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암 수술비 2500만원 보탰는데..” 2년 뒤 아들 집 거실에 걸린 사진 한 장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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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결혼하면 사돈댁도 한 식구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사돈집에 큰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지갑을 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으로 건넨 돈일수록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서로 밝혀 두지 않으면, 고마움은 사라지고 서운함만 남기 쉽습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배상철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서른두 해 동안 시내버스를 몰다 4년 전 운전대를 놓았습니다. 첫차를 몰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던 버릇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아내는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상철 씨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 혼자 지냅니다. 외아들 정훈이는 같은 청주 서원구에서 며느리 은지, 일곱 살 손자 도윤이와 살고 있습니다.
상철 씨는 며느리를 처음 본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정훈이가 데려온 여자 친구가 꾸벅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기사님, 저 3년 동안 아침마다 기사님 버스 탔어요.” 매일 아침 “안녕하세요” 하고 타던 그 손님이었습니다. 상철 씨는 아는 얼굴이 식구가 된다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내를 보낸 뒤 은지는 한 달에 두 번씩 반찬통을 들고 왔습니다. 혼자 계신 아버님이 걱정된다며 현관 비밀번호도 받아 갔습니다. 상철 씨가 독감으로 사흘을 앓아누웠을 때 전복죽을 쑤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도 은지였습니다. 상철 씨는 옛 동료 기사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며느리는 딸보다 낫다”고 자랑했습니다.
2년 전 봄, 은지가 퉁퉁 부은 눈으로 시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님, 친정엄마가 유방암이래요. 수술 날짜는 잡혔는데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몰라서요. 친정 형편도 어렵고, 저희도 대출이 있어서….” 은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상철 씨는 장롱 속 통장을 꺼냈습니다. 퇴직 전 5년 동안 야간 운행 수당을 떼어 부은 적금이었습니다. 늙어서 자식에게 병원비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모은 돈이었습니다. 이튿날 상철 씨는 2,500만 원을 은지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사돈 일이 내 일이다. 돈 걱정 말고 어머니 곁에만 있어라.” 은지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였습니다. “아버님, 이 은혜 꼭 갚을게요.”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은지의 발걸음이 조금씩 뜸해졌습니다. 반찬통은 석 달에 한 번 오다가 그마저 끊겼습니다. 전화를 걸면 “요즘 친정 일로 정신이 없어서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상철 씨는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그사이 상철 씨는 무릎이 시큰거려도 병원 대신 파스로 버텼습니다. 병원비로 모아 둔 돈을 다 보냈으니 아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도윤이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상철 씨는 문구점에서 공룡 조립 장난감을 사 들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 아들 집에 갔습니다.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상철 씨의 눈이 텔레비전 위 벽에 멈췄습니다. 처음 보는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사돈 내외와 처형네 식구, 아들 내외와 도윤이까지 아홉 명이 웃고 있었습니다. 밀짚모자를 쓴 사돈 안어른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엄마 완쾌 기념 가족 여행’이라는 글씨와 작년 여름 날짜가 찍혀 있었습니다.
“이건 언제 다녀온 거냐?” 은지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그때 도윤이가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할아버지, 나 비행기 탔어요! 외할머니가 이번 여행은 사돈어른 덕이라고 했어요.”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꺼지고 도윤이가 방에 들어가자, 상철 씨는 아들 내외를 식탁에 앉혔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봐라. 사돈 병원비는 얼마나 나왔냐.”
한참 만에 은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 죄송해요. 암은 건강보험에서 본인 부담이 크게 줄어서 병원에 낸 돈이 생각보다 적었어요. 그것도 엄마가 들어 둔 실손보험으로 거의 다 돌려받았어요. 바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언니가 엄마 고생했으니 여행이라도 모시자고 해서… 그 돈에서 900만 원을 썼어요. 이것저것 쓰고 지금 1,300만 원이 남아 있어요.”
상철 씨는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정훈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알고 있었어요.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은지가 난처해질까 봐 자꾸 미뤘어요.”
상철 씨는 식탁 위에 두 손을 모았습니다. 손끝이 떨렸습니다. “사돈 모시고 바다 구경시켜 드린 게 서운한 게 아니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게 내 돈이었으면 한마디는 했어야지. 나는 2년 동안 무릎이 아파도 병원비 아끼느라 파스만 붙였다. 정훈아, 너는 그걸 알면서 어떻게 입을 닫고 있었냐.”
부엌에서는 미역국이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상철 씨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쓴 돈은 따지지 않으마. 남은 1,300만 원은 이달 안에 내 통장으로 보내라.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도 서로 얼굴 보고 산다.”
이튿날 아침, 상철 씨는 서랍에서 도어록 설명서를 찾아 돋보기를 끼고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비밀번호 바꿨다. 이제 올 때는 미리 전화하고 와라. 도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오너라.” 닷새 뒤 통장에 1,30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은지의 짧은 문자가 뒤따랐습니다.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상철 씨는 그 돈을 들고 2년 만에 정형외과에 갔습니다.
큰돈을 건넬 때는 정이 앞서 이것저것 묻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무엇에 쓰는 돈인지, 남으면 어떻게 할지 한마디만 정해 두어도 훗날의 오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받은 쪽도 사정이 바뀌었다면 먼저 털어놓는 것이 도리입니다.
가족이라도 지킬 선은 지켜야 오래 갑니다.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는 일은 정을 끊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어려워할 줄 아는 사이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늦가을 오후, 상철 씨는 미리 전화를 하고 찾아온 도윤이의 손을 잡고 무심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하얗게 핀 억새가 바람에 흔들렸고, 강물 위로 노을이 길게 번졌습니다. 멀리 시내버스 한 대가 다리를 건너가자 도윤이가 손을 흔들었고, 상철 씨도 따라 웃으며 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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