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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에게 제사비 200만원 보냈는데..” 이듬해 형수가 남긴 제기함 쪽지에 주저앉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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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가 먼저 떠나면 그 집의 제사는 맏며느리 몫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동생들은 돈으로 그 짐을 나눠 지려 하고, 그 돈이 오가는 사이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보면 그 돈에는 말로 다 못 한 마음이 고여 있곤 합니다.

충남 공주에 사는 윤기철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공주 구도심 골목에서 42년째 이발소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 정숙 씨와의 사이에 딸 둘과 늦둥이 막내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딸들은 일찍 시집을 갔고, 서른넷인 막내 준호는 대전의 한 물류 회사에 다닙니다.

기철 씨는 삼 형제 중 둘째입니다. 큰형 기만 씨는 부여 시골 본가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26년 전 마흔일곱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부모님 제사는 형수 박영순 씨가 혼자 모셨습니다.

형수는 기철 씨가 열아홉 살 때 시집을 왔습니다. 이발 기술을 배우겠다고 서울로 올라가던 날, 형수는 새벽에 일어나 주먹밥 여섯 개를 싸 주며 말했습니다. “도련님, 배곯지 말고 기술 꼭 배워 와요.” 첫 이발소를 열 때는 시집올 때 해 온 은수저 한 벌을 팔아 의자 값에 보태 주기도 했습니다.

형님 장례를 치른 이듬해 정월, 기철 씨는 형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20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형수님, 형님 대신 제가 제사비를 대겠습니다. 형수님은 상만 차려 주세요.” 형수는 한참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어요. 허투루 안 쓸게요.”

그해부터 기철 씨는 이발소 수입에서 매달 17만 원씩 따로 떼어 적금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정월이면 그 돈을 형수에게 보냈습니다. 아버지 기일, 어머니 기일, 설과 추석 차례까지 일 년에 네 번 상을 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25년, 모두 5,000만 원이었습니다.

그사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미용실로 가고, 동네 어르신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루 스무 명 넘던 손님이 대여섯 명으로 줄었습니다. 재작년에는 타던 승합차를 팔았고, 지난해 정월에는 보험약관대출을 받아 200만 원을 맞췄습니다. 아내에게만 털어놓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추석, 차례상을 물린 뒤 형수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도련님, 이제 제사 그만 지냅시다. 나도 기운이 없어요. 내년부터는 돈 보내지 마세요.”

기철 씨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형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부모님 제사를 어떻게 접습니까.” 형수는 대답 없이 그릇만 포갰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철 씨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25년 동안 보낸 돈이 다 무엇이었나 싶었습니다. 그 뒤로 형수의 전화가 와도 짧게 받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올가을, 형수가 대전 딸네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시골집을 지키기에는 허리가 너무 상했다고 했습니다. 기철 씨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이삿짐 정리를 도우러 부여로 내려갔습니다.

이삿날 아침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마당의 감나무 아래 떨어진 감이 비에 젖어 붉게 번져 있었습니다. 기철 씨는 마루에 앉아 제기를 신문지에 하나씩 싸 담았습니다. 놋그릇과 목기를 모두 꺼내자 오동나무 제기함 바닥에 누런 서류 봉투 하나가 보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통장 하나와 손때 묻은 공책, 접힌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책에는 해마다 장 본 내역이 꼼꼼히 적혀 있었습니다. 조기 두 마리 3만 원, 밤 대추 1만 2천 원, 탕국 거리 8천 원. 해마다 끝 줄에는 ‘남은 돈 통장에 넣음’이라는 글씨가 있었습니다. 통장 잔액은 2,140만 원이었습니다.

쪽지를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련님 막내 장가가는 데 보태세요. 형님이 살아 있었으면 이렇게 했을 거예요.’

기철 씨는 마루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부엌에서 나오던 형수가 그 모습을 보고 행주를 내려놓았습니다.

“형수님, 이게 다 뭡니까.”

형수는 기철 씨 옆에 앉아 젖은 마당을 내다보았습니다. “도련님이 보낸 돈, 나 혼자 다 쓸 수가 없었어요. 제사상은 형편대로 차려도 되잖아요. 시장에서 덜 좋은 거 사고, 전은 내가 다 부치고. 그렇게 아껴서 남은 건 손 안 대고 모았어요.”

형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습니다. “재작년 겨울에 공주 장에 갔다가 이발소 앞을 지나갔어요. 오후 세 시인데 불이 꺼져 있더라고요. 그 뒤에 동서한테 들었어요. 대출받아서 제사비 보냈다는 거. 그 말 듣고 밤새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제사 그만하자고 하신 겁니까.”

“내가 그만한다고 해야 도련님이 돈을 안 보낼 것 같았어요. 서운해할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준호 장가갈 때 이 돈 쓰세요. 부모님도 그게 더 기쁘실 거예요.”

기철 씨는 통장을 쥔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형수의 전화를 퉁명스럽게 끊던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형수님, 제가 속도 모르고 일 년 내내 서운해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수는 기철 씨의 손등을 가만히 두드렸습니다. “서운할 만했지요. 도련님은 25년을 한 번도 안 거르고 보냈잖아요. 그 정성 덕에 내가 이 집을 지켰어요.”

그날 저녁 기철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기일을 하나로 합쳐 일 년에 한 번만 공주 집에서 모시고, 상은 두 집이 반씩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통장의 돈은 준호의 신혼집 보증금에 보태되, 내년 봄 결혼식 날 혼주석에는 형수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준호는 그 자리에서 큰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울먹였습니다.

돈을 보내는 사람은 자신의 정성만 기억하고, 받는 사람의 속사정은 잘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받는 사람도 보내는 이의 형편을 헤아리느라 말을 아끼곤 합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오히려 오해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 사이에 서운한 말이 오가면 그 말 뒤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제사도 돈도 결국 남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형편이 바뀌면 방식도 함께 바꿔 가는 것이 오래 이어 가는 길입니다.

이삿짐을 모두 보낸 다음 주, 기철 씨 부부는 형수를 모시고 부여 부소산성에 올랐습니다. 산길에는 단풍이 붉게 내려앉아 있었고, 굽이진 백마강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강물이 어둑해질 때까지 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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