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고향 집 2000만원에 팔았는데..” 5년 뒤 사위가 건넨 열쇠 꾸러미에 주저앉았다
Google 검색에서 뷰어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태어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평생 도시에서 살았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린 시절 뛰놀던 마을의 냄새와 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함께 살던 사람이 떠난 뒤에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홍순자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남편 이상철 씨와 함께 40년 동안 성남 시장에서 작은 정육점을 운영했습니다. 상철 씨는 강원도 평창 봉평 출신이었습니다. 열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정육점 점원으로 시작해 자기 가게를 차리기까지,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육점 일은 새벽 네 시에 시작되었습니다. 도매시장에서 고기를 받아 와 손질하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썰고 다지느라 두 사람의 손은 늘 차가웠습니다. 겨울이면 냉장고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뼈가 시렸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그 가게에서 딸 하나를 키워 대학을 보내고 시집까지 보냈습니다.
상철 씨에게는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은퇴하면 봉평 고향 집에 내려가서 메밀 농사짓고 살 거요. 가을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면 그게 얼마나 예쁜지 당신은 모를 거요.”

봉평 고향 집은 상철 씨의 부모님이 살던 낡은 흙집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비어 있었지만, 상철 씨는 해마다 가을이면 혼자 그곳에 내려가 지붕을 손보고 마당의 잡초를 뽑고 돌아왔습니다. 순자 씨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이오.”
남편은 가끔 순자 씨를 데리고 봉평에 내려가자고 했지만, 순자 씨는 가게 핑계를 대며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시골 흙집의 재래식 화장실과 외풍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혼자 다녀왔고, 돌아올 때면 늘 메밀가루 한 봉지를 사 들고 왔습니다.

그러던 6년 전, 상철 씨가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육점을 정리하고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끝내 은퇴 후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나니 병원비로 진 빚이 남아 있었습니다. 순자 씨는 고민 끝에 봉평 고향 집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시골 흙집이라 제값을 받기 어려웠지만, 마을 사람의 소개로 2,000만 원에 집을 팔았습니다.
딸 내외가 병원비를 보태겠다고 했지만 순자 씨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을 팔면 빚을 갚고도 조금은 남을 것 같았습니다. 순자 씨는 그 결정을 내린 날 밤, 남편의 사진 앞에서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집을 팔던 날, 순자 씨는 마지막으로 봉평에 내려가 보았습니다. 남편이 손질해 둔 마당에는 잡초가 다시 무성했고, 툇마루에는 남편이 쓰던 낡은 밀짚모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순자 씨는 그 모자를 가슴에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아끼던 집을 자기 손으로 남에게 넘긴다는 것이 마치 남편을 두 번 떠나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곁에는 외동딸 미영이와 사위 정훈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사위는 말없이 장모님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서서 오래도록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정훈이는 말수가 적은 사위였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장모님과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장인어른과는 유난히 잘 맞았습니다.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봉평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순자 씨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입원해 있을 때 병실을 가장 자주 찾은 것도 사위였습니다. 퇴근길마다 들러 장인의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늦은 밤까지 곁을 지키다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이 병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순자 씨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위가 참 착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5년이 흘렀습니다. 순자 씨는 딸네 집 근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동네 복지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남편 기일이면 봉평 쪽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사과하곤 했습니다. ‘당신 집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복지관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날도 많았지만, 가을이 오면 순자 씨는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메밀꽃 축제 소식이 나오면 채널을 돌렸습니다. 남편의 꿈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계절마다 다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올해 9월, 남편의 기일을 며칠 앞두고 사위 정훈이가 장모님 집을 찾아왔습니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장모님, 이번 장인어른 기일에는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세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순자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사위의 차에 올랐습니다. 딸 미영이도 함께였습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로 향했고, 어느새 ‘봉평’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자 씨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멈춘 곳은 5년 전 팔았던 바로 그 고향 집 앞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너져 가던 흙벽은 깨끗하게 보수되어 있었고, 새로 얹은 지붕 위로 가을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마당에는 잡초 대신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정훈이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 하나를 꺼내 장모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열쇠 꾸러미에는 작은 나무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열쇠고리에는 서툰 칼솜씨로 ‘상철·순자의 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정훈이가 주말마다 봉평을 오가며 직접 깎아 만든 것이었습니다.
“장모님, 이 집 다시 사 왔습니다. 이제 장모님 집이에요.”
순자 씨는 열쇠를 쥔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떨렸습니다.

정훈이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5년 전 집을 팔던 날, 마당에 서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기 전 병실에서 사위에게 했던 부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이 그러셨어요. 장모님이 그 집을 팔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중에 자네가 형편 될 때 꼭 다시 찾아 달라고. 장모님이 늙어서 메밀꽃 보면서 쉬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 해 주고 가서 한이 된다고요.”
정훈이는 그날부터 매달 월급의 일부를 따로 모았다고 했습니다. 집을 산 사람을 몇 번이나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고, 마침내 올봄 집을 다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여름 내내 주말마다 봉평을 오가며 직접 지붕을 고치고 벽을 바르고 마당을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딸 미영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 사람이 엄마한테 깜짝 선물 하고 싶다고 저한테도 비밀로 하라고 했어요. 주말마다 낚시 간다고 하고 여기 와서 일했대요.”

순자 씨는 사위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10년 넘게 말 한마디 살갑게 하지 않던 사위가, 장인어른의 마지막 부탁을 5년 동안 가슴에 품고 묵묵히 지켜 온 것이었습니다.
“정훈아, 이걸 어떻게… 네 돈이 얼마나 들었을 텐데.” 순자 씨가 겨우 말을 꺼내자 정훈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저한테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하셨어요. 아들이 아버지 집 찾아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툇마루에 낯익은 물건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남편이 쓰던 밀짚모자였습니다. 5년 전 순자 씨가 가져가지 못하고 두고 온 것을, 사위가 새 주인에게 부탁해 고스란히 보관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봉평 장터에 나가 메밀전병과 메밀국수를 사 왔습니다. 고향 집 툇마루에 앉아 소박한 상을 차렸습니다. 순자 씨는 메밀국수 한 젓가락을 떠 넣으며 말했습니다. “네 장인어른이 이 맛을 그렇게 자랑하더니, 이제야 알겠다.” 정훈이가 쑥스럽게 웃었습니다. “장모님, 내년 가을엔 저 앞 밭에 메밀 심어요. 장인어른이 말씀하신 하얀 메밀꽃, 같이 봐요.”

이효석의 소설 제목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의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메밀밭을 배경으로, 떠돌던 사람들의 그리움과 인연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람의 인연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어지고, 떠난 사람의 그리움은 남은 사람이 지켜 줄 때 비로소 꽃을 피웁니다.
말이 없다고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묵묵한 사람일수록 가슴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약속을 품고 삽니다. 내 곁의 무뚝뚝한 가족이 있다면, 그 침묵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지 한 번 더 헤아려 보세요.
그리고 이듬해 가을, 순자 씨는 다시 봉평 고향 집 툇마루에 앉았습니다. 앞밭에는 사위가 봄에 뿌린 메밀이 하얗게 꽃을 피웠고, 저녁달이 떠오르자 꽃밭 전체가 소금을 뿌린 듯 은은하게 빛났습니다. 순자 씨는 남편의 밀짚모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래도록 그 꽃밭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메밀꽃 필 무렵’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