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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에 한 푼도 안 보탰는데..” 10년 뒤 며느리가 차려 준 생일상에 울었다

책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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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대부분 걱정이 담겨 있습니다. 내 자식이 고생할까,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모진 말이 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 내뱉은 차가운 말과 닫힌 지갑은 오랜 세월 부모의 마음에도 무거운 짐으로 남습니다.

경남 통영에 사는 김옥자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통영 중앙시장에서 30년 넘게 생선 손질 일을 하며 외아들 동수를 키웠습니다. 남편은 동수가 중학생일 때 바다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옥자 씨는 그 뒤로 혼자 억척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새벽 네 시면 시장에 나가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담그고 생선 비늘을 벗겼습니다. 손마디는 굵어지고 허리는 굽었지만, 옥자 씨는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버텼습니다. 동수는 그런 엄마의 뜻대로 대학을 마치고 조선소 사무직에 취직했습니다.

10년 전, 동수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한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동수보다 두 살 많은 미경 씨였습니다. 미경 씨는 이혼한 지 3년이 되었고, 열 살 난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옥자 씨는 그 자리에서 얼굴이 굳었습니다. 평생 고생해서 키운 외아들이 아이 딸린 여자와 결혼하겠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옥자 씨는 미경 씨가 내민 과일 바구니에 손도 대지 않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결혼 못 허락한다.”

동수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옥자 씨의 허락 없이 작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옥자 씨는 결혼식장 맨 뒷자리에 잠깐 앉았다가 식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습니다. 아들 결혼에 단 한 푼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날 밤 옥자 씨는 불 꺼진 방에 혼자 앉아 남편 사진을 꺼내 보았습니다. “여보, 내가 너무 했소? 그래도 우리 동수가 고생길로 들어가는 걸 어찌 두고 보겠소.” 사진 속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신혼부부는 통영 변두리의 낡은 월세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외아들 장가가는데 전세금이라도 보태 주지” 하고 수군거려도 옥자 씨는 못 들은 척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저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미경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옥자 씨 집을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직접 만든 반찬통이 들려 있었습니다. 옥자 씨는 현관문만 빼꼼 열고 반찬을 받은 뒤 “바쁘니 가 봐라” 하고 문을 닫기 일쑤였습니다.

미경 씨의 딸 하은이도 엄마를 따라왔습니다. 하은이는 처음 본 날부터 옥자 씨를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옥자 씨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돌아간 뒤에는 현관 앞에 놓인 삐뚤빼뚤한 그림 편지를 몰래 주워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명절이면 아들 부부가 하은이를 데리고 찾아왔지만, 옥자 씨는 차례상 앞에서도 며느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미경 씨는 그래도 묵묵히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마친 뒤 “어머님, 다음 달에 또 올게요” 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옥자 씨의 마음도 조금씩 녹았습니다. 4년 전 겨울, 옥자 씨가 시장 바닥에서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며느리였습니다. 미경 씨는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옥자 씨 집에 들러 밥을 차리고 머리를 감겨 주었습니다.

그때 옥자 씨는 처음으로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미경 씨는 그 한마디에 부엌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래도 옥자 씨는 결혼을 반대했던 일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옥자 씨는 며느리가 오는 날이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었습니다. 가끔은 시장에서 제일 좋은 생선을 골라 손질해 두었다가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말로는 하지 못해도, 옥자 씨 나름의 사과였습니다.

그사이 동수 부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미경 씨는 식당 일을 하면서 밤에는 부업을 했고, 동수도 주말이면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하은이는 엄마 아빠의 고생을 보며 자라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하은이가 대학 합격 소식을 들고 왔던 날, 옥자 씨는 처음으로 손녀에게 봉투를 건넸습니다. 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해 번 돈 50만 원이었습니다. “책이라도 사라.” 하은이는 봉투를 품에 안고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옥자 씨의 일흔두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옥자 씨는 혼자 미역국이나 끓여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세요. 차 보낼게요.”

아들이 데려간 곳은 단칸방이 아니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지난달 마련한 집이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거실 한가운데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상 위에는 미역국과 볼락구이, 멸치볶음과 톳나물무침이 놓여 있었습니다. 모두 옥자 씨가 시장에서 평생 만들어 팔던 반찬들이었습니다. 미경 씨가 수줍게 말했습니다. “시장 이모님들한테 어머님 손맛을 몇 년 동안 몰래 배웠어요. 아직 어머님 맛은 안 나지만요.”

옥자 씨는 상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장 이모님들이 몇 년 전부터 “요새 젊은 새댁이 자꾸 와서 반찬 만드는 걸 물어보고 간다”고 하던 말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그 새댁이 바로 자기 며느리였던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자 미경 씨가 옥자 씨를 작은방으로 이끌었습니다. 방 안에는 새 이불과 작은 화장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방문에는 하은이가 쓴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방]

“어머님, 이제 혼자 계시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살아요. 이 집 살 때부터 이 방은 어머님 방으로 정해 뒀어요.” 미경 씨는 옥자 씨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어머님이 그때 반대하셨던 거 다 이해해요. 저도 하은이 엄마라서 알아요. 엄마라면 당연히 그러셨을 거예요.”

옥자 씨는 며느리의 손을 잡은 채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미경아, 내가 미안하다. 결혼식에 밥 한 끼 못 차려 주고, 전세금 한 푼 못 보태 준 시어미한테 이런 상을 차려 주다니.” 10년 동안 목에 걸려 있던 말이 그제야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학생이 된 하은이가 할머니를 꼭 안았습니다. “할머니, 저 어릴 때 그린 그림 편지 다 갖고 계신 거 알아요. 엄마가 그러는데 할머니 서랍에서 봤대요.” 옥자 씨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얼굴로 손녀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네 식구는 생일상에 다시 둘러앉아 남은 미역국을 데워 나눠 먹었습니다. 따끈한 미역국에 갓 지은 밥 한 공기, 볼락구이 한 토막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동수가 말했습니다. “엄마, 이제 생일상은 해마다 미경이가 차린대요.” 옥자 씨는 웃으며 며느리 밥그릇에 볼락 살을 발라 얹어 주었습니다.

요한나 슈피리의 동화 『하이디』에서 산 위에 홀로 살던 고집스러운 할아버지는 손녀 하이디의 해맑은 사랑 앞에서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엽니다.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가와 준 누군가의 진심입니다.

자식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부모는 등을 돌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그때의 반대가 아니라 그 뒤에 서로가 건넨 마음입니다. 아직 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이 있다면, 늦기 전에 오늘 꺼내 보세요.

올가을 옥자 씨는 며느리와 손녀의 손을 잡고 통영 달아공원에 올랐습니다.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였고, 고깃배들이 금빛 물결을 가르며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해가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하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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