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쌀값 매달 30만원 보냈는데..” 3년 뒤 친구가 두고 간 장바구니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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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친구는 가족만큼 귀합니다. 젊은 날의 고생을 함께 기억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어렵다고 하면 사정을 따져 묻기 전에 먼저 지갑을 열게 됩니다.
경남 진주시에 사는 오금순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진주 시내 전통시장 골목에서 28년째 옷 수선집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를 몰던 남편은 재작년 운전대를 놓고 집안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외아들은 창원에서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금순 씨에게는 25년 지기 친구 문정애 씨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무렵 같은 동네 연립주택으로 이사 왔고, 아이들이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가까워졌습니다. 정애 씨 남편은 시장 입구에서 철물점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어려울 때 곁을 지켰습니다. 금순 씨 남편이 빗길 교통사고로 두 달 동안 입원했을 때, 정애 씨는 매일 저녁 반찬 통을 들고 와서 아이들 밥을 챙겼습니다. 수선집을 처음 열고 손님이 없어 애태울 때는 동네 사람들 바짓단이며 교복을 한 보따리씩 모아 왔습니다. “금순아, 니 바느질 솜씨면 금방 소문난다.” 그 말이 금순 씨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3년 전 늦가을, 수선집 문을 닫을 무렵 정애 씨가 찾아왔습니다. 눈가가 벌겠습니다. “금순아, 철물점 문 닫았다. 큰 공구상이 들어오니 버틸 수가 있나. 빚 갚고 나니 쌀 살 돈도 없다.”
금순 씨는 재봉틀 앞에서 한참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약속했습니다. “형편 풀릴 때까지 내가 매달 30만원씩 보내 줄게. 갚을 생각 말고 밥은 굶지 마라.”
30만원은 금순 씨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달에도 수선집 수입은 200만원 남짓이었습니다. 금순 씨는 손주 대학 갈 때 보태려고 붓던 적금을 줄였고, 매달 25일 정애 씨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걸었습니다. 남편은 “당신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정애 씨한테 신세 진 게 어디 한두 번이가”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보낸 돈은 1,08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사이 금순 씨가 고개를 갸웃한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정애 씨가 새 털 코트를 맡기며 소매를 줄여 달라고 했을 때, “딸이 사 줬다”는 말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철물점 자리에 간판만 바뀐 채 셔터가 여전히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때도 가게를 남한테 넘겼겠거니 했습니다. 오히려 친구를 의심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11월 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다리미 김이 자욱했고 라디오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왔습니다. 정애 씨가 우산을 털며 들어와 남편 바지 두 벌의 단을 줄여 달라고 했습니다. 한참 수다를 떨던 정애 씨는 전화를 받더니 “금방 올게” 하고 급히 나갔습니다. 의자 옆에는 정애 씨의 장바구니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비가 들이칠까 싶어 장바구니를 안쪽으로 옮기던 금순 씨의 손이 멈췄습니다. 대파와 무 사이로 은행 봉투 하나가 비죽 나와 있었습니다. 젖은 봉투 입구가 벌어져 안내문의 굵은 글씨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적금 만기 안내. 월 납입액 300,000원, 납입 횟수 36회, 만기일 11월 25일.’
금순 씨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30만원에 36회. 자신이 보낸 돈과 똑같은 액수, 똑같은 기간이었습니다. 첫 납입일은 자동이체를 시작한 바로 그달이었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건너편 떡집 주인이 시루떡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장바구니를 보더니 웃었습니다. “정애 씨 왔다 갔는갑네. 요새 신났다 아이가. 이달에 적금 타서 서울 딸 아파트 계약금 보탠다고 시장에 소문을 다 내고 다닌다.”
금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철물점은… 망한 거 아니었어요?”
“망하기는. 아들한테 물려준 기라. 아저씨는 뒷방에서 계산만 봐 주고, 간판만 아들 이름으로 바꿨제.”
떡집 주인이 나간 뒤 금순 씨는 재봉틀 앞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밤늦도록 바짓단을 꿰매며 모은 돈이었습니다. 손주 적금을 줄여 가며 보낸 돈이 고스란히 친구의 적금이 되어 남의 집 아파트 계약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삼십 분쯤 지나 정애 씨가 헐레벌떡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장바구니 놔두고 갔네.” 금순 씨는 은행 봉투를 장바구니 맨 위에 올려 건넸습니다. “정애야, 이거 보고 놀랐다. 철물점은 아들이 하고 있다며.”
정애 씨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그게… 아들한테 넘기고 나니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게 없어서 그랬지. 너도 형편 괜찮잖아. 그 돈 나중에 다 갚으려고 모아 둔 거다.”
“갚으려고 모은 돈이 왜 딸 아파트 계약금이 되는데.” 금순 씨의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나는 니가 쌀이 없다 캐서 보냈다. 손주 적금 줄여 가며 보냈다.”
정애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금순 씨는 은행에 들러 자동이체를 해지했습니다. 그리고 정애 씨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동안 보낸 돈은 돌려받지 않을게. 25년 동안 니가 나한테 해 준 것도 있으니까. 대신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하자.’ 정애 씨에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지만 금순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맡기고 간 바지 두 벌은 단을 깔끔하게 줄여 떡집 주인 편에 보냈습니다.
남편은 이야기를 다 듣고 말했습니다. “잘했다. 돈 잃은 건 아깝지만, 사람 하나 제대로 본 값이라 생각하자.” 금순 씨는 그날 밤 줄였던 손주 적금을 원래 금액으로 되돌렸습니다.
어려운 친구를 돕는 마음은 귀합니다. 그러나 정이 깊을수록 사정을 묻지 않게 되고, 묻지 않는 사이에 도움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도움이 오래 이어진다면 한 번쯤은 형편이 어떤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담담하게 물어보세요.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일입니다.
관계를 끝낼 때는 큰소리 없이 끝내도 괜찮습니다. 돌려받지 못할 돈을 붙잡고 원망하기보다 내 생활과 내 가족을 다시 챙기는 편이 오래 남는 지혜입니다.
11월 마지막 주말, 금순 씨는 남편과 함께 남강 둔치를 걸었습니다. 강바람에 플라타너스 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멀리 촉석루 처마 끝에 저녁 햇살이 걸려 있었습니다. 금순 씨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며 오래도록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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