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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댁 칠순에 300만원 봉투 보냈는데..” 우리 환갑엔 문자 한 통 오길래 내린 결단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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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사이는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들 합니다. 자식을 서로 맡긴 사이이니 함부로 대할 수 없고, 그렇다고 친척처럼 편하게 지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사돈댁 앞에서는 한 번 더 예를 갖추고, 봉투 하나에도 마음을 씁니다. 그러나 그 정성이 한쪽으로만 흐를 때, 부모의 마음에는 말 못 할 서운함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윤정숙 씨는 올해 예순입니다. 남편 최만호 씨와 함께 30년 넘게 중앙시장 근처에서 작은 철물점을 운영해 왔습니다. 새벽 일곱 시면 셔터를 올렸고, 손님이 원하는 못 한 상자, 수도꼭지 하나를 찾아 주느라 하루 종일 가게 안을 오갔습니다.

철물점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습니다. 무거운 시멘트 포대를 나르고, 녹슨 공구에 손이 베이기 일쑤였습니다. 겨울이면 문을 열어 둔 가게 안으로 찬바람이 그대로 들이쳐 손끝이 얼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정직하게 팔면 손님은 다시 온다”는 원칙 하나로 30년을 버텼고, 그 덕에 동네에서 믿을 만한 가게로 소문이 났습니다.

부부에게는 외동딸 수빈이가 있었습니다. 수빈이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고, 4년 전 같은 회사에 다니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사위 집안은 대구에서 대대로 이름난 종갓집이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어른은 족보 이야기와 집안 어른들 이야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았습니다.

정숙 씨는 그 자리에서 괜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철물점을 하는 자신들이 혹시 딸에게 흠이 될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혼식 이후로 사돈댁 일이라면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딸이 시댁에서 기죽지 않게 하려면 친정이라도 예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빈이는 어릴 때부터 가게 한쪽 작은 책상에서 숙제를 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정숙 씨는 철물점 먼지 속에서 자란 딸이 서울의 좋은 대학에 붙던 날, 가게 셔터를 내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떡을 돌렸습니다.

명절이면 정숙 씨는 진주 특산품인 곶감과 한우 선물 세트를 사돈댁에 보냈습니다. 사돈어른 생신에는 딸 편에 두툼한 봉투를 들려 보냈고, 사돈댁 제사에도 과일 상자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철물점 한 달 수입의 절반이 사돈댁 선물로 나가는 달도 있었습니다.

남편 만호 씨는 가끔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너무 하는 거 아니오. 저쪽에서는 명절에 전화 한 통도 없는데.” 그러면 정숙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수빈이가 그 집에서 사는데, 우리가 잘해야 우리 딸이 대접받지요.”

한번은 사돈댁에 보낼 곶감을 고르느라 정숙 씨가 시장을 세 바퀴나 돈 적도 있었습니다. 가장 크고 빛깔 좋은 것만 골라 상자에 담으면서도, 정작 자기 집 차례상에는 흠집 난 것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돈댁에서는 한 번도 답례 선물이 온 적이 없었습니다. 정숙 씨는 종갓집이라 원래 그런가 보다, 바쁜가 보다 하며 애써 마음을 달랬습니다.

3년 전 봄, 사돈어른의 칠순 잔치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정숙 씨 부부는 가게 문을 하루 닫고 새벽 기차를 탔습니다. 정숙 씨는 몇 달 동안 따로 모아 둔 돈 300만 원을 봉투에 넣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많은 거 아니오” 하자 정숙 씨는 “종갓집 칠순인데 우리가 적게 내면 수빈이가 창피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잔치는 성대했습니다. 사돈댁 친척 수십 명이 모였고, 사돈어른은 단상에 올라 집안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숙 씨 부부의 자리는 맨 뒤쪽 출입구 옆 테이블이었습니다. 사회자는 사돈댁 친척들을 하나하나 소개했지만 정숙 씨 부부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습니다.

