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며느리에게만 매달 50만원씩 줬는데..” 작은며느리가 보낸 택배를 열어보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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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둘이면 시어머니 마음도 둘로 갈린다고들 합니다. 살가운 며느리에게는 자꾸 정이 가고, 무뚝뚝한 며느리에게는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살가움이 마음의 깊이를 다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강원도 강릉에 사는 문기순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주문진 바닷가에서 30년 넘게 남편과 함께 작은 횟집을 운영했습니다. 새벽마다 어판장에 나가 생선을 골랐고, 하루 종일 칼을 잡느라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남편이 7년 전 세상을 떠난 뒤 기순 씨는 횟집을 정리하고 강릉 시내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두 아들은 모두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큰아들 내외는 서울에 살고, 작은아들 내외는 강릉 옆 동해에 살고 있습니다.

큰며느리 혜원이는 말솜씨가 좋고 싹싹했습니다. 명절이면 백화점 선물 세트를 들고 와 “어머님, 이거 요즘 제일 좋은 거래요” 하며 환하게 웃었고, 전화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걸어왔습니다. 기순 씨는 그런 큰며느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면 기순 씨는 큰며느리 이야기를 자주 꺼냈습니다. “우리 큰애는 어찌나 싹싹한지 몰라. 전화할 때마다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애교를 부린다니까.” 친구들이 부러워하면 기순 씨는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작은며느리 수정이는 정반대였습니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별로 없었습니다. 명절에 와도 부엌에서 조용히 전만 부치다 돌아갔고, 전화를 해도 “네, 어머님”, “알겠습니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작은아들이 운영하는 작은 자동차 정비소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기순 씨는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 큰아들 내외가 제사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혜원이는 “어머님, 제사는 저희가 맡을게요. 맏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죠”라며 나섰습니다. 기순 씨는 고마운 마음에 횟집을 정리하고 받은 돈에서 매달 50만 원씩 큰며느리 통장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사 지내느라 고생하니 장 보는 데 보태라.”

그렇게 7년 동안 큰며느리에게 보낸 돈은 4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혜원이는 돈을 받을 때마다 “어머님, 감사해요. 역시 우리 어머님이 최고예요”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사 때 서울에 올라가 보면 상차림은 해마다 조금씩 간소해졌습니다. 혜원이는 “요즘은 다들 이렇게 간단하게 해요, 어머님”이라고 했고, 기순 씨는 시대가 변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50만 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묻는 것은 시어머니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일 같았습니다.
작은며느리에게는 한 번도 따로 돈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동해에서 강릉까지 차로 30분 거리라 작은아들 내외가 자주 들르긴 했지만, 기순 씨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가까이 사니까 오는 것이고, 큰며느리는 멀리서 제사까지 지내니 더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정이는 올 때마다 말없이 냉장고를 열어 보고 비어 있는 칸에 반찬을 채워 넣었습니다. 욕실 곰팡이를 닦고, 시어머니의 이불을 베란다에 널어 햇볕에 말렸습니다. 기순 씨는 그런 며느리를 보며 ‘무뚝뚝한 애가 일은 꼼꼼하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기순 씨가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수정이가 퇴근길에 들러 죽을 쑤어 놓고 갔습니다. 냄비 옆에는 감기약과 함께 ‘어머님, 약 드시고 푹 주무세요’라는 짧은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순 씨는 그 쪽지를 보고도 ‘애가 참 정이 없게 쪽지만 남기고 가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가끔 기순 씨에게 물었습니다. “기순이 너는 큰며느리만 예뻐하는 거 아니냐. 작은며느리가 더 자주 오잖아.” 기순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작은애는 가까우니까 그렇지. 큰애는 제사까지 지내잖아.”

