족관계 교육’을 가족정책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기에 노동시간 단축과 공적 돌봄 인프라 확충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이뤄질 때 실질적인 일·생활 균형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제언은 외벌이 가정의 ‘시간이 없다’는 논리와 직접 맞닿아 있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지 않으면 집안의 기획노동을 나눌 여유도 생기기 어렵다. 공적 돌봄이 탄탄해지면 가정 안에서 누군가 혼자 감당하던 일정 조율과 돌봄 계획의 무게도 덜 수 있다.
이번 연구는 13가정을 심층 분석한 질적 연구여서 결과를 모든 가정에 그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집안일 분담의 다음 과제가 손을 보태는 데서 끝나지 않고, 누가 가족의 일상을 기억하고 계획하는지를 묻는 데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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