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에게 집 한 채씩 똑같이 줬는데..” 3년 뒤 내 병원비 앞에서 드러난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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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 주면 형제 사이에 다툼이 없을 거라고 믿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공평하게 나눠 주었으니 자식들도 똑같이 부모를 챙길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받았다고 해서 같은 마음으로 돌려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올해 일흔세 살인 강영자 씨는 3년 전 두 딸에게 아파트 한 채씩을 똑같이 물려주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재산을 정리해 공평하게 나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봄, 영자 씨가 수술을 받게 되면서 1,200만 원의 병원비 앞에서 두 딸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남편이 남긴 두 채의 집
영자 씨의 남편은 평생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성실하게 재산을 모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은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 두 채와 영자 씨가 사는 작은 빌라였습니다. 남편은 생전에 늘 두 딸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라고 당부했습니다.큰딸 미정이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와 결혼해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둘째 딸 미경이는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남편과 경기도 외곽에서 살았습니다. 두 딸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달랐습니다. 큰딸은 똑똑하고 계산이 빨랐고, 둘째는 정이 많고 조용했습니다.3년 전 영자 씨는 남편의 유언대로 두 딸에게 아파트를 한 채씩 증여했습니다. 큰딸에게는 서울 아파트를, 둘째에게는 경기도 아파트를 주었습니다. 서울 아파트가 조금 더 비쌌지만 영자 씨는 그 차이를 현금으로 둘째에게 맞춰 주었습니다.남편은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 영자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여보, 애들한테 나눠 줄 때 꼭 똑같이 해. 형제끼리 돈 때문에 원수 되는 거 많이 봤어.” 영자 씨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3년 동안 서류를 정리했습니다. 공평함만이 두 딸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고맙다던 두 딸
증여를 마치던 날 두 딸은 엄마를 끌어안고 고마워했습니다. 큰딸은 “엄마, 이제 엄마 노후는 우리가 책임질게요”라고 말했고, 둘째도 “엄마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영자 씨는 남편의 뜻을 지켰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영자 씨는 작은 빌라에서 국민연금과 남편이 남긴 약간의 예금으로 생활했습니다. 두 딸에게 손 벌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혹시 큰일이 생기면 딸들이 도와줄 거라고 믿었습니다.처음 1년 동안 두 딸은 번갈아 가며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큰딸은 명절마다 백화점 선물 세트를 보냈고, 둘째는 한 달에 두 번씩 반찬을 해서 들고 왔습니다. 영자 씨는 두 딸 모두 효녀라며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둘째 딸은 반찬을 가져올 때마다 엄마의 냉장고를 정리하고 빨래까지 해 놓고 갔습니다. 큰딸은 바쁘다며 선물만 보내고 얼굴은 명절에나 비쳤습니다. 영자 씨는 그 차이를 느끼면서도 각자 사는 형편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갑작스러운 수술
올봄 영자 씨는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비와 입원비, 간병비를 합쳐 1,200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영자 씨의 예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영자 씨는 병원 침대에 누워 두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얘들아, 엄마가 수술비가 좀 모자라는구나. 반씩만 도와줄 수 있겠니?”둘째 딸 미경이는 그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큰딸 미정이는 전화로만 안부를 물을 뿐 병원에 오지 않았습니다.둘째는 학원 수업을 다른 강사에게 맡기고 일주일 동안 엄마 곁에서 간병을 했습니다. 밤에는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엄마의 물을 챙겼습니다. 영자 씨는 그런 둘째를 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큰딸의 계산
사흘 뒤 큰딸이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큰딸은 엄마의 상태를 묻기도 전에 병원비 고지서부터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도 요즘 대출 이자 때문에 빠듯해. 그리고 솔직히 엄마 빌라 있잖아. 그거 팔면 되는 거 아니야?”영자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3년 전 엄마 노후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던 딸이었습니다. 큰딸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경이는 서울 아파트보다 싼 데 받았잖아. 그 차이만큼은 미경이가 더 내야 공평하지.”병실 구석에서 그 말을 듣던 둘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언니, 그 차이는 엄마가 현금으로 맞춰 줬잖아. 그리고 지금 엄마가 수술했는데 계산부터 해야 돼?” 큰딸은 동생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습니다. “너는 학원 하니까 시간 많잖아. 간병은 네가 하고, 돈은 각자 형편대로 하자는 거야.”큰딸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엄마, 솔직히 우리 남편도 처가에 이렇게 돈 들어가는 거 싫어해. 나도 입장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큰딸은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영자 씨에게는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둘째 딸이 꺼낸 통장
영자 씨는 병실 침대에서 두 딸의 다툼을 지켜보며 눈을 감았습니다. 3년 전 똑같이 나눠 준 집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큰딸은 결국 100만 원만 보내겠다고 하고 병실을 나가 버렸습니다.그날 밤 둘째 딸이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아 통장 하나를 꺼냈습니다. “엄마, 사실 3년 전에 엄마가 맞춰 준 현금 있잖아. 그거 안 쓰고 엄마 이름으로 모아 뒀어. 언젠가 엄마 아플 때 쓰려고.” 통장에는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영자 씨는 둘째 딸의 손을 잡고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둘째는 엄마를 위해 그 돈을 손대지 않고 지켜 왔고, 넉넉한 큰딸은 엄마의 수술비 앞에서 계산기부터 두드렸던 것입니다.둘째의 남편도 다음 날 병원에 찾아와 장모님께 인사했습니다. 사위는 장모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장모님, 미경이가 그 돈 모으는 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저희 형편이 넉넉하진 않아도 장모님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영자 씨는 그 말에 다시 한번 목이 메었습니다.

영자 씨의 결정
수술을 무사히 마친 영자 씨는 퇴원하던 날 두 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미정아, 너는 엄마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했던 약속을 잊었구나. 엄마는 이제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마. 대신 엄마가 사는 빌라는 나중에 미경이에게 주겠다.”큰딸은 얼굴이 붉어지며 항의하려 했지만 영자 씨는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공평하게 나눠 준 집은 이미 줬다. 이 빌라는 엄마가 아플 때 곁을 지킨 사람에게 주는 거다. 그게 엄마가 생각하는 공평함이다.” 큰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영자 씨는 요즘 둘째 딸네 근처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엄마와 가까이 살게 되었다며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큰딸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미안해. 다음 주에 찾아갈게.” 영자 씨는 답장 대신 휴대전화를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이사를 준비하며 영자 씨는 남편의 사진 앞에 앉아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말대로 똑같이 나눠 줬어요. 그런데 똑같이 받은 애들이 똑같지는 않더라고요.” 사진 속 남편은 여전히 웃고 있었습니다. 영자 씨는 그 웃음을 보며 이번 결정만큼은 남편도 이해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재산을 똑같이 나눠 준다고 해서 자식들의 마음까지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자 씨의 두 딸은 같은 것을 받았지만,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 보여 준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자식에게 재산을 나눠 줄 때는 내 노후와 병원비를 위한 몫을 먼저 남겨 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공평함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을 기준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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