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간호대 학비 2000만원 대줬는데..” 첫 월급날 딸이 내민 미용 가위 상자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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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늦은 나이에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부모 마음은 덜컥 내려앉습니다. 응원보다 걱정이 먼저 앞서고, 그 걱정은 자주 반대하는 말이 되어 나갑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지갑을 여는 것이 부모입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사는 오경숙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시장 골목 낡은 건물 1층에서 30년째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의자 세 개짜리 가게지만, 단골 할머니들은 파마만큼은 아직도 경숙 씨 손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25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 지은 씨는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경숙 씨에게는 버리지 못하는 가위가 하나 있습니다. 미용실 문을 열던 해에 남편이 큰맘 먹고 사 준 가위입니다. 날은 몇 번이나 갈았고, 닳은 손잡이에는 반창고를 감아 썼습니다. 딸이 “엄마, 이제 그만 바꿔” 해도 경숙 씨는 “손에 붙어서 안 돼” 하며 웃었습니다.
남편은 시내 종합병원 7층 병동에서 마지막 두 달을 보냈습니다. 그때 지은 씨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경숙 씨는 장례를 치르고 사흘 만에 다시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딸은 학교가 끝나면 미용실 구석에서 숙제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었습니다. 손님이 없는 저녁이면 모녀는 가게 소파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나눠 먹었습니다.
그 시절 경숙 씨는 가끔 그날 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빠 숨이 넘어가는데 엄마가 서 있지도 못하겠더라. 그때 간호사 선생이 내 손을 꽉 잡고 끝까지 옆에 있어 줬어. 그 사람 덕에 버텼다.” 딸은 대꾸 없이 엄마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했습니다. 경숙 씨는 그 간호사의 이름조차 묻지 못한 것을 오래도록 아쉬워했습니다.
지은 씨는 대학을 나와 천안의 한 물류회사 사무실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경숙 씨는 딸이 자리를 잡았다고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4년 전 봄, 미용실 문을 닫을 무렵 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엄마, 나 회사 그만뒀어. 간호대 붙었어.”
경숙 씨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쳤습니다. “서른셋에 무슨 공부냐. 스무 살짜리들 틈에서 4년을 어떻게 버텨. 시집갈 생각은 없니?” 딸은 고개를 숙인 채 “그냥 하고 싶어서 그래” 하고만 말했습니다. 왜 하필 간호사냐고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은 같았습니다.
한 달을 버티던 경숙 씨는 결국 은행에 갔습니다. 파마 하나, 커트 하나 해서 번 돈으로 10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딸 결혼할 때 보태려던 2000만 원을 찾아 딸 앞에 내밀었습니다. “학비랑 생활비 해라. 엄마는 이거 말고는 더 없다. 중간에 그만두면 엄마 얼굴 볼 생각 마.” 모진 말이었지만 딸은 봉투를 두 손으로 받고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 뒤 4년은 길었습니다. 딸은 학교 근처 원룸에서 지내며 주말마다 편의점에서 일했습니다. 병원 실습이 시작되자 얼굴이 반쪽이 되었고, 명절에도 시험공부를 한다며 하루만 다녀갔습니다. 손님들이 “딸은 시집 안 가?” 하고 물으면 경숙 씨는 “공부한대요”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돈으로 차라리 결혼을 시켰으면 어땠을까, 밤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 딸은 간호사 국가시험에 합격했고, 올봄 시내 종합병원에 신규 간호사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병원 어느 병동이냐고 물어도 딸은 “나중에 얘기해 줄게” 하며 웃기만 했습니다. 경숙 씨는 끝까지 엄마한테 속을 안 보여 준다 싶어 서운했습니다.
첫 월급날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었습니다. 마지막 손님 드라이를 마치고 경숙 씨가 셔터를 반쯤 내리는데, 우산을 접은 딸이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리본을 맨 길쭉한 상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엄마, 첫 월급 탔어. 이거 제일 먼저 사고 싶었어.”
상자를 열자 은빛으로 반짝이는 새 미용 가위가 들어 있었습니다. 손잡이에는 엄마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경숙 씨는 반창고 감은 옛 가위를 내려다보다가 웃었습니다. “비싼 걸 뭐 하러. 엄마는 이거면 되는데.” 그러다 가위 밑에 접혀 있던 카드를 발견했습니다.
카드에는 딸의 반듯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나 7층 병동에 있어. 아빠가 마지막에 계셨던 그 병동이야. 이제 엄마 손은 내가 잡을게.’
경숙 씨는 카드를 든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지은아, 이게 무슨 말이야.”
딸이 엄마 옆 의자에 앉았습니다. “엄마가 맨날 그랬잖아. 그 간호사 선생님 덕에 버텼다고. 나 그날 복도에서 다 봤어. 엄마가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분이 엄마 손을 안 놓더라. 회사 다니면서도 그 생각이 계속 났어. 나도 누군가한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엄마가 얼마나 모진 소리를 했는데.”
“말하면 엄마가 아빠 생각에 또 울 것 같아서. 다 되고 나서 말하려고 했어. 원서 낼 때 그 병동에서 일하고 싶다고 썼어. 처음 출근하던 날, 복도 끝 창문 앞에 한참 서 있었어.”
경숙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병동이냐고 물을 때마다 웃기만 하던 딸,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그냥”이라고만 하던 딸. 그 “그냥” 안에 25년 전 그 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경숙 씨는 딸의 손을 잡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을 씻느라 거칠게 튼 손이었습니다. “엄마가 미안하다. 나이 먹고 무슨 공부냐고, 그만두면 얼굴도 보지 말자고 했지. 그 돈 아까워한 내가 부끄럽다.” 딸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습니다. “엄마가 그 돈 안 줬으면 못 했어. 엄마가 가위질해서 번 돈이잖아. 그래서 가위 사 온 거야.”
그날 밤 모녀는 미용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하나씩 먹었습니다. 25년 전 그 저녁들과 똑같았습니다. 경숙 씨는 새 가위를 거울 앞에 걸어 두고, 옛 가위는 깨끗이 닦아 서랍 깊숙이 넣었습니다.
자식이 고른 길은 부모 눈에 늘 늦고 험해 보입니다. 반대하는 마음도 사랑에서 나오지만, 그 길을 고른 까닭을 한 번쯤 끝까지 들어 보려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자식이 말을 아낄 때는 부모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건넨 돈은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끝나지 않습니다. 자식 손에서 다른 모양으로 자라 언젠가 부모에게 돌아옵니다. 서운함이 쌓일 때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늦가을 쉬는 날, 경숙 씨는 딸과 함께 천안 천호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호수 위로 노랗게 물든 버들잎이 떨어지고, 물가 벤치에는 오후 햇살이 길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딸이 먼저 엄마 손을 잡았고, 경숙 씨는 그 손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맞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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