올해 여름, 기순 씨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서울의 큰아들에게 연락하자 혜원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님, 어떡해요. 저희가 요즘 애들 학원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대신 좋은 간병인 알아봐 드릴게요.”
수술 날 병원에 온 것은 작은아들 내외였습니다. 수정이는 수술실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고, 회복실에서 깨어난 기순 씨의 손을 가장 먼저 잡아 주었습니다. 그 뒤로 2주 동안 수정이는 정비소 일을 남편에게 맡기고 매일 아침 동해에서 강릉 병원까지 출퇴근하듯 오갔습니다.
기순 씨가 미안한 마음에 “얘야, 너도 힘든데 간병인 쓰자”고 해도 수정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머님, 저 괜찮아요. 남이 하는 것보다 제가 하는 게 마음 편해요.”
병실 옆 침대의 할머니가 기순 씨에게 넌지시 말했습니다. “딸이에요? 저렇게 살뜰한 딸 두셔서 좋겠어요.” 기순 씨가 “작은며느리예요” 하고 대답하자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며느리가 저렇게 해요? 복 받으셨네.” 그 말을 들은 기순 씨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퇴원하던 날, 큰며느리 혜원이에게서 꽃바구니가 배달되었습니다. 카드에는 ‘어머님, 빠른 쾌유를 빌어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기순 씨는 꽃바구니를 바라보다가, 옆에서 짐을 챙기는 작은며느리의 굽은 등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퇴원하고 일주일쯤 지난 날, 아파트 문 앞에 커다란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작은며느리 수정이였습니다. 기순 씨는 무릎을 짚고 겨우 상자를 거실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상자를 열자 맨 위에 손으로 뜬 두툼한 털 무릎 덮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반찬 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기순 씨가 좋아하는 가자미식해, 감자조림, 도라지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노란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통장 한 권과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통장 첫 장에는 ‘어머님 병원비’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3년 전부터 매달 10만 원씩, 한 달도 빠짐없이 입금된 기록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잔액은 360만 원이었습니다.

편지를 펼치는 기순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어머님, 저는 말을 예쁘게 할 줄 몰라서 늘 죄송했어요. 정비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큰돈은 못 드리지만, 어머님 무릎이 안 좋으신 걸 알고 3년 전부터 조금씩 모았어요. 수술비에 보태 드리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네요. 무릎 덮개는 밤마다 조금씩 떴어요. 겨울에 무릎 시리지 않게 꼭 덮고 주무세요. 어머님 아들이 늘 그래요. 우리 엄마는 평생 생선 비린내 맡으며 우리 키웠다고. 저도 어머님이 자랑스러워요.]
기순 씨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7년 동안 매달 50만 원을 보낸 큰며느리에게는 꽃바구니를 받았고, 한 푼도 주지 않은 작은며느리에게서는 3년 동안 모은 병원비와 밤새 뜬 무릎 덮개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기순 씨는 작은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네, 어머님” 하는 수정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순 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수정아…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몰랐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수정이는 당황한 듯 말했습니다. “어머님, 왜 그러세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며칠 뒤 기순 씨는 두 아들 내외를 모두 불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큰며느리에게 보내던 돈은 끊고, 제사 비용은 두 집이 형편에 맞게 나누어 내자고 했습니다. 남은 재산도 두 아들에게 똑같이 나누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큰며느리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기순 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은며느리가 모은 통장은 수정이 이름으로 그대로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네 노후에 써라. 마음은 내가 다 받았다.”
큰아들은 오히려 어머니 편을 들었습니다. “어머니, 진작 그러셨어야 해요. 제사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돈 보내지 마세요.” 아들의 말에 혜원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순 씨는 큰며느리를 원망하기보다, 그동안 한쪽만 바라보았던 자신의 눈을 탓했습니다.

그 주말, 작은아들 내외가 아파트에 들렀습니다. 기순 씨는 무릎 덮개를 덮고 앉아 며느리와 함께 감자옹심이를 끓였습니다. 강릉 사람들이 추운 날이면 즐겨 먹던 소박한 음식이었습니다. 쫀득한 옹심이가 동동 떠오르자 수정이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어머님, 저 옹심이 처음 빚어 봐요.”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제목 『큰 바위 얼굴』 속 어니스트는 평생 마을 사람들 곁에서 묵묵히 살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가 기다리던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진짜 귀한 사람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늘 곁에 있는 묵묵한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살가운 말 한마디에 마음이 기울기 쉽지만, 정말로 나를 아끼는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곁을 지킵니다. 내 곁에 무뚝뚝하다고 서운해했던 사람이 있다면, 오늘 한 번 그 사람이 말없이 해 온 일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 안에 가장 깊은 사랑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가을 기순 씨는 작은며느리와 함께 경포 바닷가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수술한 무릎은 아직 조금 뻐근했지만, 며느리의 팔짱이 든든했습니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사장을 적시고, 수평선 너머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출처 : ‘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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