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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돈댁 한복값 몰래 내줬는데..” 10년 뒤 사돈이 보낸 택배를 열고 울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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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결혼시키는 날, 부모들은 서로의 형편을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넉넉한 집은 넉넉한 대로, 어려운 집은 어려운 대로 혼사 준비가 버겁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상대 집안의 형편이 마음에 걸리면 티 나지 않게 도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경북 안동에 사는 권말자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과 함께 안동 구시장에서 30년 넘게 찜닭 가게를 했습니다. 가게는 지금 큰아들 내외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고, 말자 씨는 남편을 먼저 보낸 뒤 시장 근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말자 씨에게는 아들 둘과 막내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막내딸 은지는 대구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같은 병원 방사선사인 청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위가 될 청년은 경북 영양의 산골 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집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상견례 날, 사돈 내외는 낡은 양복과 오래된 투피스를 입고 나왔습니다. 사부인은 손톱 밑에 흙물이 배어 있었고, 사돈어른은 굽은 허리를 연신 펴려 애썼습니다. 두 분은 “저희가 가진 게 없어서 따님께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말자 씨 남편은 상견례가 끝난 뒤 차 안에서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어른 손 봤소? 평생 흙 만진 손이더구먼. 저런 집에서 자란 사위면 믿을 만하오.” 말자 씨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사위는 말수는 적었지만 장모 앞에서 늘 공손했습니다.

결혼식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은지가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시어머님이 혼주 한복을 빌려 입으신대요. 맞추는 건 너무 비싸다고요. 그런데 대여점 한복은 사이즈가 잘 안 맞아서 걱정이신가 봐요.”

말자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평생 처음 아들 장가보내는 날, 몸에 맞지 않는 한복을 입고 하객 앞에 서야 하는 사부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갔습니다.

다음 날 말자 씨는 안동에서 30년 넘게 한복을 지어 온 단골 한복집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돈 내외의 한복 두 벌 값 120만 원을 미리 내 두었습니다. “사장님, 영양 사돈댁이 오시면 개업 30주년 행사로 혼주 한복을 무료로 지어 드린다고 해 주세요. 제가 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한복집 사장은 말자 씨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부인 마음 상하지 않게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치수도 넉넉하게 재서 편하게 지어 드리겠습니다.” 말자 씨는 가게를 나서며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결혼식 날, 사돈 내외는 몸에 꼭 맞는 고운 한복을 입고 식장에 섰습니다. 사부인의 연분홍 저고리는 수줍은 얼굴빛과 잘 어울렸습니다. 사부인은 말자 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사부인, 한복집에서 행사를 한다고 공짜로 지어 줬어요. 우리 아들 장가가는 날 이런 복이 다 있네요.”

말자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비밀은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돈댁이 마음 편히 잔치를 치렀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해마다 영양에서 택배가 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사돈댁이 농사지은 고춧가루가 10근씩 들어 있었습니다. 햇볕에 말려 곱게 빻은 고춧가루는 빛깔부터 달랐습니다. 말자 씨는 그 고춧가루로 김장을 하고 찜닭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말자 씨도 해마다 답례를 보냈습니다. 안동 간고등어와 찜닭 양념장을 상자에 담아 보내면, 며칠 뒤 사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부인, 고등어가 어찌나 맛있는지 영감이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 두 사부인은 그렇게 10년 동안 택배와 전화로 정을 나누었습니다.

딸 은지는 시댁에서 귀한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손주가 태어나자 사부인은 영양에서 대구까지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와서 산후조리를 도왔습니다. 말자 씨는 그런 사부인이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명절이면 은지는 시댁에 먼저 들렀다가 안동 친정으로 왔습니다. 그때마다 은지의 손에는 사부인이 싸 준 들기름과 묵은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엄마, 어머님이 사부인 드리라고 짠 들기름이래요.” 말자 씨는 그 병을 받을 때마다 사돈댁 마당에서 들깨를 털고 볶았을 사부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3년 전 사돈어른이 세상을 떠난 뒤로 사부인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졌습니다. 혼자 고추 농사를 짓기가 힘에 부친다는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 들을 때마다 말자 씨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번 달 중순, 말자 씨 앞으로 영양에서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해마다 오던 고춧가루 상자보다 조금 더 크고 무거웠습니다. 상자를 열자 맨 위에 고춧가루 봉지가 있었고, 그 아래 한지에 곱게 싼 꾸러미가 놓여 있었습니다.

