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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 대학원비 8000만원 대줬는데..” 학위 받던 날 들은 한마디에 귀를 의심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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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는 없는 살림에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만큼은 풀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지원이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붙잡아 두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는 너무 늦게 알게 되곤 합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배정란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28년 동안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했습니다.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출근해 수백 명 아이들의 점심을 지었고, 커다란 솥을 젓느라 어깨와 손목이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급식실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습니다. 한여름에는 가스 불 앞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고, 겨울에는 찬물에 채소를 씻느라 손이 갈라졌습니다. 그래도 정란 씨는 아이들이 “급식 아줌마, 오늘 카레 진짜 맛있어요” 하고 인사할 때면 피곤이 싹 가셨습니다.

남편은 막내아들 동현이가 중학생이던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란 씨는 그때부터 혼자서 삼남매를 키웠습니다. 급식실 일이 끝나면 저녁에는 식당 설거지를 하러 다녔고, 주말에는 김밥집에서 일을 거들었습니다.

큰딸과 둘째 아들은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엄마 고생하는 걸 안다며 대학에 들어가서부터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탰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각자 제 앞가림을 했습니다.

막내 동현이는 달랐습니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곧잘 했지만,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탓인지 정란 씨는 막내에게만큼은 유독 약했습니다. 형과 누나가 “엄마, 동현이 너무 오냐오냐하지 마세요”라고 해도, 정란 씨는 “막내는 아빠 사랑을 못 받았잖니” 하며 감쌌습니다.

동현이가 고등학생일 때 친구들이 다 가는 학원에 혼자 못 간다며 시무룩해하자, 정란 씨는 그날로 식당 일을 하나 더 늘렸습니다. 운동화가 낡았다고 하면 자기 신발은 3년째 같은 것을 신으면서도 아들에게는 새것을 사 주었습니다. 큰딸은 그런 엄마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동현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정란 씨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 대학원 가고 싶어요. 석사 하고 박사까지 해서 교수가 되고 싶어요.” 정란 씨는 아들의 눈빛을 보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엄마가 어떻게든 해 줄게. 너는 공부만 해라.”

그렇게 시작된 대학원 생활은 7년이나 이어졌습니다. 등록금과 생활비, 학회 참가비에 해외 연수비까지, 정란 씨는 들어가는 돈을 한 번도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급식실 퇴직금 일부를 미리 당겨 쓰고, 남편이 남긴 보험금까지 털어 넣었습니다.

그 7년 동안 동현이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엄마, 연구실 일이 바빠서 알바할 시간이 없어요.” 그 말에 정란 씨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아침저녁으로 더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정란 씨가 아들의 자취방에 반찬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최신 노트북과 비싼 헤드폰을 보았습니다. “이건 웬 거니?” 하고 묻자 동현이는 “연구에 꼭 필요한 거예요”라고만 했습니다. 정란 씨는 더 묻지 않고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 넣었습니다.

명절에 모이면 큰딸 은주가 걱정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 동현이 대학원비로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 알아요? 엄마 노후는 어떡하려고요.” 정란 씨는 그때마다 손을 저었습니다. “박사 따면 다 갚을 거다. 우리 동현이가 교수 되면 엄마 호강시켜 준다더라.”

정란 씨가 가계부를 펼쳐 계산해 보니, 7년 동안 막내에게 들어간 돈은 8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정란 씨의 남은 노후 자금은 3천만 원 남짓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정란 씨는 아들이 박사 학위를 받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지난해 2월, 동현이의 박사 학위 수여식 날이 왔습니다. 정란 씨는 시장에서 산 꽃다발을 들고 새벽부터 전철을 갈아타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강당에서 박사 가운을 입은 아들이 이름이 불려 단상에 오를 때, 정란 씨는 손뼉을 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 7년의 고생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식이 끝나고 캠퍼스 벤치에 나란히 앉았을 때, 동현이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저 미국으로 박사후 연구원 가려고요. 거기서 경력을 쌓아야 교수 임용에 유리하대요.”

정란 씨는 대견한 마음으로 아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 잘됐다. 거기서는 월급도 나온다며?”

