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딸에게 아파트 팔아 1억 줬는데..” 7년 뒤 딸이 건넨 첫 매출 봉투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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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힘들 때 부모는 가진 것을 다 내어 주고 싶어 합니다. 특히 딸이 인생의 큰 고비를 맞아 빈손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내 노후보다 딸의 내일을 먼저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런 엄마를 두고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한명자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남편과 함께 30년 동안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국숫집을 했습니다. 남편은 10년 전 세상을 떠났고, 명자 씨는 국숫집을 정리한 뒤 30평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습니다.
국숫집 일은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되었습니다. 멸치 육수를 우리고 반죽을 치대다 보면 손목이 시큰거렸습니다. 그래도 명자 씨는 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고 가는 손님들 얼굴을 보며 30년을 버텼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마련한 아파트는 명자 씨의 유일한 재산이었습니다.
명자 씨에게는 외동딸 수정이가 있었습니다. 수정이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명자 씨는 딸이 잘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수정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국숫집에서 숙제를 했습니다. 손님이 몰리면 고사리손으로 그릇을 나르고, 엄마가 반죽을 치대는 모습을 따라 하며 놀았습니다. “엄마, 나도 커서 엄마처럼 가게 할 거야.” 명자 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7년 전 겨울, 수정이가 네 살배기 손자의 손을 잡고 청주 집 현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얼굴은 핼쑥했고,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습니다. “엄마, 나 이혼했어. 갈 데가 없어.”
명자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딸을 끌어안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위의 도박 빚 때문에 신혼집 전세금까지 모두 날린 상태였습니다. 수정이는 양육권만 겨우 지키고 빈손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딸과 손자가 아파트 작은방에서 지냈습니다. 수정이는 밤마다 손자를 재워 놓고 베란다에서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명자 씨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손자는 밤마다 “아빠는 언제 와?” 하고 물었습니다. 수정이는 대답 대신 아이를 꼭 안아 주었고, 명자 씨는 그런 모녀를 보며 부엌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습니다.

명자 씨는 결심했습니다. 아파트를 팔아 작은 빌라로 옮기고, 남은 돈 1억 원을 딸에게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 돈으로 아이랑 살 전셋집 구하고, 다시 시작해라. 엄마는 작은 집이면 충분하다.”
친척들은 혀를 찼습니다. “노후 자금을 다 털어 주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 “이혼한 딸한테 돈 줘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명자 씨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수정이는 그 돈으로 청주에 작은 전셋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안 반찬가게에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물을 무치고 김치를 담그며 반찬 만드는 일을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반찬가게 사장은 처음에는 수정이를 미덥지 않게 여겼습니다. 서울에서 회사만 다닌 사람이 반찬 일을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수정이는 누구보다 일찍 나와 누구보다 늦게까지 남았고, 1년이 지나자 사장은 가게 열쇠를 수정이에게 맡겼습니다.

수정이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면 늘 그곳에 엄마가 서 있었습니다. 명자 씨는 손자를 재워 놓고 매일 밤 정류장까지 딸을 마중 나갔습니다.
“엄마, 추운데 왜 나와 있어. 들어가 있으라니까.” 수정이가 투정을 부려도 명자 씨는 웃기만 했습니다. 겨울이면 보온병에 따뜻한 보리차를 담아 갔고, 여름이면 부채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명자 씨의 밤 마중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명자 씨의 무릎은 나빠졌고, 작은 빌라의 겨울은 생각보다 추웠습니다. 친척들은 “그것 봐라, 다 털어 주더니 고생한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명자 씨는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정류장에서 딸의 얼굴을 보는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그사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할머니와 함께 정류장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멈추고 엄마가 내리면 손자는 “엄마!” 하고 달려가 안겼고, 명자 씨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수정이가 엄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왔습니다. “엄마,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비워 둬. 같이 갈 데가 있어.”
토요일 아침, 수정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육거리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30년 동안 국숫집을 하던 바로 그 골목이었습니다. 국숫집 자리에 작은 반찬가게 하나가 새로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간판에는 ‘마중 반찬’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명자 씨는 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수정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내 가게야. 7년 동안 모은 돈으로 차렸어. 엄마가 국수 팔던 자리가 비었다길래 여기로 했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벽 한쪽에 낡은 국자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명자 씨가 국숫집에서 쓰던 국자였습니다. 국숫집을 정리할 때 버린 줄 알았던 그 국자를 수정이가 몰래 챙겨 두었던 것입니다.

점심 무렵에는 옛 국숫집 단골이던 할머니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이고, 국숫집 딸이 이렇게 컸네. 엄마 손맛이 나는지 보자.” 할머니들은 반찬을 맛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명자 씨는 그 모습을 보며 몇 번이고 눈가를 훔쳤습니다.
그날 내내 명자 씨는 가게 한쪽 의자에 앉아 딸이 손님을 맞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시장 상인들이 몰려와 “국숫집 아주머니 딸이 가게를 냈다”며 반찬을 한 아름씩 사 갔습니다. 저녁이 되어 가게 문을 닫을 무렵, 수정이가 하얀 봉투 하나를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 오늘 첫 매출이야. 이건 엄마 거야.”
봉투 안에는 하루 동안 번 돈 37만 2천 원과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 7년 동안 매일 밤 정류장에서 기다려 줘서 고마워. 가게 이름은 그래서 ‘마중’으로 했어. 이제는 내가 엄마를 마중할게. 다음 달부터 우리 같이 살자. 엄마 무릎 아픈데 그 추운 빌라에 더는 못 두겠어.]
명자 씨는 봉투를 가슴에 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친척들이 밑 빠진 독이라 했던 1억 원이, 7년 만에 가장 따뜻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세 식구는 가게 안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갓 지은 밥에 가게에서 팔다 남은 나물 몇 가지와 된장국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열한 살이 된 손자가 할머니 그릇에 시금치나물을 얹어 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거 엄마가 제일 잘하는 거래요.” 명자 씨는 웃으며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이태준의 동화 『엄마 마중』은 추운 겨울날 정류장에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누군가를 묵묵히 기다려 준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고, 언젠가 가장 따뜻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일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식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는 마음은 그 어떤 돈보다 큰 힘이 됩니다. 남의 말보다 내 자식의 내일을 믿어 주세요. 그 믿음이 자식을 끝까지 걷게 합니다.
올가을 명자 씨는 딸과 손자의 손을 잡고 무심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벚나무마다 붉은 단풍이 들었고, 개천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세 식구는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출처 : ‘엄마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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