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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가게에 1500만원 빌려줬는데..” 25개월 뒤 친구가 건넨 떡 상자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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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은 어려운 사이입니다. 가까우면서도 끝내 남이고, 남이면서도 자식 때문에 쉽게 등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돈 사이에 돈이 오가면 약속한 날이 지나도 말 한마디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경남 통영시에 사는 하상철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항구 근처 건어물 골목에서 40년째 도매상을 하고 있습니다. 멸치와 쥐포, 마른오징어를 떼어다 식당과 반찬가게에 넘기는 일입니다. 아내 박말순 씨와 단둘이 살고, 외아들 준영이는 창원에서 회사에 다니며 며느리 지은이, 일곱 살 손자와 함께 지냅니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인 문옥자 씨는 김해에 삽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식당 주방 일로 딸 하나를 키운 사람이었습니다. 상견례 날 옥자 씨는 직접 담근 갓김치 한 통을 들고 와 “솜씨가 이것밖에 없어서요” 하며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상철 씨는 그 투박한 정이 좋았습니다.

그 뒤로 상철 씨는 명절마다 사돈댁에 국물용 멸치를 한 상자씩 부쳤습니다. 손자 돌잔치 때는 옥자 씨가 새벽부터 돼지뼈를 고아 손님상에 국밥을 냈습니다. 손님들이 국물이 진하다며 한 그릇씩 더 청하자 상철 씨가 말했습니다. “사돈, 이 솜씨면 가게를 내셔도 되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재작년 가을, 옥자 씨가 딸과 함께 통영까지 찾아왔습니다. 김해 시내에 국밥집 자리가 났는데 보증금과 집기 값이 1,500만 원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사돈어른, 염치없는 줄 압니다. 한 달에 60만 원씩, 25개월이면 다 갚겠습니다.” 옆에 앉은 며느리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버님, 엄마가 평생 남의 주방에서만 일했어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상철 씨는 마침 만기가 된 정기적금을 깼습니다. 낡은 냉동창고 설비를 바꾸려고 5년 동안 가게 수입에서 다달이 떼어 모은 돈이었습니다.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사돈이라도 돈은 돈이에요. 종이 한 장은 써 둡시다.” 상철 씨는 민망했지만 차용증을 썼고, 옥자 씨는 갚을 날짜를 적은 뒤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처음 석 달은 말일마다 60만 원씩 꼬박꼬박 들어왔습니다. 넉 달째부터는 통장이 조용해졌습니다. 상철 씨가 조심스레 전화를 걸자 옥자 씨는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사돈, 장사가 영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며느리도 명절에 내려와 “엄마 가게에 손님이 없대요”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상철 씨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사돈을 다그치는 시아버지로 보이기 싫었고, 며느리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사이 냉동창고 압축기가 한여름에 멈춰 섰습니다. 상철 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수리비를 냈습니다. 밤에 장부를 정리하다 보면 사돈에게 묶인 1,320만 원이 자꾸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리고 이달, 약속한 25개월이 꼭 차던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골목의 비닐 천막은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점심 무렵 김해에서 수산물 납품을 하는 오랜 친구 정만수 씨가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보자기에 싼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상철이, 떡 좀 가져왔다. 어제 거래처 개업식에 갔더니 하도 많이 싸 줘서.” 보자기를 풀자 꿀떡과 시루떡이 가지런히 담긴 상자가 나왔습니다. 뚜껑에는 금박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문가네 돼지국밥 2호점 개업 — 장유점’.

상철 씨는 스티커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문가네. 사돈이 낸 가게 이름이었습니다.

“만수야, 이 집 어떤 집이냐.” “왜, 아는 집이야? 김해서 요새 제일 잘나가는 국밥집이지. 점심때 가면 번호표 받고 삼십 분은 서. 1호점이 하도 잘돼서 2년 만에 하나 더 냈다더라.”

상철 씨는 떡 상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장사가 안 돼 60만 원도 못 보낸다던 가게였습니다. 자신이 대출 이자를 내는 사이, 사돈은 2호점 보증금을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순 씨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이번엔 그냥 넘기지 마세요.”

그날 저녁 상철 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은 한참 머뭇거리다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 지은이가 장모님한테 시댁 돈은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했대요. 아버지가 넉넉하시니 괜찮을 거라고요.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수화기 너머로 며느리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님, 죄송해요. 엄마한테 2호점이 너무 중요해 보여서….”

이틀 뒤 상철 씨는 서랍 깊숙이 넣어 둔 차용증을 챙겨 김해행 버스를 탔습니다. 1호점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이 가득했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옥자 씨가 상철 씨를 보고 얼굴이 굳었습니다.

두 사람은 구석 자리에 마주 앉았습니다. 상철 씨는 차용증을 식탁 위에 펼쳤습니다. “사돈, 장사가 잘되니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25개월이 지났습니다. 남은 돈이 1,320만 원입니다.” 옥자 씨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은이가 사돈댁은 급하지 않다고 해서… 제가 염치가 없었습니다.”

“며느리가 제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사이 대출을 받았습니다. 오늘 갚을 날짜를 정해 주십시오.” 옥자 씨는 차용증 뒷면에 직접 적었습니다. 이달 말일에 700만 원, 다음 달 말일에 620만 원. 그 아래에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상철 씨는 일어서며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이 돈이 다 들어오면 사돈 사이 돈거래는 이걸로 끝입니다. 앞으로는 명절에 멸치 한 상자, 국밥 한 그릇 오가는 사이로만 지냅시다.” 옥자 씨는 문 앞까지 따라 나와 허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두 번의 약속 날짜에 돈은 어김없이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돈이 들어온 날 상철 씨는 차용증을 반으로 찢었습니다. 며느리에게는 짧게 말했습니다. “지은아, 친정을 돕고 싶은 마음은 안다. 그래도 내 지갑 사정을 네가 대신 정하면 안 된다.” 며느리는 울먹이며 “명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폴로니어스는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라고 당부합니다. 빌려준 돈은 돈과 친구를 함께 잃게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돈 사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가족 사이 돈거래일수록 종이에 남기고, 날짜가 지나면 미루지 말고 직접 물어야 합니다. 중간에서 말을 전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말이 내 뜻과 같은지 한 번은 확인해 보세요. 돈 이야기를 분명히 끝내야 정이 오래 남습니다.

첫눈 소식이 들려오던 날, 상철 씨는 아내와 함께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걸었습니다. 겨울 바다는 잔잔했고, 작은 섬들 사이로 고깃배 몇 척이 하얀 물길을 그으며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상철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그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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