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고향 논 공짜로 부치게 했는데..” 아버지 기일에 동생이 내민 서류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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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남긴 땅은 형제 사이를 가깝게도 하고 멀게도 합니다. 고향 땅을 함께 지키자며 웃던 형제가, 세월이 흐르면 그 땅 한 평을 두고 얼굴을 붉히기도 합니다. 정으로 맡긴 땅이 어느새 남의 것처럼 되어 버리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오순덕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김제 들녘의 농사짓는 집에서 2남 1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열여덟에 전주로 나와 봉제 공장에서 일했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함께 전주 남부시장에서 30년 동안 그릇 가게를 했습니다.
순덕 씨는 친정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농사일로 허리를 다쳤을 때도,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을 때도 주말마다 김제로 달려가 부모님을 돌봤습니다. 두 남동생은 각자 사정이 바쁘다며 명절에나 얼굴을 비췄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3년을 병석에서 보낼 때는 아예 김제 친정에서 지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릇 가게는 남편 혼자 지켰고, 순덕 씨는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며 밤을 새웠습니다. 동생들은 그런 누나에게 “누나가 고생이 많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11년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순덕 씨를 불렀습니다. “순덕아, 네가 우리 늙은이들 수발을 다 들었다. 집 앞 논 2천 평은 네 이름으로 해 두마. 동생들한테는 따로 다 챙겨 줬으니 서운해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논은 순덕 씨 명의로 등기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던 막내 남동생 만수가 찾아왔습니다. “누나, 그 논 내가 부칠게. 누나는 전주 살아서 농사도 못 짓잖아. 대신 쌀은 해마다 보내 줄게.” 순덕 씨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동생이 고향 땅을 지켜 주니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그때 남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형제간이라도 나중을 위해 한 장 적어 두는 게 좋겠소.” 순덕 씨는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남편의 말을 따랐습니다. 동생은 웃으며 짧은 확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누나 오순덕 소유의 논을 무상으로 빌려 농사짓는다. 누나가 원하면 언제든 돌려준다. 오만수.]
그 뒤로 10년 동안 만수는 그 논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가을마다 햅쌀 몇 포대를 보내왔습니다. 순덕 씨는 그 쌀로 밥을 지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순덕 씨도 동생을 살뜰히 챙겼습니다. 만수가 농기계를 바꿀 때 500만 원을 보태 주었고, 조카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입학금을 대신 내 주었습니다. 동생이 고향 땅을 지키며 사는 게 고마워서였습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자 쌀 소식이 점점 뜸해졌습니다. “올해는 흉년이라서”, “올해는 기계값이 많이 들어서” 하더니 어느새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순덕 씨는 동생 형편이 어려운가 보다 하고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김제 일대에 개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근처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야기에 땅값이 몇 배로 뛰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순덕 씨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만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명절에 만나도 땅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돌렸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 논은 내가 10년 부친 내 땅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어느 날은 고향 친구가 순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순덕아, 만수가 그 논에 창고를 짓겠다고 면사무소에 다니더라. 너는 알고 있냐?” 순덕 씨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순덕 씨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확인서를 꺼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다음 날에는 그 확인서를 들고 전주 시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아버지 기일, 형제들이 김제 시골집에 모였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밥상을 물리자 만수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누나, 그 논 이제 내 앞으로 넘겨 줘. 내가 10년 동안 땀 흘려 지킨 땅이잖아. 누나는 전주 살면서 손 하나 까딱 안 했고. 법적으로도 오래 점유하면 내 땅이 된대. 그래도 누나니까 서운하지 않게 2천만 원은 쳐 줄게.”
봉투 안에는 소유권 이전 서류와 함께 2천만 원에 땅을 넘긴다는 매매 계약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시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큰동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순덕 씨는 손이 떨렸습니다. 아버지 제삿날, 아버지 영정 앞에서 동생이 내민 서류였습니다. 순덕 씨는 숨을 고르고 가방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10년 전 동생이 도장을 찍은 확인서였습니다.
“만수야, 이거 기억나니? 네가 10년 전에 쓴 거다. 누나 땅을 공짜로 빌려 농사짓는다고, 누나가 원하면 언제든 돌려준다고 네 손으로 도장 찍었다.”
만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순덕 씨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남의 땅인 줄 알고 빌려 쓴 사람은 아무리 오래 농사지어도 그 땅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변호사가 그러더라. 이 서류는 가져가거라. 나는 도장 찍을 생각 없다.”

순덕 씨는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그리고 오늘로 그 논은 돌려받겠다. 아버지가 그 땅을 내 이름으로 해 주신 건, 네 욕심 채우라고가 아니라 고향 땅을 지키라고 하신 거다.”
제사상 곁에 앉아 있던 큰올케가 조용히 거들었습니다. “형님, 아버님이 살아 계셨으면 오늘 같은 날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만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류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해 겨울, 순덕 씨는 그 논을 마을에서 농사짓는 젊은 부부에게 정식 임대차 계약을 맺고 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받는 임대료는 아버지 이름으로 마을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 씨네 맏딸이 아버지 이름을 살렸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만수는 한동안 누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봄,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누나, 내가 욕심이 과했어. 아버지 볼 면목이 없다. 미안해.] 순덕 씨는 그 문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아버지 기일에 보자. 그날은 땅 이야기 말고 아버지 이야기만 하자.]
그 무렵 큰동생도 순덕 씨를 찾아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막내가 땅을 차지하면 일부를 나눠 주겠다고 해서 모른 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나, 내가 형 노릇을 못 했다. 아버지 볼 낯이 없다.” 순덕 씨는 큰동생의 손을 잡으며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고 말했습니다.

만수의 문자를 받은 날 저녁, 순덕 씨 부부는 전주 집 근처 오래된 청국장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구수한 청국장 한 뚝배기에 열무김치 한 접시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때 그 확인서 한 장 받아 두길 잘했소.” 순덕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 그릇에 두부를 덜어 주었습니다.
이광수의 소설 『흙』은 도시의 출세를 뒤로하고 농촌으로 돌아가 흙과 함께 마을을 일으키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땅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그 위에서 사람과 마을을 살리는 터전일 때 진짜 값어치를 지닙니다.

가족끼리 돈과 땅을 주고받을 때는 정만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사정이 바뀌면 그 정이 오해와 욕심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도 빌려주는 것은 빌려준다고, 주는 것은 준다고 분명하게 글로 남겨 두세요. 그 한 장이 가족을 지킵니다.
올가을 순덕 씨는 남편과 함께 김제 벽골제 둑길을 걸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결쳤고, 해 질 녘 하늘은 붉게 타올랐습니다. 순덕 씨는 아버지가 평생 일군 들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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