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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가게 개업에 3000만원 빌려줬는데..” 1년 뒤 걸린 간판을 보고 결단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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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나서면 시부모는 내심 대견하면서도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자식 내외가 잘살아 보겠다는데 모른 척할 수 없어 쌈짓돈을 내놓게 됩니다. 그러나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드러납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오금순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남편 김동석 씨와 함께 40년 가까이 순천 아랫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해 왔습니다. 새벽마다 여수와 벌교에서 올라온 멸치와 김을 받아 손질하고, 하루 종일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 손님을 맞았습니다.

건어물 장사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멸치 한 상자를 사 오면 크기별로 고르고 대가리를 떼어 내느라 밤늦게까지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금순 씨의 손톱 밑에는 늘 비린내가 배어 있었고, 허리는 일 년 내내 파스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부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큰아들 영민이는 광주에서 회사를 다녔고, 작은아들 영호는 순천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큰며느리 수아는 결혼 전 제과 학원을 다녔다며 언젠가 자기 빵집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큰며느리 수아는 상냥하고 말을 잘했습니다. 명절이면 직접 구운 빵을 한 상자씩 들고 왔고, 시부모 앞에서 “어머님 김 맛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라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금순 씨는 그런 며느리가 예뻐서 갈 때마다 건어물을 한 보따리씩 싸 주었습니다.

2년 전 겨울, 큰아들 내외가 순천 집에 찾아왔습니다. 수아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광주에 좋은 자리가 나서 작은 빵집을 차리려고 하는데요. 보증금이랑 오븐 살 돈이 3천만 원쯤 모자라서요.”

금순 씨는 남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3천만 원은 부부가 건어물 가게를 하며 모은 노후 자금의 큰 부분이었습니다. 동석 씨가 망설이자 큰아들이 거들었습니다. “아버지, 빌려주시는 걸로 해 주세요. 가게 자리 잡으면 1년 안에 꼭 갚을게요.”

수아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님,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가게 이름도 어머님 아버님 덕분에 시작하는 거라 의미 있게 지을게요.”

금순 씨는 며느리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평생 남의 가게 앞에서 장사하며 자기 가게 하나 갖는 꿈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다음 날 은행에서 3천만 원을 찾아 큰아들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개업 날, 금순 씨 부부는 새벽 첫차를 타고 광주로 올라갔습니다. 금순 씨는 가게에서 제일 좋은 멸치와 김을 골라 선물 상자를 만들었고, 남편은 화분 하나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빵집 앞에 도착했을 때, 금순 씨는 이미 가게 앞에 놓인 커다란 화환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화환 리본에는 ‘사돈댁 일동’, ‘○○제과 학원 동기 일동’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서는 며느리의 친정 식구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지만, 곧 친정어머니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손님들에게 가게를 소개할 때마다 수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덕분에 차린 가게예요. 엄마가 제일 많이 도와주셨어요.”

금순 씨는 가게 구석 의자에 앉아 그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3천만 원을 보탠 사람은 분명 자신들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는 듯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손님들에게 빵을 나눠 주며 “우리 딸이 고생 많이 했어요”라고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금순 씨가 가져간 멸치 선물 상자는 계산대 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습니다. 남편 동석 씨는 화분을 놓을 자리를 찾지 못해 한참을 서성이다 가게 밖 입구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동석 씨가 말했습니다. “여보, 신경 쓰지 마오. 개업하는 날 정신이 없어서 그랬겠지.” 금순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뒤로 빵집은 장사가 꽤 잘된다고 했습니다.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주말이면 줄을 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돈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석에 내려온 큰아들에게 금순 씨가 넌지시 묻자 큰아들은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가게 대출 이자가 아직 많아서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금순 씨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돈을 재촉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 남편 동석 씨가 허리 디스크로 입원했습니다. 수술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노후 자금에서 큰돈이 빠져나갔습니다. 금순 씨는 병원비를 계산하며 광주로 보낸 3천만 원을 떠올렸지만, 끝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습니다. 아픈 아버지 소식에도 큰며느리는 가게가 바쁘다며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업 1년이 되던 올봄, 금순 씨는 광주에 볼일이 있어 올라간 김에 빵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가게 앞에 서는 순간 다리가 굳어 버렸습니다.

