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 남편 자식들 10년 뒷바라지했는데..” 장례 끝나자 내민 서류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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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한 가정의 새엄마는 늘 조심스러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잘해 주면 속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역시 남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많은 새엄마들이 내 자식보다 더 정성을 쏟으며 그 자리를 지키려 애씁니다.
부산 수영구에 사는 정미경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젊은 시절 남편을 사고로 잃고 자식 없이 혼자 살다가, 1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아내와 사별한 오성호 씨를 만났습니다. 성호 씨는 광안리 근처에서 작은 수산물 도매상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할 무렵 성호 씨에게는 스물여섯 살 아들 준혁이와 스물세 살 딸 지혜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재혼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준혁이는 미경 씨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지혜는 내내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미경 씨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버지 곁에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해 다오.” 그렇게 말하고 묵묵히 살림을 맡았습니다. 아침마다 남매의 도시락을 싸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국을 데워 두었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쉽지 않았습니다. 준혁이는 미경 씨가 차린 밥상을 두고 일부러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고, 지혜는 친구들 앞에서 미경 씨를 “우리 집 아줌마”라고 소개했습니다. 미경 씨는 부엌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도시락을 쌌습니다.

2년 뒤 지혜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성호 씨의 가게가 거래처 부도로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혼수를 해 줄 형편이 안 되자 성호 씨는 밤마다 한숨만 쉬었습니다.
미경 씨는 첫 남편이 남기고 간 보험금을 모아 둔 통장을 꺼냈습니다. 그 돈으로 지혜의 혼수 2천만 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해 주시는 걸로 하자. 내가 냈다고는 말하지 마라.” 성호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준혁이가 가게를 물려받겠다며 사업자 등록을 할 때도 미경 씨가 몰래 보증금을 보탰습니다. 손주가 태어나면 산후조리를 도왔고, 명절이면 혼자 이틀 동안 전을 부쳤습니다. 남매는 여전히 미경 씨를 “아줌마”라고 불렀지만, 미경 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4년 전, 성호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밥도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남매는 병원에 몇 번 다녀가더니 각자 사정이 바쁘다며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미경 씨는 병원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의사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미경 씨는 텅 빈 집에 혼자 돌아와 남편이 늘 앉던 소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미경 씨는 4년 동안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새벽마다 남편을 일으켜 세수를 시키고, 하루 세 번 죽을 쑤어 떠먹였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마다 몸을 돌려 눕혔습니다. 요양원에 보내자는 준혁이의 말에도 미경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아버지는 집에서 모시고 싶다.”
간병비와 병원비는 미경 씨가 아파트 상가에서 청소 일을 하며 보탰습니다. 남매가 보내 주는 돈은 한 달에 몇십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미경 씨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가끔 성한 왼손으로 미경 씨의 손등을 쓰다듬어 줄 때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준혁이가 가끔 집에 들르는 날이면 아버지 얼굴만 잠깐 보고 거실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여도 준혁이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4년 동안 곁을 지킨 미경 씨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올봄, 성호 씨가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경 씨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남매는 상주 자리에 서 있었지만, 실제로 모든 일을 챙긴 사람은 미경 씨였습니다.
삼우제를 지낸 다음 날, 준혁이와 지혜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준혁이는 서류 봉투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줌마, 이건 상속 포기 각서예요. 이 아파트는 저희 엄마랑 아버지가 처음 마련한 집이에요. 아줌마가 그동안 고생하신 건 알지만, 이 집은 저희 남매가 받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석 달 안에 짐 정리해 주세요. 이사 비용은 저희가 좀 드릴게요.”
미경 씨는 서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서명란에는 이미 미경 씨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지혜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미경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2년 동안 이 집에서 남매의 밥을 짓고, 남편의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자마자 돌아온 것은 짐을 싸라는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미경 씨는 서명란에 펜을 대려다 몇 번이나 멈췄습니다. 그냥 서명하고 조용히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은 월세방 하나 얻어 혼자 살면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남편과 함께한 12년이 한순간에 지워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새벽녘 미경 씨는 남편이 쓰던 서랍장을 정리하다 낯선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봉투 겉에는 남편의 떨리는 왼손 글씨로 ‘미경에게, 내가 떠나면 열어 보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안에는 법률사무소 명함 한 장과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나 때문에 고생만 했소. 정신이 맑을 때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을 공증해 두었소. 이 집은 당신이 살다가 가시오. 아이들한테는 가게와 예금을 남겼으니 섭섭하지 않을 거요. 고맙고 미안하오.]

다음 날 미경 씨는 명함에 적힌 법률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변호사는 서류철을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법적으로 1순위 상속인이십니다. 게다가 고인께서 2년 전에 공증 유언을 해 두셨습니다. 이 아파트는 선생님께 남긴다는 내용입니다. 상속 포기 각서에 서명하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고인께서 공증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혹시 아내를 내보내려 하거든 이 유언장을 꼭 보여 달라고요.” 미경 씨는 그 말을 듣고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한참을 울었습니다.
일주일 뒤, 미경 씨는 남매를 다시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상속 포기 각서를 그대로 돌려주며 유언장 사본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준혁아, 지혜야. 이건 너희 아버지 뜻이다. 나는 이 집에서 살겠다. 대신 약속하마. 내가 세상을 떠나면 이 집은 너희 아버지 손주들에게 돌아가도록 나도 유언을 남기겠다. 나는 이 집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다. 너희 아버지와 산 12년을 지키려는 거다.”
준혁이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손이 떨렸습니다. 마지막 줄에는 아버지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너희 새엄마는 내 마지막 4년을 살려 준 사람이다. 부디 어머니로 모셔라.’

미경 씨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를 어머니로 모시라는 말은 너희 아버지 부탁이지, 내 부탁은 아니다. 명절에 오고 싶으면 오고, 아니면 안 와도 된다. 나는 이제부터 내 인생을 살겠다.”
준혁이는 끝내 아무 말 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딸 지혜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아줌마, 아니 어머니. 결혼할 때 혼수 아버지가 해 주신 거 아니었다는 거,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다 말씀해 주셨어요. 오빠를 말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한 달 뒤 지혜는 손주를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경 씨를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미경 씨는 손주를 안아 주며 오랫동안 등을 토닥였습니다.

그날 저녁, 미경 씨는 지혜와 함께 동네 시장 어묵 가게에서 뜨끈한 어묵탕 한 그릇을 나눠 먹었습니다. 무와 다시마로 우린 국물에 어묵 몇 꼬치를 넣은 소박한 상이었습니다. 지혜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 어묵탕 좋아하셨죠.” 미경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고전 소설 『콩쥐팥쥐전』은 계모의 구박을 받던 콩쥐가 끝내 복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새엄마가 팥쥐 어미는 아닙니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정을 의심받고, 정성을 다해도 남으로 취급받는 새엄마들도 있습니다. 진짜 가족은 피가 아니라 함께 견딘 세월이 만듭니다.

재혼 가정에서 배우자를 떠나보낸 뒤에는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서류에 함부로 서명하지 말고, 반드시 전문가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그리고 건강할 때 배우자와 함께 미리 뜻을 정리해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올가을 미경 씨는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 아래로 푸른 파도가 부서졌고, 저 멀리 광안대교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번졌습니다. 미경 씨는 남편과 함께 걷던 그 길을 천천히, 오래도록 걸었습니다.
출처 : ‘콩쥐팥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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