정숙 씨는 그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딸 시댁 잔치에 잘 다녀왔으니 됐어요.”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기차가 진주역에 도착할 무렵, 정숙 씨는 핸드백 속 영수증 하나를 꺼내 보았습니다. 사돈어른께 드릴 선물을 사느라 백화점에서 끊은 영수증이었습니다. 정숙 씨는 그 종이를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접어 다시 넣었습니다. 서운하다는 말을 하면 딸이 곤란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봄, 남편 만호 씨가 환갑을 맞았습니다. 부부는 큰 잔치를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딸 내외와 함께 진주 남강 옆 식당에서 조용히 밥 한 끼 먹기로 했습니다. 다만 정숙 씨는 속으로 사돈댁에서 축하 인사 정도는 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환갑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의 휴대전화에 문자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사돈어른이 보낸 문자였습니다.

[환갑 축하드립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봉투는 고사하고 전화 한 통도 없었습니다. 딸 수빈이는 엄마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엄마, 시댁이 원래 좀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정숙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문자 한 통이 서운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녘 정숙 씨는 장롱 위에 올려 둔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4년 동안 사돈댁에 보낸 선물과 봉투를 꼼꼼히 적어 둔 공책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더해 보니 천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정숙 씨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며칠 뒤, 딸 수빈이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칠순 잔치가 끝난 뒤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돈댁은 장사하는 집이라 그런지 봉투는 두둑하더라. 그래도 집안 격이라는 게 돈으로 되는 건 아니지.”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정숙 씨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습니다. 4년 동안 딸을 위해 낮췄던 허리가, 사돈댁에게는 그저 돈으로 격을 사려는 장사꾼의 몸짓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남편 만호 씨는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합시다. 우리가 장사꾼인 건 맞소. 그런데 우리는 정직하게 장사해서 딸 키웠소.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소.”

정숙 씨는 그날 결심했습니다. 다음 날 딸 수빈이를 불러 앉혔습니다.

“수빈아, 엄마 아빠가 그동안 너 시댁에서 기죽지 말라고 사돈댁에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너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사돈댁에 보내던 선물이나 봉투는 이제 그만 보내겠다.”

수빈이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제가 진작 말렸어야 했는데.”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라. 시댁에서 무슨 말을 들어도, 네 부모가 철물점 하는 걸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라. 우리는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다. 그게 우리 집 격이다.”

그해 추석, 정숙 씨는 사돈댁에 선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돈으로 남편과 함께 남해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가 보는 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얼마 뒤, 사돈어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올해는 선물이 오지 않아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숙 씨는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사돈어른, 저희가 그동안 넘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마음만 주고받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 같은 장사꾼 집안이 종갓집에 너무 자주 봉투를 보내면, 혹시 격을 돈으로 사려는 것처럼 보일까 봐서요.”

수화기 너머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사돈어른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헛기침을 하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뒤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듬해 설, 처음으로 사돈댁에서 선물 상자가 도착한 것입니다. 상자 안에는 대구 사과 한 상자와 함께 사돈어른이 직접 쓴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받기만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수빈이 같은 며느리를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 저녁, 정숙 씨는 남편과 마주 앉아 시장에서 사 온 진주식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육회를 얹은 소박한 비빔밥 두 그릇이었지만, 그 어느 잔칫상보다 맛있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진작 이랬어야 했나 봐요.” 정숙 씨의 말에 남편이 웃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사람 사이도 장사랑 똑같소. 한쪽만 퍼 주면 오래 못 가지.”

연암 박지원의 소설 제목 『양반전』은 겉으로 내세우는 양반의 격이 얼마나 허울뿐인지 날카롭게 꼬집은 이야기입니다. 진짜 격은 족보나 집안 이름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살아온 철물점 부부의 당당함이야말로 어떤 종갓집보다 귀한 격이었습니다.

사돈 사이에도 예의는 서로 주고받을 때 빛이 납니다. 한쪽만 머리를 숙이면 그것은 예의가 아니라 굴종이 되고, 결국 자식에게도 짐이 됩니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부모는 스스로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올가을, 정숙 씨 부부는 철물점 셔터를 내린 뒤 남강 둑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진주성 성벽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강물 위에는 하나둘 유등 불빛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말없이 그 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양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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