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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약값 매달 30만원 보냈는데..” 장례 석 달 뒤 남편이 내민 서류 한 장에 결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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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말하지 못하는 돈이 있습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주려고, 집안에 괜한 말이 나지 않게 하려고 조용히 건네는 돈입니다. 그런 돈은 대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세월에 묻힙니다. 그러다 어느 날 종이 한 장이 그 세월을 통째로 들춰내기도 합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서 18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댁을 찾아가 씻겨 드리고 끼니를 챙기는 방문요양 일입니다. 남편은 시내버스를 몰다 몇 해 전 정년퇴직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서울에서 삽니다.

시댁은 차로 사십 분 거리의 시골 마을입니다. 시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시어머니는 혼자 고추 농사를 지으며 사셨습니다. 시동생은 같은 마을에 살면서 이런저런 장사를 벌였다 접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시집오던 해 겨울, 시어머니는 서툰 맏며느리에게 김장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서 씨가 배추 절일 소금 양을 못 맞춰 쩔쩔매자 시어머니는 웃었습니다. “처음엔 다 짜게 한다. 내년엔 잘할 거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와서 사흘 동안 미역국을 끓여 주고 갔습니다. 서 씨에게 시어머니는 어려운 어른이기 전에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18년 전 봄, 남편이 다니던 버스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이 몇 달씩 밀렸습니다. 남편은 “어머니는 동생이 옆에서 챙기니까 우리는 당분간 명절에나 인사드리자”고 했습니다. 그 무렵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릎 때문에 병원에 다니는데 혈압약까지 더해지니 약값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서 씨는 그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은 날 시댁에 들러 시어머니 손에 통장 하나를 쥐여 드렸습니다. “어머니, 매달 25일에 30만 원씩 넣어 드릴게요. 약값하고 용돈으로 쓰세요.” 시어머니는 한참 동안 통장을 내려다보다가 말했습니다. “애비한테는 말하지 마라. 제 앞가림도 못 한다고 속상해할 거다.”

그 뒤로 18년 동안 매달 25일이면 30만 원이 시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허리를 다쳐 한 달을 쉰 해에도, 아이들 등록금이 겹친 해에도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어르신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천 원 한 장을 더 아껴 가며 마련한 돈이었습니다.

서운한 일은 명절마다 있었습니다. 차례상을 물리고 나면 시동생은 술기운에 꼭 한마디를 했습니다. “어머니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도 나, 약 타 오는 것도 나요. 큰형수는 어머니께 한 게 없잖아요.” 남편은 못 들은 척 술잔만 비웠습니다. 서 씨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약속 때문에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서 씨의 눈을 피했습니다.

올해 초여름, 시어머니가 여든여덟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서 씨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렸습니다. 시동생은 상주 자리에서 문상객을 맞으며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제가 모셨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 추석을 열흘 앞둔 날이었습니다. 가을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남편은 형제들 동의서를 챙겨 시어머니 명의의 통장을 해지하러 읍내 은행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은 젖은 우산을 현관에 세워 두고 식탁 위에 종이 몇 장을 내려놓았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뽑아 준 거래내역서였습니다.

“여보, 이게 뭐야. 왜 매달 당신 이름으로 30만 원씩 들어와 있어?”

서 씨는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18년 전 그 봄의 일을 처음부터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듣다가 다시 종이를 넘겼습니다.

서 씨도 남편 어깨 너머로 종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25일 입금 30만 원, 보낸 사람은 서 씨였습니다. 바로 아랫줄에는 같은 날 출금 30만 원이 찍혀 있었고, 받는 사람은 시동생이었습니다.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똑같았습니다. 두 줄이 18년 동안 나란히 이어져 있었습니다. 모두 6,480만 원이었습니다.

서 씨는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습니다. 명절마다 큰형수는 한 게 없다고 하던 사람이 바로 그 돈을 매달 받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동생 사정 어려운 거 당신도 알잖아. 어머니가 알아서 주신 거겠지. 근데 당신은 이걸 왜 이제 말해? 18년을 나 몰래 했다는 게 말이 돼?”

서 씨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여보,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당신 동생은 내 돈 받아 가면서 내 얼굴에 대고 한 게 없다고 했어요. 당신은 그 옆에서 술만 마셨고요.”

남편은 “다 지난 일 갖고 왜 그래” 하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거실에는 빗소리만 남았습니다.

그날 오후 서 씨는 우산을 쓰고 은행에 갔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새로 만들고 월급이 그 통장으로 들어오게 바꿨습니다. 저녁에는 남편에게 생활비를 반씩 내자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해 추석, 서 씨는 시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시동생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시어머니 옆집에 살던 윤 씨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네 시어머니가 생전에 큰며느리한테 미안해 죽겠다고 하더라고. 약값은 노령연금 아껴서 냈어.” 서 씨는 전화를 끊고 오래 울었습니다.

남몰래 건네는 선의는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 번쯤은 살펴보셔야 합니다. 좋은 뜻으로 지킨 침묵이 누군가의 거짓말을 덮어 주는 이불이 되기도 합니다.

내 수고를 깎아내리는 말이 가족 안에서 오갈 때, 참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나를 지키는 선을 긋는 일은 모질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올가을 서 씨는 쉬는 날이면 혼자 동네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물가의 억새가 바람에 하얗게 흔들렸고, 저녁 햇살이 수면 위에 길게 누웠습니다. 서 씨는 새 통장이 든 가방을 고쳐 메고 천천히 한 바퀴를 더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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