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 결혼에 3000만원 줬는데..” 퇴직 날 아들이 내민 나무 배 모형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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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결혼에 보태는 돈은 부모가 건네는 마지막 큰 선물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한 것도 부모의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묻지 못한 채 쌓인 서운함이 자식의 진심을 가릴 때도 있습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권태수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고향은 충남 보령의 바닷가 마을입니다. 스무 살에 올라와 공장을 다니다가 마흔둘에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해 같은 단지 경비실을 25년 동안 지켰습니다. 아내 김영애 씨는 예순넷으로 동네 반찬가게에서 일합니다. 큰딸은 결혼해 대전에 살고, 막내아들 동현이는 서른일곱으로 인테리어 목수 일을 합니다.
동현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 경비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와서 야간 근무를 서는 아버지와 좁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었습니다. 그럴 때면 태수 씨는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작은 목선으로 고기를 잡았는데, 빚 때문에 그 배를 팔던 날 온 식구가 포구에서 울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일 그만두면 고향 가서 작은 배 한 척 띄워 놓고 낚시나 하면서 살고 싶다.” 동현이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을 반짝였습니다.
동현이가 대학 대신 목공소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친척들은 혀를 찼습니다. 태수 씨는 아들 편을 들었습니다. “손으로 먹고사는 게 부끄러운 일 아니다. 아버지도 평생 몸으로 벌었다.” 동현이는 손바닥이 갈라져 돌아오는 날이 많았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3년 전 봄, 동현이가 현장에서 도배 일을 하던 지은 씨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태수 씨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통장을 꺼냈습니다. 야간 근무 수당과 명절 떡값을 아껴 십수 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담배를 끊고 점심은 경비실에서 도시락으로 때우며 모은 돈이 3000만 원이었습니다.
“동현아, 결혼하는 데 보태라.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게 다다.” 동현이는 한참 통장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버지, 이 돈 어떻게 모으셨는지 제가 알아요. 귀하게 쓸게요.”
그런데 결혼식은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동네 언덕 위 작은 성당에서 가족과 가까운 친구 오십여 명만 모여 치렀습니다. 신혼집은 낡은 빌라 전세였고, 신혼여행은 제주도 2박 3일이 전부였습니다. 친척들은 “막내 장가보내면서 너무 박하게 한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습니다.
태수 씨는 속이 상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 아들 집에 들렀을 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그 돈 다 어디 썼냐. 집도 이렇고 살림도 이렇고.” 동현이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습니다. 옆에 있던 며느리도 고개를 숙이고 웃었습니다. 태수 씨는 더 묻지 않고 돌아섰습니다.
그 뒤로 태수 씨는 그 돈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밤마다 단지를 돌다 보면 아들이 빚이라도 졌나, 남에게 빌려주고 못 받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텅 빈 통장을 볼 때면 한숨이 나왔습니다. 고향에 배를 띄우겠다던 꿈은 이제 정말 꿈으로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마지막 날, 정년퇴직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태수 씨는 25년 동안 앉았던 의자를 마른 수건으로 닦고 손때 묻은 근무 일지를 가지런히 정리했습니다. 주민들이 하나둘 창문을 두드려 떡 한 접시, 장갑 한 켤레를 놓고 갔습니다.
오후 다섯 시, 마지막 교대를 앞두고 경비실 문이 열렸습니다. 우산을 접은 동현이와 며느리가 서 있었습니다. 동현이 품에는 보자기에 싼 무언가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보자기를 풀자 팔뚝만 한 나무 배 모형이 나왔습니다. 하얗게 칠한 선체에 작은 조타실이 얹혀 있고, 뱃머리에는 낚싯대 두 개가 꽂혀 있었습니다. 아들 솜씨에 감탄하며 배를 돌려 보던 태수 씨의 손이 멈췄습니다. 배 옆구리에 또박또박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태수호’.
“이게 뭐냐.” 동현이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습니다. “아버지, 보령 포구에 진짜 배가 있어요. 이건 그 배를 그대로 깎은 거예요.”
동현이가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3년 전에 주신 3000만 원, 한 푼도 안 썼어요. 따로 넣어 두고 지은이랑 둘이 현장 일 하면서 매달 조금씩 보탰어요. 그래서 결혼식도 작게 했고 집도 작은 데로 얻었어요. 지난봄에 고향 포구 어르신이 내놓은 작은 중고 낚싯배를 계약했어요.”
며느리가 거들었습니다. “아버님이 그 돈 어디 썼냐고 물으셨을 때 말씀드리고 싶어서 혼났어요. 오늘 꼭 놀라게 해 드리자고 둘이 약속했거든요.”
동현이는 사진 몇 장을 내밀었습니다. 깨끗하게 손본 하얀 배가 포구 물결 위에 떠 있었습니다. “배를 몰려면 아버지가 조종면허를 따셔야 해요. 교육 일정도 알아 놨어요. 할아버지 배 팔던 날 이야기, 저 경비실에서 백 번은 들었잖아요.”
태수 씨는 나무 배를 끌어안은 채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25년 동안 한 번도 울어 본 적 없는 그 좁은 방에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이 녀석아, 그 돈은 너 잘 살라고 준 건데…….” 동현이가 아버지 어깨를 감쌌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남의 집을 지켜 주셨잖아요. 이제 아버지 꿈은 제가 지켜 드리고 싶었어요.”
그날 저녁 가족은 단지 앞 칼국숫집에 모였습니다. 바지락을 듬뿍 넣은 칼국수에 김치 한 접시가 전부인 소박한 상이었습니다. 태수 씨는 며느리 그릇에 바지락을 덜어 주며 말했습니다. “그때 웃기만 하던 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속 좁게 굴었다. 미안하다.” 아내 영애 씨는 그 모습을 보며 몰래 눈가를 훔쳤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린 것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부모의 꿈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자식일지도 모릅니다.
자식에게 건넨 돈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는 혼자 짐작하며 속을 끓이기보다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부모가 무심코 흘린 한마디를 자식은 생각보다 오래 품고 있습니다.
이달 초 태수 씨는 조종면허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보령의 작은 포구에서 ‘태수호’가 처음 물 위에 나섰습니다. 갈매기가 낮게 날고 저녁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뱃머리에 앉은 태수 씨 옆에서 동현이가 낚싯대를 드리웠고, 부자는 해가 수평선 아래로 잠길 때까지 말없이 물결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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