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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등록금 대느라 시집도 늦게 갔는데..” 칠순 날 동생이 내민 통장에 울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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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의 맏딸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동생들 밥을 먼저 챙기고, 학교 대신 공장으로 향하고, 내 꿈은 조용히 접어 두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어 준 청춘을 동생들은 기억하고 있을까요.

강원도 강릉에 사는 김영순 씨는 지난달 칠순을 맞았습니다. 강릉 주문진 바닷가 마을에서 2남 2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어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네 남매를 키웠습니다.

영순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서울 구로공단의 방직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실을 잇고 천을 짜는 일이었습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여덟 명이 한 방을 쓰며, 영순 씨는 월급봉투를 받으면 거의 전부를 고향으로 부쳤습니다.

그중에서도 영순 씨가 가장 마음을 쓴 사람은 남동생 영철이었습니다. 영철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 동네에서 “주문진 수재”로 불렸습니다. 영순 씨는 “우리 집에서 대학 가는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동생의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했습니다.

영순 씨는 공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밥은 굶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돈 걱정은 누나가 한다.” 편지 봉투에는 늘 꼬깃꼬깃 접은 지폐 몇 장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은 영순 씨가 점심을 굶어 가며 모은 돈이었습니다.

영철이가 서울의 대학에 합격하던 날, 영순 씨는 공장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기쁘기도 했고, 앞으로 4년 동안 갚아야 할 등록금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영순 씨는 그날부터 야간 잔업을 자청했고, 주말에는 시장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했습니다.

그 사이 공장 동료들은 하나둘 시집을 갔습니다. 영순 씨에게도 중매가 몇 번 들어왔지만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동생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겼습니다.

한번은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크게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영순 씨는 붕대를 칭칭 감은 손으로 다음 날 다시 공장에 나갔습니다. 하루라도 쉬면 그달 등록금을 맞추지 못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끝내 그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철이의 졸업식 날, 영순 씨는 공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학사모를 쓴 동생이 누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꼭 끌어안았습니다. “누나, 고생 많았어. 내가 꼭 갚을게.” 영순 씨는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고생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영철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영순 씨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서른넷의 늦은 나이에 강릉으로 내려와 버스 기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지만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영순 씨는 결혼 뒤에도 수산시장에서 오징어를 말리며 생계를 보탰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생 영철이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영철이는 서울에서 가정을 꾸렸고, 명절에도 바쁘다며 내려오지 못하는 해가 많았습니다. 전화는 일 년에 몇 번,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가 전부였습니다.

올케는 깍듯했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영순 씨는 서울에 사는 교사 집안 사람들 눈에 시골 오징어 장수 시누이가 부담스러운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는 일도 점점 줄였습니다.

가끔 영순 씨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그 애 공부시키느라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는 나를 잊었나 봐요.” 남편은 아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영철이도 다 사정이 있겠지. 사람 마음은 겉으로 다 안 보이는 법이오.”

그래도 영순 씨는 해마다 동생 생일이 되면 주문진 시장에서 말린 오징어 한 축을 사서 서울로 부쳤습니다. 동생이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간식이었습니다. 택배를 받았다는 짧은 문자 한 통이 돌아오면, 영순 씨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영철이는 장례식장에 사흘 내내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영철이는 누나 앞에서 별말을 하지 못하고, 영순 씨의 손을 한 번 잡았다가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영순 씨는 그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 뒤로도 남매 사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순 씨는 혼자 강릉 바닷가 작은 집에서 지내며 경로당에 다니고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동생에 대한 서운함이 돌덩이처럼 얹혀 있었습니다.

경로당 친구들이 자식 자랑, 형제 자랑을 늘어놓을 때면 영순 씨는 조용히 자리를 떴습니다. “우리 동생도 선생님인데”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얼굴도 못 보는 동생을 자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쓸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올해 칠순을 앞두고 딸이 조촐한 잔치를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영순 씨는 손사래를 쳤지만, 딸은 강릉 시내 한정식집에 가족들만 모시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영순 씨는 동생에게도 연락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바쁜 사람 괜히 부담 줄 것 같았습니다.

칠순 날 점심, 한정식집 방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시작될 무렵 방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습니다. 동생 영철이였습니다. 올케도 함께였습니다. 딸이 몰래 외삼촌에게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영철이는 누나 앞에 큰절을 올렸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동생의 이마가 방바닥에 오래도록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통장 한 권을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습니다.

“누나, 이거 받아 주세요. 제가 첫 월급 받던 달부터 35년 동안 누나 이름으로 부은 통장이에요.”

영순 씨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펼쳤습니다. 첫 장에는 35년 전 날짜와 함께 3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 달도 빠짐없이 돈이 들어와 있었고, 마지막 장의 잔액은 8천만 원이 넘어 있었습니다. 통장 겉장 안쪽에는 볼펜으로 ‘누나 등록금 갚는 통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영철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습니다. “누나 공장 다닐 때 손가락에 붕대 감고 있던 거, 저 다 기억해요. 그 돈으로 공부한 제가 무슨 낯으로 누나를 봐요. 갚기 전에는 누나 얼굴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꾸 피했어요.”

올케가 눈물을 닦으며 거들었습니다. “형님, 이이가 월급날마다 이 통장부터 챙겼어요. 저희 집 형편이 어려울 때도 이 통장만은 손대지 말자고 했어요. 형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렸대요.”

통장에는 영철이의 아이들이 보탠 돈도 있었습니다. 조카들이 첫 월급을 받던 달에 “고모께”라는 메모와 함께 10만 원씩 넣은 것이었습니다. 영철이는 아이들에게도 고모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키웠다고 했습니다.

영순 씨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동생이 멀어진 것은 누나를 잊어서가 아니라, 너무 무거운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는 것을. 매형 장례식장에서 누나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던 그 모습도 하지 못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영순 씨는 통장을 가슴에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러고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영철아, 나는 돈 받으려고 너 공부시킨 거 아니다. 네가 선생님 되던 날, 그걸로 다 받았다.”

영순 씨는 통장을 다시 동생 손에 쥐여 주며 말했습니다. “이 돈은 우리 둘이 쓰자. 엄마 산소에 같이 가고, 너 어릴 때 가고 싶어 하던 설악산에도 가자. 35년 동안 못 한 이야기를 이제부터 실컷 하자꾸나.”

그날 저녁, 남매는 어린 시절 살던 주문진 바닷가 순두부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뽀얀 초당순두부 두 그릇에 김치 한 접시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영철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누나, 이거 누나가 명절에 공장에서 내려올 때마다 사 주던 거잖아요.” 영순 씨는 동생 그릇에 순두부를 한 숟가락 덜어 주었습니다.

심윤경 작가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가난하고 쓸쓸한 집안에서 서로를 지켜 주는 형제의 애틋한 마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가족의 사랑은 늘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자라나 결국 꽃을 피웁니다.

서운함은 대개 상대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해서 생겨납니다. 멀어진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잊었다고 단정하기 전에, 혹시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헤아려 보세요. 먼저 건네는 안부 한마디가 오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합니다.

올가을 영순 씨는 동생과 함께 주문진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등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고, 고깃배들이 붉은 노을을 등지고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매는 나란히 서서 해가 다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나의 아름다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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