가게 간판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새 간판에는 커다랗게 ‘정숙이네 빵집’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정숙은 며느리 친정어머니의 이름이었습니다. 간판 아래에는 ‘정숙 여사의 손맛을 이어 갑니다’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계산대에 서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장사가 잘되자 친정어머니가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고, 아예 사업자 등록도 친정어머니와 공동 명의로 바꿨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아는 시어머니를 보고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님,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엄마가 요즘 가게를 많이 도와주셔서 간판을 바꿨어요. 손님들이 엄마 이름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금순 씨는 가게 한쪽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앞에 앉혔습니다.

“수아야, 개업할 때 네가 그랬지. 우리 덕분에 시작하는 가게라 이름도 의미 있게 짓겠다고. 그런데 1년 동안 빌려 간 돈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간판에는 네 친정어머니 이름이 걸렸구나.”

수아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어머님, 그 돈은 꼭 갚을 거예요. 그런데 가게 이름까지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금순 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네 가게니까. 다만 그 가게를 차린 돈의 절반은 우리 늙은이들이 40년 동안 멸치 팔아 모은 돈이다. 그 돈을 빌려 갈 때 한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니.”

순천 집으로 돌아온 금순 씨는 남편과 한참 의논했습니다. 동석 씨는 처음에는 “그냥 준 셈 치자”고 했지만, 아내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여보,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약속 문제요.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 부모라고 생각하게 두면, 그건 자식을 망치는 거요.”

그날 저녁 금순 씨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영민아, 3천만 원은 빌려준 돈이다. 이제부터 매달 100만 원씩 갚아라. 30개월이면 된다. 이자는 받지 않으마. 대신 한 달이라도 밀리면 엄마가 직접 가게로 찾아가겠다. 그리고 앞으로 너희 가게 일로는 우리한테 손 벌리지 마라.”

큰아들은 처음에는 서운하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에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큰아들은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제야 사돈댁도 그 돈이 시댁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부인,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제 이름을 간판에 걸었네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간판은 다시 바꾸겠습니다.” 금순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간판은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저희가 바란 건 이름이 아니라 약속이었으니까요.”

그달 말, 금순 씨의 통장에 처음으로 10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입금자 이름 옆에는 ‘어머님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뒤로 돈은 한 달도 밀리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그날 저녁, 금순 씨 부부는 아랫장 근처 오래된 국밥집에서 순천식 국밥을 먹었습니다. 뜨끈한 국물에 머리고기를 듬뿍 넣은 국밥 두 그릇이었습니다. 동석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40년 장사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잖소. 외상은 장부에 적어야 한다는 거. 자식도 예외는 아니었구먼.”

고전 소설 『토끼전』 속 토끼는 용왕의 달콤한 말에 속아 간을 빼앗길 뻔하다가 꾀를 내어 겨우 살아 돌아옵니다. 듣기 좋은 약속에 마음을 다 내주면 결국 내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돈 앞에서는 약속을 분명히 하고, 어긴 약속에는 단호해야 합니다.

자식을 돕는 마음은 귀하지만, 그 도움이 당연한 것이 되면 고마움은 사라지고 부모의 노후만 흔들립니다. 빌려준 돈은 빌려준 돈으로, 준 돈은 준 돈으로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과의 관계를 오래 지키는 길입니다.

올가을 금순 씨 부부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순천만 갈대밭을 걸었습니다. 황금빛 갈대가 바람에 물결치듯 흔들렸고, 저 멀리 용산 전망대 너머로 해가 붉게 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무 데크 위에 나란히 서서 해가 다 질 때까지 갈대밭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토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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