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병원비 5000만원 보냈는데..” 은행 직원이 건넨 내역서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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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쓰러지면 형제 사이에도 저마다 맡는 몫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곁을 지키고, 누군가는 돈을 보냅니다. 서로 믿고 맡긴 일이라 굳이 따져 묻지 않지만, 부모가 떠나고 나면 그동안 덮어 두었던 셈이 한꺼번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임 씨는 올해 쉰여섯입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한 지 스물두 해째입니다. 아침 여덟 시면 지점에 나가 조회를 하고, 오후 내내 고객의 집과 가게를 돌며 계약서를 챙겼습니다. 하루에 만 보를 넘게 걷는 날이 많아 구두 굽이 석 달을 못 갔습니다. 남편은 화물차를 몰았고, 슬하에는 직장에 다니는 딸과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임 씨의 친정은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마을 우체국에서 서른 해 동안 집배원으로 일했습니다. 빨간 자전거에 우편 가방을 싣고 고개를 넘던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면 젖은 편지를 아랫목에 펴 말린 뒤에야 배달을 나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임 씨가 스무 살 되던 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임 씨는 다섯 살 아래 남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교복을 다렸습니다. 남동생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상을 받던 날, 아버지 대신 꽃다발을 들고 간 사람도 누나였습니다. 그날 남동생은 누나 목에 꽃다발을 걸어 주며 말했습니다. “누나가 우리 집 엄마다.”
4년 전 봄, 아버지가 마당에서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이었습니다.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몸을 쓰지 못해 읍내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고향 가까이 사는 남동생이 아버지의 통장과 도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남동생이 말했습니다. “누나, 병원비가 한 달에 백오십은 넘게 나온대. 아버지 연금으로는 턱도 없어. 누나가 좀 보태 줘. 내가 통장 관리하면서 영수증 다 챙겨 놓을게.”
임 씨는 그날 바로 이백만 원을 아버지 통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매달 25일에 백만 원씩 자동이체를 걸었습니다. 고객이 보험을 해지해 받은 수당을 도로 물어내야 하는 달에도, 남편의 화물차 할부가 밀린 달에도 이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딸 결혼 자금으로 붓던 적금을 깨서 메운 달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보낸 돈이 모두 5천만 원이었습니다.
임 씨는 주말마다 요양병원에 갔습니다. 아버지의 손톱을 깎고 굳은 오른손을 주물렀습니다. 같은 병실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던 고향 이웃 최 씨가 어느 날 넌지시 말했습니다. “동생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더라. 와도 원무과에만 들렀다 가고.” 임 씨는 동생이 장사하느라 바빠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영수증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 씨가 한두 번 물으면 남동생은 “누나는 날 못 믿어?” 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남매가 다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임 씨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지난여름, 아버지는 잠든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석 달이 지난 10월 초, 남매는 유산을 정리하러 읍내 은행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남은 것은 시골집 한 채와 밭 몇 마지기, 그리고 통장 하나였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임 씨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사망 서류를 넣은 봉투를 품에 안고 은행 문을 밀었습니다. 남동생은 약속보다 30분 늦게 우산을 털며 들어왔습니다.
창구 직원은 상속인 확인을 마치고 아버지 통장의 4년 치 거래내역서를 뽑아 건넸습니다. 열 장이 넘는 종이였습니다. 임 씨는 습관처럼 볼펜을 꺼내 한 줄씩 짚어 내려갔습니다. 고객 계약서를 읽을 때 생긴 손버릇이었습니다.
매달 25일, 임 씨 이름으로 백만 원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똑같은 금액이 빠져나간 기록이 붙어 있었습니다. 받는 사람은 남동생이었습니다.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 이백만 원까지 마흔아홉 번, 한 번도 빠짐이 없었습니다.
요양병원비는 매달 아버지 연금이 들어온 다음 날 빠져나갔습니다. 연금은 병원비를 내고도 조금씩 남았습니다. 동생이 말한 ‘턱도 없다’는 병원비는 처음부터 아버지 연금만으로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임 씨가 종이를 내밀자 남동생은 시선을 피하다 이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 그리고 누나는 출가외인이잖아. 집이랑 밭은 원래 아들 몫이야. 이제 와서 돈 얘기 꺼내면 정 없는 거지.”
임 씨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봉투에 넣었습니다. “말을 못 하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정 없는 건 누나가 아니라 네가 4년 동안 한 일이다.”
집에 돌아온 임 씨는 남편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그 돈 때문에 적금 깨던 거 내가 다 봤소.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마요.”
임 씨는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아 보았습니다. 아들과 딸의 상속분은 똑같고,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법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생전에 아버지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도 유산을 나눌 때 따져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임 씨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과 밭은 반씩 나눈다. 네가 가져간 5천만 원은 네 몫에서 먼저 뺀다. 이 주 안에 답이 없으면 법원에 유산 분할을 청구하겠다. 아버지 앞에서 싸우기 싫어 4년을 참았다. 이제는 더 참을 이유가 없다.”
닷새 뒤,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동생이 그 돈을 장사 빚 막는 데 썼고, 올케도 이번에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형님, 아버님 병원비를 형님이 대신 내 주시는 줄로만 알았어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열흘 뒤, 남동생은 누나가 내민 분할 협의서에 말없이 도장을 찍었습니다.
임 씨는 받은 돈으로 아버지 산소에 작은 비석을 세웠습니다. 남은 돈은 깨 버렸던 딸의 결혼 적금 통장에 다시 넣었습니다.
『흥부전』의 놀부는 부모가 남긴 재산을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혼자 차지합니다. 옛이야기 속 욕심은 오늘날에도 ‘아들 몫’, ‘출가외인’ 같은 말로 이름만 바꾸어 나타납니다. 가족이라서 묻지 않은 셈은, 가족이라서 더 크게 곪기도 합니다.
부모를 위해 형제에게 돈을 보낸다면 처음부터 쓰임을 분명히 해 두세요. 영수증을 챙기는 것은 형제를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형제 사이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 몫을 바로잡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것은 부모가 남긴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늦가을, 임 씨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 산소에 올랐습니다. 산길 아래 마을 어귀에는 아버지가 수없이 편지를 꺼내던 빨간 우체통이 그대로 서 있었고, 산소 옆 감나무에는 붉은 감 몇 알이 남아 있었습니다. 임 씨는 새 비석에 묻은 낙엽을 손으로 쓸어 내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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