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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금반지 며느리에게 물려줬는데..” 금은방 진열장에서 그 반지를 보고 주저앉았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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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에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의 비녀, 어머니의 반지, 아버지의 시계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물건을 물려줄 때 부모는 물건보다 마음을 함께 건넨다고 생각합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최정자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남편과 함께 전주 남부시장에서 40년 동안 한복 바느질 가게를 했습니다. 남편은 3년 전 세상을 떠났고, 정자 씨는 가게를 정리한 뒤 완산동 오래된 주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정자 씨에게는 보물처럼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시집올 때 끼고 왔다는 금반지였습니다. 다섯 돈짜리 두툼한 반지 안쪽에는 ‘福’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그 반지를 정자 씨 손에 끼워 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우리 집 며느리 반지다. 너도 나중에 네 며느리한테 물려줘라.”

정자 씨는 그 반지를 끼고 평생 바느질을 했습니다. 손님이 줄어 가게 월세를 내기 어려울 때도, 아들 대학 등록금이 모자랄 때도 그 반지만은 팔지 않았습니다. 반지를 보면 엄했지만 따뜻했던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복 가게 손님들은 정자 씨의 반지를 보고 “그 반지 참 복스럽네요”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자 씨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시집살이는 매웠지만 바느질만큼은 누구보다 꼼꼼하게 가르쳐 주신 분이었습니다. 정자 씨의 바느질 솜씨는 모두 그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8년 전, 외아들 민호가 결혼을 했습니다. 며느리 수진이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정자 씨는 폐백을 받던 날 그 반지를 며느리 손가락에 끼워 주었습니다. “이건 우리 집 며느리한테만 내려오는 반지다. 잘 간직해라.”

수진이는 반지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어머님, 평생 소중히 끼고 다닐게요.” 그 말에 정자 씨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시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명절에 내려올 때마다 정자 씨는 며느리의 손가락부터 살폈습니다. 수진이는 늘 그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정자 씨는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겨울부터 며느리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자 씨가 넌지시 묻자 수진이는 “설거지할 때 빠질까 봐 집에 잘 두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정자 씨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정자 씨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매일 금반지를 끼고 다니기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명절마다 며느리의 빈손가락을 볼 때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그 무렵 정자 씨는 무릎이 나빠져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양쪽 무릎 수술비와 입원비가 800만 원 가까이 나왔습니다. 아들은 “엄마, 회사에서 보너스 나온 걸로 냈어요. 걱정 마세요” 하고 병원비를 모두 계산했습니다. 정자 씨는 아들이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구나 싶어 내심 뿌듯했습니다.

수술 뒤 석 달 동안 며느리는 주말마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와 시어머니의 재활 운동을 도왔습니다. 정자 씨는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며느리 얼굴이 유난히 핼쑥해 보여 마음이 쓰였습니다.

수진이는 시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며 “어머님, 조금만 더 걸어 보세요”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정자 씨가 화장실에 다녀오다 보면 며느리가 베란다에 서서 누군가와 낮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정자 씨는 회사 일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올봄, 정자 씨는 무릎이 다 나아 오랜만에 남부시장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옛 가게 자리를 지나 시장 골목 끝 금은방 앞을 지나던 순간, 정자 씨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습니다.

금은방 진열장 한가운데 낯익은 반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다섯 돈짜리 두툼한 금반지, 안쪽에 비치는 ‘福’이라는 글자. 틀림없이 시어머니의 반지였습니다.

정자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반지를 팔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목숨처럼 아끼던 반지가, 평생 지켜 온 그 반지가 남의 진열장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정자 씨는 금은방에 들어가 묻지도 못했습니다. 무슨 대답을 들을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의 사진 앞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그 뒤로 정자 씨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아도 짧게 끊었습니다. 명절에 내려온 며느리가 부엌일을 도와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수진이는 시어머니의 차가운 태도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정자 씨는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엄마, 요즘 왜 그래요?” 하고 물어도 정자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들 앞에서 며느리 흉을 보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속으로만 서운함을 삭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정자 씨는 밤마다 시어머니 사진을 바라보며 속으로 사과했습니다. 반지를 며느리에게 물려준 자신의 판단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반지가 지금 누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러다 이번 달 정자 씨의 일흔두 번째 생일이 되었습니다. 아들 내외가 손녀를 데리고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저녁상을 물린 뒤, 며느리가 작은 상자 하나를 두 손으로 내밀었습니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그리고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정자 씨는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시어머니의 금반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안쪽의 ‘福’ 자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정자 씨는 영문을 몰라 며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수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님, 2년 전에 민호 씨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그때 마침 어머님 무릎 수술 날짜가 잡혔는데, 병원비를 낼 돈이 없었어요. 어머님이 걱정하실까 봐 차마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래서 제 결혼 패물이랑 이 반지를 시장 금은방에 맡기고 돈을 마련했어요.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꼭 다시 찾으러 오라며 팔지 않고 보관해 주셨어요. 그동안 마트에서 계산 일을 하면서 매달 조금씩 갚았어요. 지난봄에 마지막 돈을 갚았는데, 사장님이 반지를 깨끗하게 닦아 주신다며 며칠 진열장에 올려 두셨대요. 어머님 생신 날 직접 끼워 드리고 싶어서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정자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주말마다 내려와 재활을 돕던 며느리의 핼쑥한 얼굴, 반지가 사라진 손가락, 아들이 말한 보너스. 그 모든 것이 시어머니를 위한 며느리의 비밀이었습니다.

아들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그때 제가 너무 못나서 수진이한테 다 짐을 지웠어요. 지금은 다른 회사에 잘 다니고 있어요.”

정자 씨는 며느리의 손을 잡았습니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느라 거칠어진 손이었습니다. “수진아, 내가 너를 오해했다. 진열장에서 이 반지를 보고 네가 팔아 버린 줄 알았어. 몇 달 동안 너한테 얼마나 모질게 했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정자 씨는 반지를 다시 며느리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습니다. “이 반지는 이제 네가 진짜 주인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너를 업고 다니셨을 거다.”

다음 날 아침, 온 식구는 남부시장 국밥집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었습니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수란 하나를 곁들인 소박한 아침상이었습니다. 정자 씨는 며느리 그릇에 수란을 하나 더 얹어 주며 말했습니다. “많이 먹어라. 네가 우리 집 복이다.” 수진이는 수줍게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자 씨는 며느리를 데리고 금은방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사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사장님, 우리 며느리 반지를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새댁이 매달 꼬박꼬박 찾아와서 반지가 잘 있나 보고 갔어요. 이런 며느리 두셨으니 복 받으신 겁니다.”

기 드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 속 마틸드는 빌린 목걸이를 잃어버린 뒤 10년 동안 고생하며 빚을 갚지만, 끝내 그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보석의 값은 진열장 속 가격표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 애쓴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가장 소중한 마음을 놓칠 수 있습니다. 서운한 일이 생기면 혼자 오해를 키우기 전에 한 번쯤 조용히 물어보세요. 말하지 못한 사정 뒤에는 생각보다 깊은 사랑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올가을 정자 씨는 며느리와 함께 한옥마을 오목대에 올랐습니다. 기와지붕 너머로 붉게 물든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저녁 햇살이 전주 시내를 금빛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고부는 나란히 서서 해가 질 때까지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출처 :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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