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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네 김장 김치 보냈는데..” 사흘 뒤 경비원이 건넨 한마디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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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되면 엄마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배추부터 셉니다. 자식들 냉장고에 엄마 김치가 들어 있어야 한겨울이 놓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정성이 받는 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엄마들은 좀처럼 알지 못합니다.

권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충청도 들녘 마을에서 마흔 해 넘게 살림을 해 온 주부입니다. 남편은 35년 동안 시외버스를 몰다 퇴직했고, 지금은 집 뒤 텃밭을 함께 돌봅니다. 슬하에 큰아들과 딸 하나, 막내아들을 두었고 셋 다 결혼해 도시에서 삽니다.

권 씨가 혼자 김장을 맡은 지 올해로 스무 해째입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해부터였습니다. 해마다 배추 100포기를 사서 마당 고무통에 절이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 한 번 뒤집었습니다. 고춧가루는 여름내 텃밭에서 딴 고추를 지붕 위에 말려 직접 빻았습니다.

김치를 다 버무리면 권 씨는 통마다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매직으로 자식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습니다. 남편이 “통 색깔만 달리해도 알아보지” 하고 웃으면, 권 씨는 “이름이 붙어 있어야 엄마가 따로 챙긴 줄 알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큰아들은 유난히 엄마 김치를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중학생 때는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볶음만 싸 달라고 졸랐고, 군대에 가서는 첫 편지에 “엄마 김치에 라면 먹고 싶다”고 적어 보냈습니다. 권 씨는 그 편지를 지금도 안방 서랍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결혼하던 해, 권 씨는 처음으로 며느리 몫까지 생각해 김치 세 통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김치 너무 맛있어. 집사람도 잘 먹어.” 그 뒤로 해마다 김치를 보내면 사흘 안에 꼭 같은 문자가 왔습니다. 권 씨는 그 문자를 받아야 그해 김장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 무릎이 시원찮아졌습니다. 배추를 나르다 주저앉은 적도 있었습니다. 딸은 “엄마, 이제 사 먹어도 돼” 하고 말렸지만, 권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큰애가 엄마 김치 아니면 안 먹는다잖니.”

올해도 권 씨는 배추 100포기를 절였습니다. 큰아들네 네 통, 딸네 세 통, 막내네 세 통을 택배로 부쳤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이상하게 큰아들의 문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권 씨는 손녀가 좋아하는 장조림과 깻잎장아찌, 멸치볶음을 싸서 아침 버스를 탔습니다. 연락 없이 가서 놀래 줄 생각이었습니다. 수도권 신도시에 있는 큰아들의 아파트에 닿았을 때, 하늘은 잔뜩 흐렸고 찬바람에 은행잎이 길바닥으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 분리수거장 앞을 지나던 권 씨의 걸음이 멈췄습니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낯익은 김치통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뚜껑 위 종이테이프에는 권 씨가 매직으로 꾹꾹 눌러 쓴 큰아들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들어 보니 묵직했습니다. 뚜껑 한 번 열지 않은 통이었습니다.

권 씨가 통을 붙들고 서 있자, 낙엽을 쓸던 경비원 최 씨가 다가왔습니다.

“아이고, 그 통 주인을 아세요? 그 집은 해마다 이맘때면 김치를 통째로 내놔요. 아까워서 제가 몇 번 얻어다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어느 집 어른이 담그신 건지 늘 궁금했습니다.”

권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해마다라고 했습니다. 손에 든 반찬 보따리가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권 씨는 김치통 하나를 끌어안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며느리가 문을 열었다가 시어머니 품의 김치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어머님, 연락도 없이…….”

“얘야, 이게 왜 저 밑에 있니.”

며느리는 한참 입술을 깨물다 말했습니다. “어머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요즘 누가 집 김치 먹어요. 저희는 맞벌이라 밥을 거의 밖에서 먹고, 냉장고 자리도 없어요. 애 아빠한테 말씀드리라고 몇 번이나 했어요.”

열린 냉장고 안에는 마트에서 산 포장 김치 두 봉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퇴근한 큰아들은 거실에 놓인 김치통을 보고 그 자리에 섰습니다. 권 씨가 물었습니다. “너, 알고 있었니?”

큰아들은 고개를 떨궜습니다. “알았어. 엄마 서운할까 봐 그랬어. 엄마가 그거 담그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니까, 차마 그만 보내라는 말을 못 했어.”

“그래서 해마다 맛있다고 문자를 보냈구나.”

권 씨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김치를 버린 며느리보다, 버려지는 줄 알면서 맛있다고 적어 보낸 아들의 문자가 더 아팠습니다.

그날 밤 권 씨는 김치통 네 개를 택시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통을 마루로 옮겨 주었습니다.

이튿날 권 씨는 세 자식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년부터 김장은 먹을 사람만 와서 같이 담근다. 몇 포기가 필요한지 너희가 말해라. 말 안 하는 집은 안 보낸다.”

큰아들에게는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앞으로 엄마한테 맛있다는 문자 보내지 마라. 엄마는 거짓 고맙다는 말보다, 필요 없다는 솔직한 말이 백 배 낫다. 그게 엄마 허리 아끼는 길이다.”

돌려받은 김치 네 통 가운데 두 통은 마을 경로당에 가져갔고, 한 통은 아파트 경비원 최 씨에게 부쳤습니다. 마지막 한 통은 권 씨 부부가 겨우내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로 했습니다.

보름쯤 지나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내년 김장 때 나도 갈게. 우리 집은 다섯 포기면 돼. 그건 진짜 먹을게.” 권 씨는 처음으로 그 말이 믿겼습니다.

정성은 받는 사람이 원할 때 정성이 됩니다. 원하지 않는 정성을 해마다 밀어 넣으면, 받는 쪽은 버릴 수밖에 없고 주는 쪽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몸만 상합니다. 자식에게 줄 것이 있다면 먼저 물어보세요. 필요하냐고, 얼마나 필요하냐고.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마음 다칠까 봐 하는 거짓 인사는 효도가 아닙니다. 서운한 말이라도 솔직하게 건네는 것이 부모의 노년을 지키는 일입니다.

올해 첫눈이 내리던 날, 권 씨는 남편과 마당 장독대 앞에 섰습니다. 텅 빈 고무통 위로 눈발이 소복이 내려앉았고, 처마 밑에는 내년 김장에 쓸 마늘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남편이 권 씨의 언 손을 주머니에 넣어 주며 말했습니다. “올해는 당신 허리가 좀 쉬겠구려.” 권 씨는 웃으며 눈 내리는 들판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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