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할머니 집에 안 오겠다길래..” 며느리에게 이유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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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는 할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손주가 “할머니!” 하고 달려와 안기는 순간만큼 행복한 때도 없습니다.그런데 그 손주가 어느 날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고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오늘은 손주의 그 한마디에 상처받았던 한 할머니가 며느리에게서 이유를 듣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손주만 기다리는 할머니
경북 구미에 사는 유정자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구미 공단 근처에서 30년 동안 작은 문구점을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가게를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연금으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정자 씨에게는 아들 준호 씨와 딸 수진 씨가 있습니다. 아들은 대구에서 회사를 다니며 며느리 김혜원 씨와 초등학교 3학년 손자 민서를 키우고 있습니다. 딸은 구미에 살며 중학생 외손녀를 두었습니다.정자 씨는 한 달에 두 번, 주말마다 손자 민서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손자가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갈비를 재우고 손자가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었습니다. 손자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이 정자 씨에게는 한 달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정자 씨는 손자를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손자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것저것 챙기고 가르치려 했습니다. 공부는 잘하는지, 밥은 잘 먹는지, 키는 얼마나 컸는지 늘 궁금했습니다.그러던 올해 여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이번 주말에는 민서가 못 갈 것 같아요.” 정자 씨는 서운했지만 손자가 바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손자의 뜻밖의 한마디
그런데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손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들만 혼자 와서 잠깐 얼굴을 비추고 돌아갔습니다. 정자 씨가 이유를 물으면 아들은 “민서가 요즘 학원이 많아서요”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그러다 추석 연휴, 아들 가족이 모두 구미에 내려왔습니다. 석 달 만에 보는 손자였습니다. 정자 씨는 반가운 마음에 손자를 꼭 안았지만, 손자는 어색하게 몸을 빼며 엄마 뒤로 숨었습니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자 씨는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민서야, 할머니 집에 왜 이렇게 안 왔어? 할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러자 손자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집에 오면 맨날 혼나니까 오기 싫어요.”식탁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정자 씨는 손자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손자를 혼낸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언제 너를 혼냈다고 그러니?” 정자 씨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습니다.손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들은 난처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았고,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자 씨는 서운함과 당혹감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며느리와 나눈 대화
다음 날 아침, 정자 씨는 며느리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얘야, 민서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너는 알지? 할머니가 뭘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말해 다오.” 며느리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어머님, 서운해하실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어머님은 민서를 많이 사랑하시는 거 알아요. 그런데 민서는 할머니 집에 오면 늘 누나랑 비교당한다고 느껴요.”며느리의 말에 정자 씨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외손녀는 공부를 잘해 늘 칭찬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정자 씨는 손자에게 자주 “누나는 이맘때 구구단을 다 외웠다”, “누나처럼 공부 좀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며느리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남기면 다 먹을 때까지 못 일어나게 하시잖아요. 민서는 원래 입이 짧은 아이인데, 할머니 집에서 밥 먹는 시간이 제일 무섭대요. 키가 작다고 하실 때마다 많이 속상해하고요.”정자 씨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모두 손자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손자의 입장에서는 할머니 집이 혼나는 곳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며느리가 들려준 또 하나의 이야기
며느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꺼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민서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으셨어요. ‘네 엄마가 일하느라 너를 제대로 못 챙겨서 그렇다’고요.”정자 씨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느라 손자를 학원에 많이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무심코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손자가 그대로 기억하고 엄마에게 전했던 것입니다.”민서가 그 말을 듣고 와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날 밤 저도 많이 울었어요.” 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정자 씨는 며느리의 손을 잡았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얘야, 내가 정말 몰랐다. 손주 잘되라고 한 말이 이렇게 아이를 아프게 하고 너까지 울렸구나. 정말 미안하다.”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저는 괜찮아요. 다만 민서가 할머니 집을 다시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민서도 사실 할머니를 정말 좋아해요.”

할머니가 바꾼 것들
그날 오후, 정자 씨는 손자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손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정자 씨는 손자 옆에 조용히 앉아 말했습니다. “민서야, 할머니가 미안하다. 할머니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욕심을 냈나 봐.”손자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었습니다. 정자 씨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누나랑 비교 안 할게. 밥도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 그리고 너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엄마야. 할머니가 잘못 말했어.”손자는 한참을 할머니를 바라보다 작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진짜요? 약속해요.” 정자 씨는 손자와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그 작은 손가락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습니다.그 뒤로 정자 씨는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손자가 오면 공부 이야기 대신 손자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밥상에는 손자가 좋아하는 반찬만 조금씩 올렸습니다. 며느리의 칭찬도 손자 앞에서 일부러 자주 했습니다.딸에게도 외손녀 자랑을 손자 앞에서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손주를 각자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것이 할머니의 역할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다시 할머니 품으로
한 달 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이번 주말에 민서가 할머니 집에 가고 싶대요. 자고 오겠대요.” 정자 씨는 전화기를 든 채 눈물을 글썽였습니다.주말 아침, 현관문이 열리자 손자가 “할머니!” 하고 달려와 안겼습니다. 석 달 넘게 기다린 순간이었습니다. 정자 씨는 손자를 꼭 안고 한참 동안 놓지 않았습니다.그날 밤 손자는 할머니 옆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냈습니다. 학교 친구 이야기, 좋아하는 만화 이야기, 엄마가 해 준 떡볶이 이야기까지 끝이 없었습니다. 정자 씨는 맞장구를 치며 손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습니다.잠들기 직전, 손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요즘 할머니 집이 제일 좋아요.” 정자 씨는 손자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으로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용기 내어 말해 준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손자를 영영 잃을 뻔했기 때문입니다.정자 씨는 요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손주가 할머니 집에 안 온다고 하면 섭섭해하기 전에 내 말버릇부터 돌아봐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비교하는 말이 아이 귀에는 더 크게 들리더라고요.”

손주를 향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욕심과 걱정도 함께 커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할머니의 조언보다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더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비교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엄마 아빠를 존중해 주는 할머니 곁으로 손주들은 언제든 달려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작은 깨달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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