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간병비 1억2000만원 냈는데..” 법무사 사무실에서 드러난 큰오빠 부부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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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프면 자식들 사이의 셈도 함께 시작됩니다. 누가 더 자주 찾아가는지, 누가 병원비를 얼마나 내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그 셈은 형제들 마음속에 하나씩 쌓입니다. 그리고 그 장부는 대개 부모가 떠난 뒤 한꺼번에 펼쳐집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서 26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시내버스를 몰다 몇 해 전 정년퇴직했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살림을 꾸렸습니다. 황 씨는 삼 남매의 막내입니다. 큰오빠는 친정 근처에서 철물점을 했고, 둘째 언니는 남편을 따라 먼 지방으로 내려가 넉넉지 않게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황 씨는 어머니의 손을 가장 많이 탄 자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읍내 시장에서 국수를 말아 삼 남매를 키웠습니다. 황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어머니는 국숫집 앞치마를 두른 채 교문 앞까지 뛰어와 쑥떡 한 봉지를 쥐여 주었습니다. “우리 막내가 이제 다 컸네.” 그 말을 황 씨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큰아들을 늘 먼저 챙겼습니다. 큰오빠가 철물점을 차릴 때는 시장 자리 권리금을 털어 보탰고, 큰오빠가 결혼할 때는 반지와 목걸이를 다 내주었습니다. 황 씨는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이 그 시절 어머니들의 방식이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6년 전 봄, 어머니가 집 앞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 뒤로 기억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혼자 지내시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이 병원 휴게실에 모였습니다.
“요즘 철물점이 영 안 된다. 나는 한 푼도 보탤 형편이 못 돼.” 큰오빠가 먼저 말을 꺼냈고, 올케는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둘째 언니는 전화로 울기만 했습니다. 황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요양병원은 내가 알아볼게. 돈도 내가 할게.”
요양병원비와 간병비를 합치면 매달 200만 원이었습니다. 황 씨는 노후를 위해 붓던 연금보험 납입을 줄였고, 고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주말에도 상담 약속을 잡았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버스 기사 퇴직금 일부를 아내 통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장모님 일인데 당신 혼자 짊어지지 마.”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황 씨가 낸 돈은 1억2000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큰오빠 부부가 병원에 온 것은 명절 때 몇 번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정신이 유난히 흐리던 3년 전 겨울, 어머니가 황 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린 것입니다. “너는 왜 엄마 돈에 손을 대니.” 황 씨는 영문을 몰라 병원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다행히 그 뒤 약을 바꾸고 상태가 나아지면서 어머니는 다시 막내를 반겼고, 황 씨도 그 일을 병 탓으로 묻어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난봄 벚꽃이 질 무렵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6개월이 지난 가을, 큰오빠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 명의 아파트를 정리해야 하니 법무사 사무실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시장 옆 3층 건물에 있는 법무사 오 씨의 사무실에는 낡은 선풍기와 서류 상자가 가득했습니다. 큰오빠와 올케는 먼저 와서 소파에 앉아 있었고, 둘째 언니는 버스를 갈아타고 오느라 얼굴이 젖어 있었습니다.
큰오빠가 가방에서 누런 봉투를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습니다. 안에는 삐뚤삐뚤한 어머니의 글씨로 쓴 유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날짜와 주소, 이름과 도장까지 갖춘 자필 유언장이었습니다.
[아파트는 장남에게 준다.]
“엄마 뜻이 이렇다. 시세로 4억쯤 될 거다. 너희도 섭섭하겠지만 엄마 뜻이니 따르자.” 큰오빠의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올케가 거들었습니다. “아가씨가 병원비 낸 건 고맙지요. 그래도 어머님이 정신 있을 때 쓰신 거니까요.”
황 씨는 날짜를 보고 숨을 삼켰습니다. 3년 전 겨울,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고개를 돌리던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법무사 오 씨가 안경을 고쳐 쓰며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실은 어머님께서 따로 맡겨 두신 게 있습니다.” 그가 꺼낸 것은 공증사무소 도장이 찍힌 공정증서 유언 정본이었습니다. 날짜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넉 달 전이었습니다.
“어머님이 혼자 택시를 타고 여기 오셨습니다. 제가 공증사무소에 같이 가서 증인 두 분을 세우고 유언을 남기셨지요. 담당 의사 선생님의 판단능력 소견서도 받아 두셨고요. 법적으로 앞의 유언과 내용이 어긋나면 날짜가 늦은 유언이 효력을 갖습니다.”
오 씨가 유언 내용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아파트는 막내딸에게 준다. 막내가 5년 동안 병원비를 혼자 감당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이 이어졌습니다.
[큰아들 내외가 막내가 내 돈을 빼돌린다고 하여 내가 그 말을 믿고 유언장을 쓴 일이 있다. 정신이 든 뒤 통장을 떼어 보니 막내는 내 돈에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 앞의 유언장은 내 뜻이 아니다.]
사무실 안이 얼어붙었습니다. 올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큰오빠는 탁자 모서리만 내려다보았습니다. 둘째 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오빠,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 정신없을 때 막내를 도둑으로 몰았어?”
큰오빠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올케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가게 빚이 너무 많아서… 아파트만 있으면 숨이 트일 것 같았어요.”
황 씨는 그제야 3년 전 그 겨울 어머니가 했던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흐린 정신으로 아들의 거짓말을 믿었고, 맑은 정신이 돌아오자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그 거짓말을 바로잡으러 왔던 것입니다. 막내에게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황 씨는 오래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파트를 팔아 자신이 낸 병원비만큼만 받고, 남은 돈은 둘째 언니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큰오빠 몫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빠,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 엄마가 마지막에 바로잡으려던 걸 나까지 흐리면 안 되잖아.”
부모를 모시는 일에는 계산서가 따라붙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수고를 거짓으로 덮으려 할 때, 진실은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다가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말없이 지켜본 사람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은 마지막까지 자식을 헤아립니다. 흐려졌다가도 다시 맑아진 그 짧은 틈에, 부모는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남겨 둡니다.
지난주 황 씨는 어머니가 국수를 말던 시장 골목을 걸었습니다. 국숫집 자리에는 작은 떡집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황 씨는 쑥떡 한 봉지를 사서 어머니 산소로 향했습니다. 산자락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늦가을 햇살이 봉분 위로 따뜻하게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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