꾸러미를 풀자 연분홍 누비 조끼 두 벌이 나왔습니다.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누빈 조끼였습니다. 말자 씨는 그 천을 보는 순간 숨을 멈췄습니다. 10년 전 결혼식 날 사부인이 입었던 바로 그 연분홍 한복 천이었습니다.

조끼 안쪽에는 작은 글씨로 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 벌에는 “권말자”, 다른 한 벌에는 “박옥분”. 사부인의 이름이었습니다. 단추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조끼 사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사부인, 무릎 수술을 받아서 올해로 고추 농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마지막 고춧가루입니다. 그리고 사부인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몇 해 전 안동 한복집 사장님이 병환으로 가게를 닫으시면서 저한테 전화를 주셨어요. 그 한복값, 사부인이 내셨다고요. 그 말을 듣고 밭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해마다 보낸 고춧가루는 그 빚을 갚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몇 해를 보내도 그 마음 빚은 다 못 갚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한복을 뜯어 조끼 두 벌을 지었습니다. 한 벌은 사부인 것, 한 벌은 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둘 다 늙었으니 같은 옷 입고 같이 늙어 갑시다.]

말자 씨는 편지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조끼를 가슴에 안은 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몇 해 동안 받은 고춧가루가 그저 농사지은 것을 나눠 준 것이 아니라, 갚을 길 없는 고마움을 담아 보낸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말자 씨는 곧바로 사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사부인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사부인, 받으셨어요? 바느질 솜씨가 없어서 부끄럽네요.” 말자 씨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사부인, 빚이라니요. 우리 사이에 무슨 빚이 있어요. 제가 오히려 10년 동안 그 귀한 고춧가루를 받아먹었는데요.”

“사부인, 그 한복 아끼시던 거잖아요. 손주 돌잔치 때도 그 한복 입으셨잖아요. 그걸 어떻게 뜯으셨어요.” 사부인은 수화기 너머로 웃었습니다. “옷장에 걸어 두면 뭐 해요. 사부인이 입어 주셔야 그 옷도 제값을 하지요.”

그 주 주말, 말자 씨는 딸 내외와 함께 영양 사돈댁을 찾아갔습니다. 무릎 수술을 받은 사부인은 지팡이를 짚고 마당까지 나와 말자 씨를 맞았습니다. 두 사부인은 연분홍 조끼를 똑같이 입고 마루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날 저녁상은 소박했습니다. 사부인이 텃밭에서 캔 감자를 넣은 된장국과 말자 씨가 들고 간 안동 간고등어 한 손이 전부였습니다. 사부인이 고등어 살을 발라 말자 씨 밥 위에 올려 주며 웃었습니다. “사부인, 우리 이제 사돈 말고 친구 합시다.” 말자 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봄봄』은 혼례를 두고 장인과 데릴사위가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를 웃음과 정으로 그려 낸 작품입니다. 혼사는 두 집안이 셈을 따지며 시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오래 남는 것은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베푼 사람은 잊어도 받은 사람은 평생 기억합니다. 티 내지 않고 건넨 작은 배려는 시간이 지나 더 큰 정이 되어 돌아옵니다. 사돈이든 이웃이든, 오늘 누군가의 형편을 조용히 헤아려 보세요. 그 마음이 오래도록 서로를 따뜻하게 지켜 줍니다.

올가을 말자 씨는 사부인과 함께 영양 일월산 자락의 고추밭 둑길을 걸었습니다. 수확을 마친 밭 너머로 산등성이마다 단풍이 붉게 타올랐고, 해 질 녘 하늘은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두 사부인은 똑같은 조끼를 입고 천천히 둑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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