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이 버스비 5000원씩 줬는데..” 2년 뒤 동대표가 전한 민원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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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옆집 아이가 남의 집 아이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듣는 인사 한마디, 현관문 너머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하루의 낙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의 아이에게 건네는 정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문옥순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남편과 함께 시장 어귀에서 32년 동안 떡방앗간을 했습니다. 6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방앗간을 정리했고,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 없는 아파트 1층으로 옮겨 왔습니다. 외아들은 경남 창원에서 회사에 다니며 일 년에 두어 번 다녀갑니다.
옆집에 맞벌이 부부가 이사 온 것은 3년 전 봄이었습니다. 아이 엄마 한지선 씨는 물류센터 사무실에서 새벽부터 일했고, 남편은 교대 근무를 하느라 집에 있는 날이 드물었습니다. 옥순 씨는 이사 온 날 손수 빚은 쑥떡 한 접시를 들고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엄마 뒤에 숨어 고개만 내밀던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서준이였습니다.
그해 여름방학, 옥순 씨는 복도에서 컵라면 하나를 들고 서 있는 서준이를 보았습니다. 엄마가 출근하며 놓고 간 점심값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옥순 씨는 아이를 데려와 애호박전을 부치고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습니다. 서준이는 밥 두 공기를 비우고 “할머니 밥이 제일 맛있어요” 하고 웃었습니다.
가을에는 비 오는 날 열쇠를 잃어버린 서준이가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옥순 씨는 아이를 집에 들여 젖은 머리를 말려 주고,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숙제를 함께 봐 주었습니다. 그 뒤로 서준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옥순 씨 집 초인종부터 눌렀습니다.
3학년이 되던 봄, 서준이는 아침 돌봄교실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6시 반에 집을 나서면 아이는 혼자 일어나 7시 25분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떨어진 학교에 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나가던 옥순 씨는 정류장 앞에서 울먹이는 서준이를 보았습니다. 교통카드 잔액이 모자라 버스에서 내렸다고 했습니다.
“아침은 먹었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옥순 씨는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쥐여 주었습니다. “이걸로 버스 타고, 남는 돈으로 학교 앞에서 우유랑 빵 사 먹어라.”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빈속으로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옥순 씨는 그날 저녁 지선 씨를 찾아갔습니다. “애가 아침을 굶고 다니네요. 당분간 버스비랑 우유값은 내가 챙겨 줄게요.” 지선 씨는 “어머,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금방 챙길게요”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옥순 씨는 잠깐이면 되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잠깐이 2년이 되었습니다. 옥순 씨는 매일 아침 7시 20분이면 현관을 나섰습니다. 전날 밤 오천 원짜리를 반듯하게 펴서 손수건에 싸 두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 일이었습니다. 돈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서 덜어 냈습니다. 반찬 가짓수를 줄였고, 다니던 노인 수영 강습도 그만두었습니다. 학교 가는 날만 세어도 400일 가까이,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그사이 서준이는 부쩍 키가 컸고 말수는 줄었습니다. 지선 씨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그 집 주차 자리에 새 차가 들어섰습니다. 옥순 씨는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맞벌이가 오죽 바쁘랴 싶어 생각을 접었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날에도 아침마다 아이 얼굴은 봐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10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이었습니다. 옥순 씨는 우산을 쓰고 정류장 은행나무 아래 섰습니다. 7시 23분, 서준이가 뛰어왔지만 옥순 씨가 손수건을 내밀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엄마가 이제 받지 말래요.” 아이는 땅만 내려다보다가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돌아온 옥순 씨는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인이 찍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최근 단지 안에서 모르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돈과 간식을 준다는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자녀가 모르는 어른이 주는 돈·간식을 받지 않도록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접은 우산 끝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날 오후, 같은 동 8층에 사는 동대표 박 씨가 귤 한 봉지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박 씨는 한참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그 안내문 말입니다. 옆집 서준이 엄마가 넣은 민원입니다. 노인네가 애한테 돈을 쥐여 주면서 꼬드긴다고요.”
옥순 씨는 귤 봉지를 받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 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은 3층 댁이 먼저 이상하게 여겼답니다. 서준이가 날마다 할머니한테 돈을 받으니, 애 엄마한테 용돈을 안 주느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그 엄마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할머니 탓을 한 겁니다.”
“제가 서준이한테 직접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받으니까 따로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답니다. 2년 동안 용돈을 한 푼도 못 받았대요. 이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다 압니다.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옥순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새 차를 뽑은 집 아이가 왜 늘 빈속이었는지, 지선 씨가 왜 눈을 피했는지. 고마워서 하는 침묵인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 여기는 계산이었습니다. 그 계산이 이웃에게 들키자 아이 엄마는 옥순 씨를 수상한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날 저녁, 옥순 씨는 옆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연 지선 씨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옥순 씨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애 엄마, 안내문 봤어요. 틀린 말은 없더군요. 모르는 어른이 주는 돈은 받으면 안 되지요. 그러니 내일부터 서준이 버스비랑 아침은 애 엄마가 챙기세요. 나는 오늘로 그만둡니다.” 지선 씨는 “그게 아니라…”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옥순 씨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습니다.
박 씨에게 민원을 바로잡아 달라고 따로 부탁하지는 않았습니다. 2년 동안 건넨 돈을 셈해 돌려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다음 날 아침 7시 20분, 옥순 씨는 거실 창가에 섰습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서준이가 창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옥순 씨가 손을 흔들자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돈은 끊었지만 인사까지 끊을 까닭은 없었습니다.
남의 아이에게 베푸는 정은 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그 정이 오래 이어지면 어른들 사이에 셈이 끼어들기 마련입니다. 처음 한두 번은 고마움이어도 2년이 지나면 당연한 일이 되고,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남의 눈에 띄면 쉽게 남 탓으로 바뀝니다.
이웃 아이를 돕고 싶다면 보호자와 기간과 방법을 분명히 정해 두세요. 돈보다는 따뜻한 밥 한 끼나 인사 한마디가 오해 없이 오래가는 정입니다. 그리고 정이 짐이 되는 순간이 오면, 아이를 탓하지 말고 어른끼리 조용히 정리하면 됩니다.
11월이 되자 아파트 화단의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고, 정류장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소복이 떨구었습니다. 옥순 씨는 아침마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며 등굣길 아이들을 내려다봅니다. 7시 25분, 버스에 오르기 전 창문을 향해 흔드는 작은 손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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