“월급이 나오긴 하는데 미국은 생활비가 너무 비싸요. 처음 정착하려면 집 보증금이랑 차도 사야 하고… 엄마, 2억만 해 주세요. 엄마 집 담보로 대출받으면 되잖아요.”

정란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꽃다발을 쥔 손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동현아,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엄마 집을 담보로?”

“엄마는 어차피 그 집에서 혼자 사시잖아요. 대출 이자는 제가 자리 잡으면 갚을게요. 엄마도 아들이 교수 되면 좋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란 씨의 머릿속에 지난 7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새벽 급식실의 뜨거운 김, 밤늦게 식당에서 설거지하던 퉁퉁 부은 손, 아들이 갚겠다던 수많은 약속들. 그리고 그 약속 중에 단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정란 씨는 천천히 꽃다발을 벤치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동현아, 엄마 집은 안 된다. 그 집은 엄마가 마지막까지 살 집이다. 엄마가 쓰러지면 기댈 곳은 그 집 하나뿐이다.”

동현이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엄마, 지금 저 잘되는 거 싫으세요?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세요.”

“싫은 게 아니다. 엄마가 너를 너무 오래 품에 안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런다.” 정란 씨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해 두마. 그동안 들어간 대학원비 8천만 원, 그건 엄마가 너한테 빌려준 돈으로 하자. 이자는 안 받으마. 대신 자리 잡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엄마 통장에 갚아라.”

동현이는 그날 화를 내며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정란 씨는 혼자 벤치에 남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꽃다발의 꽃잎이 겨울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그날 저녁, 정란 씨는 큰딸과 둘째 아들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낮에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큰딸 은주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저 대학 다닐 때 등록금 모자라서 휴학했던 거 기억나요? 그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우셨잖아요. 그런데 동현이한테는 8천만 원을… 엄마, 정말 잘하셨어요. 이제라도 엄마 인생 사세요.” 정란 씨는 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동안 다른 두 자식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둘째 아들 동훈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 동현이도 이제 서른다섯이에요. 스스로 일어서야 할 나이예요. 엄마가 계속 받쳐 주면 걔는 평생 못 일어나요.”

그날 밤 정란 씨는 막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동현아,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부터 네 꿈은 네 힘으로 이뤄라. 미국에 가든 한국에 남든, 엄마는 응원만 하겠다. 다만 엄마의 남은 인생은 엄마가 지키겠다. 엄마도 이제 나를 위해 살아 보려고 한다.]

한동안 막내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정란 씨는 서운했지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대신 미뤄 두었던 일을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해 서예를 배우고, 급식실 동료들과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처음 몇 주는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혹시 막내일까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정란 씨는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손을 내밀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매일 아침 동네 공원을 걸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올봄, 정란 씨의 통장에 50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배동현이었습니다. 미국행을 접고 국내 연구소에 취직한 동현이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동현이가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그때는 제가 정말 철이 없었어요. 연구소 들어와서 혼자 월세 내고 밥 해 먹어 보니까 엄마가 어떻게 버텼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대학원비는 평생 걸려도 다 갚을게요.”

주말에 동현이가 집에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정란 씨는 그게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정란 씨는 급식실에서 일하던 솜씨로 김밥을 말았습니다. 동현이가 어릴 때 소풍날마다 싸 주던 그 김밥이었습니다.

“엄마 김밥은 여전히 최고예요.” 동현이가 김밥을 입에 가득 넣고 웃었습니다. 정란 씨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 2억을 주었다면 이 웃음은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제목 『연금술사』 속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는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 스스로 사막을 건너야 했습니다. 누군가 대신 길을 걸어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여정이 아닙니다. 부모가 끝까지 업어 주는 자식은 자기 두 발로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식을 위한 지원에는 반드시 멈출 때가 있어야 합니다. 그 멈춤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믿어 주는 또 다른 사랑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기 노후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가장 큰 배려입니다.

올봄 정란 씨는 막내와 함께 광교호수공원을 걸었습니다. 호수 위로 봄볕이 반짝였고, 산책로를 따라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습니다.

출처 :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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